윤봉길 의사 암장묘지에서 참배

7시 30분경에 집을 나서 윤봉길 의사의 암장 묘소터로 향했다. 윤 의사는 1932년 상해 홍구공원에서 거사를 한 뒤 재판을 받고 이곳 가나자와로 압송되어 육군 제9사단 연병장에서 총살되었다.

25살의 꽃다운 나이로 처형된 그의 시신은 일본군에 의해 이곳에 비밀리에 가매장 되었다. 그러다 1946년 일본의 한 여승의 제보로 발견되었다. 잠시 눈을 감고 그의 명복을 빌고 그 의 큰 뜻을 기렸다.

참배 후 인근 휴게실에서 다무라가 준비해 온 아침식사를 했다. 그가 새벽부터 부산을 떤 이유를 알겠다. 주먹밥에 샐러드 그리고 과일 디저트까지 준비했다. 샐러드용 소스도 세 종류나 있었다.

식사 후 근처의 사찰을 둘러보았다. 일본에는 사찰이나 신사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듣도 보도 못한 이색 종교들도 많다.

이곳은 가히 종교의 천국이며 다양한 종교들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지금 자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공명당도 그 모체가 창가학회라는 종교단체다.

종교시설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숫자도 많은데 이들은 정식으로 급여를 받는 근로자다. 하지만 일본에서 기독교는 교세가 약해 목사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투잡을 뛰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와 걸으며 새삼 느끼게 된 것은 편의점에 함께 들리면 상대방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사 먹는다. 우리 같으면 하나 더 사서 상대방에게 권하기도 하련만.

하기야 일본인과 식당에 가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시키고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정확하게 지불한다. 그런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일전에 지인의 부탁을 받고 미야자키 대학의 모 교수를 위해 서울 시내를 안내한 적이 있었다. 내가 시간을 내어 안내를 하니 편의점에 들어가면 적어도 음료수 정도는 대접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는 동행자인 나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가 마시고 싶은 음료를 혼자 사 먹는다. '음식 끝에 마음 상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의 그런 행동이 내심 괘씸하게 생각되었다.

일본인들의 이런 행동은 '상대방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겠다'라는 배려(?)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 사실을 이번에 다무라를 통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 사람은 각자 취향이나 기호가 다르다.

도야마 시내 노면 전차

도야마역에는 계획보다 30분이 늦은 5시 30분에 도착했다. 오늘은 32킬로를 걸었다. 관광안내센터로 가니 고이케와 그녀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를 상의했지만 빈 방이 없다고 한다. 다무라는 헤어지면서 숙소가 없으면 다시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고이케 일행과 식사를 하면서도 머리 한 구석에 미해결 된 숙소 문제가 늘어 붙어 있었다.

일식 코스요리는 훌륭했고 기모노를 입은 종업원의 서비스도 세련됐다. 대화도 즐거웠다. 한 친구는 이번에 한국 여성을 며느리로 맞았고 다른 여성은 과거에 같이 공부했던 한국 유학생과 지금도 연락이 닿는다고 했다.

나는 고이케를 금년 3월 교토에서 처음 만났다.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다가 그녀의 일행과 얘기를 나눈 것이 계기였다. 당시 그녀는 일본의 전통극 가부키를 보러 교토에 왔었다.

식사를 하면서 지난번 교토 여행의 비용을 물어보았다. 가부키 입장료와 왕복 신칸선 요금에 호텔 숙식비까지 포함된 75,000엔 짜리 상품이다. 좋아하는 전통연극을 보려고 평범한 가정주부가 75만 원을 쓴다.

일본 여성들은 자신의 문화생활을 위해 평소 생활비를 절약한다. 한류스타의 공연을 보기 위해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는 일본 아줌마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부득이 다무라의 집에서 또 하룻밤 신세를 졌다. 목욕을 한 후 그와 맥주를 한 잔 했다. 그는 내 전화를 기다리며 목욕 후에도 좋아하는 맥주를 참았다고 했다. 음주운전은 처벌이 엄하다.

오늘 이동 구간은 멀기도 하려니와 복잡하다. 신칸선 한 번에 재래선을 두 번 갈아타야 한다. 다무라가 꼼꼼히 체크해서 노선을 추천해 주었다.

차창으로 보이는 눈덮힌 다테야마 연봉

기차를 타니 좌측에는 동해가 펼쳐지고 우측으로는 눈 덮인 3,000미터급 산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히말라야를 보는 것처럼 산들이 아름답고 웅장하다.

수많은 터널을 지났다. 첩첩산골이다. 산의 모습은 직각에 가깝고 계곡이 깊고 물살이 빠르다. 호타까역에서 은이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가노 산골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나는 은이씨를 제7차 조선통신사 전야제에서 만났다. 내가 일본열도 종단계획을 얘기하니 비용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집에서 자라고 했다. 그녀는 나가노 아즈미노시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니 앞에 눈덮인 해발 2,860미터의 조넨다케가 떡 버티고 있다. 정상에 쌓인 눈은 7월 중순이 되어야 다 녹는다고 한다. 이곳은 물 좋고 공기 좋기로 일본에서 알아주는 곳이다.

부부가 이 산에 서식하는 원숭이에게 인사를 시켜주겠다고 임도로 차로 달렸다. 좁은 산길이라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좀처럼 원숭이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황금연휴라 다니는 차가 많아 원숭이가 나오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포기하고 거의 산을 다 내려 왔는데 원숭이 두 마리가 나무 위에서 새 순을 뜯어먹고 있었다.

