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식당이나 매장 평수가 작은 식당은 주인 혼자 운영하거나 가족이 바쁜 시간에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외식시장 업황이 녹록지 않고 인건비 비중이 높아지면서 인력 채용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무인 주문기 도입이 늘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뒷골목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탄탄한 내공을 가진 집이 제법 많다. 음식이 좋으면 뒷골목, 먼 곳이라도 찾는 게 요즘 외식 트렌드다. 오래전 외식경영신문 대표이사로 있을 때 취재부장으로 데리고 있던 직원에게서 오랜만에 기별이 왔다. 사업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에 만나서 설명해 줘야겠단 생각으로 그 직원 사무실 근처인 사당역에서 만났다.

본인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고 과거엔 몰랐지만 나이도 제법 있었다. 이젠 같은 ‘5학년’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며 막걸리 한잔 마실 식당을 찾았다. 사당역에서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생활미술관 뒷골목 쪽으로 길을 잡았다. 5‧6년 전에 다녔던 막걸리집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남현동 뒷골목 산꾼들의 참새방앗간 <남도묵은지>

남서울생활미술관은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이다. 건물 외형이 고즈넉한 게 볼만한데 다름 아닌 옛 벨기에 영사관 건물이다. 벨기에영사관은 원래 사대문 한복판 중구 회현동에 1905년 세워졌으나 도심재개발사업으로 1983년 지금 자리로 이전 복원했다. 건축양식 중 하나인 이오니아식 실내 기둥과 벽난로 등을 접할 수 있다. 소유권은 우리은행에 있다. 문화예술지원사업 일환으로 서울시에 무상 임대한 것이다.

남도묵은지의 생선구이(2인분).

뒷골목을 타고 걷다가 관악산 쪽으로 방향을 틀면 남현동이 나온다. 산에서 내려오는 산꾼들이 제법 보이는 등산로 초입에 <남도묵은지>라는 소탈한 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산꾼들에게는 제법 소문난 집이다. 두부, 생선, 족발 등과 직접 만든 산채 반찬들이 제공되기 때문에 건강을 생각하는 이들에겐 좋은 ‘서식처’인 셈이다.

들어서니 여사장이 반겼다. 주인이 바뀐 것이다. 원 주인은 남사장이었다. 자리를 잡고 생선구이를 시켰다. 생선 2인분 시키면 나막스, 가자미, 갈치, 서대를 구워준다. 생선 애정자에겐 좋은 구성이다. 원래 있던 남사장이 두부를 직접 만들었는데, 딴 곳으로 가서 새로 차리고 두부만 만들어 공급해 준다.

위에서부터 나막스, 가자미, 갈치, 서대. 나막스는 붉은메기 말린 것을 말한다. 메기와는 관련없는 어종이다.

여사장은 경남 사천 출신인데 전남 여수로 시집을 가서 자연스레 남도음식을 배웠다. 여수는 남도 해안 음식의 본고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손맛 좋은 장인들이 많고 해산물, 육지 농산물 등 물산이 다양해 음식이 발달했다. 아삭한 열무김치, 곰삭은 쪽파김치, 묵나물을 데친 취나물, 고추된장박이 등 토속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밑반찬이 깔리고 잠시 후 생선구이가 등장했다.

여사장은 생선구이 구성을 가르키며 나막스, 가자미, 갈치, 서대라고 알려준다. 나막스는 붉은메기라는 어종을 말린 것을 말한다. 이름만 그렇지 메기 쪽 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노릇하게 구운 고기 색깔이 신선함을 담았다. 냉장고서 오래 보관됐던 것이 아니라 군내나 잡내 없이 담백했다. 요즘은 가정에서 냄새와 미세먼지를 이유로 생선 굽기를 꺼려한다. 그래서 반찬가게에서 아예 생선을 구워서 파는데 인기가 꽤 좋다고 한다.

들기름을 먹은 두부부침.

풍성한 상위에 작은 뚝배기에 자글자글 끓는 된장찌개가 더해진다. 두부를 직접 만들었지만 지금은 본점에서 받아쓴다. 들기르에 구운 두부부침도 한 접시 달라고 했다. 이쯤 되면 막걸리를 좋아하는 애주가들한테는 최고의 술상이다. 저녁 무렵 학생인 듯한 딸이 일손을 도우러 왔다. 아르바이트생인줄 알았더니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보기 좋은 광경이다. 9시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

구리역 인근 먹자골목통 도토리묵 전문점 <고향도토리임자탕>

기본 밑반찬. 막걸리는