산골 마을이라 해만 떨어지면 깜깜해서 저녁 활동은 어렵다. 야생동물들도 많다. 곰과 사슴이 있으며 밤에는 여우도 동네에 출몰하며 박쥐도 날아다닌다. 그래서 타 지역에 비해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곳 까마귀는 머리도 좋다. 호두가 익으면 입에 물고 하늘 높이 올라가 차가 없는 틈을 타서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 뜨린다. 한 번에 안 깨지면 반복해서 떨어뜨려 맛있게 알갱이를 파먹는다고 한다.

그녀는 저녁 준비를 위해 먼저 돌아가고 우에마쓰와 함께 국립공원을 둘러보았다. 연휴기간이라 사람들이 많다. 계곡물을 막아 만든 독특한 자연 수족관이 볼만했다.

은이씨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저녁에는 은이씨가 만들어준 김치찌개에 부침개로 밥을 두 공기나 비웠다. 한국 소주를 마시며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다. 은이씨는 젊은 시절 산을 많이 다녀서 그런지 좋은 술친구가 되어 주었다.

다음 날은 이번 조선통신사에 함께 다녀온 이웃 친구 시미즈와 함께 4명이 걸었다. 일본에서 걷기 좋은 아름다운 길 500개 리스트에 들어있는 명품 길인데 시미즈가 추천했다.

야트막한 산길이다. 주변에는 온갖 야생화에 산 벚꽃이 아름답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에다 건너편 눈 덮인 북알프스 연봉이 아름답다. 마치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다시 걷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은이씨 부부는 돌아가고 시미즈와 둘이서 좀 더 걸었다. 그녀는 10년 전 이곳에 집을 지어 남편과 낙향했는데 97세 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이번에 한 달 가까운 기간 조선통신사 행사에 참석한 것이 참 좋았다고 했다.

처음 가 본 한국인데 방문하는 지방마다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한일관계가 최악이라고 매스컴에서 떠들어 걱정하며 갔는데. 가는 곳마다 지자체가 주최하는 환영행사가 있었다.

적당한 거리를 걸은 다음 그녀의 작은 차를 세워 둔 곳으로 돌아왔다. 이곳은 버스 등 대중교통이 없어 승용차가 발이다. 대도시에서도 많은 사람이 타는 택시는 대형차이지만 일반국민들은 대부분이 소형차를 탄다.

"그래도 16킬로는 채워야 하니 저기 가게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자"고 시미즈가 말했다. 적당히 걸은 데다 눈덮인 북알프스를 바라보며 먹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맛은 유별났다.

오는 길에 스테인리스로 대형 조형물을 만드는 곳으로 그녀가 나를 안내했다. 멀리 보이는 그녀의 집은 지붕이 주황색으로 유럽 풍이다. 작업 중인 조각가 부부와 잠시 대화를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우에마쓰가 동네 소프트볼 대회 개막식에 가는 바람에 은이씨와 동네 일식당에 가서 회덮밥을 먹었다. "시골에 이런 고급식당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정갈하고 품위있는 식당이다.

일본의 회덮밥은 밥 위에 놓인 회를 한점 한점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는다. 밥 따로 회 따로다. 일본에는 우리와 달리 비벼먹는 문화가 없다. 양이 많아 겨우 다 먹었다. 일본인이 소식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오늘은 야마나시현 고후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그런데 은이씨가 내일 고후에 볼 일이 있으니 하루를 더 자고 가라고 한다. 자기 차로 고후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다음 일정이 있어 사양했다. 그녀는 내 칫솔이 한 달을 쓰니 끝이 벌어졌다며 새 것으로 하나 선물했다. 그리고 걷다가 먹으라고 팥빵도 봉지에 담아준다.

아침 일찍 그들 부부와 인근의 와사비 농원을 구경했다. 와사비가 얕은 청정수에서 자라고 있는데 농장 규모가 엄청나다. 일왕 부부가 들렀다는 표지석이 있었다.

마쓰모토성 천수각

그다음은 마쓰모토 성으로 갔다. 최근에 국보로 지정이 되었다고 한다. 성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천수각이 물 가운데 떡 버티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녀가 결혼 당시의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주었다. 한국의 등산 동호회 친구들에게 처음 남편을 소개했다. 선배가 농담으로 "당신이 나이는 우리보다 많지만 동생 은이의 남편이니 우리에게 형님이라 불러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대뜸 " 지랄하고 있네!"라고 해서 다들 뒤집어졌다고 한다. 남편은 그녀가 자주 쓰는 이 말이 좋은 말인 줄 알고 사용한 것이다. 외국어는 욕부터 배우는 모양이다.

주차 문제로 남편과 조금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녀는 잠시 구경하고 마쓰모토역으로 가야 하니 차를 성 입구의 편의점 주차장에 세우자고 했다. 나중에 음료수라도 하나 팔아주면 된다며.

그렇지만 우에마쓰는 마쓰모토성 관광객을 위한 지정 주차장이 있으니 그곳에 차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남편의 뜻을 따랐지만 이런 문화적 차이로 인한 의견 충돌이 가끔 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에게 1+1=2 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에게는 2도 되고 3도 되고 10도 될 수 있다. 이런 융통성을 일본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며 이게 안 된다.

그렇지만 융통성을 부리지 않고 한 우물을 깊이 파는 그들의 국민성은 과학분야에서만 노벨상을 27개나 만들어 냈다.

마쓰모토역에서 이들 부부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고후에 가기 전 은이씨가 추천한 가미수와 호수 16킬로를 일주했다.

야마나시현 고후는 전국시대의 또 한 사람의 영웅 다케다 신겐의 본거지다. 이곳에서는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며 숙면을 취했다.

 

 

허남정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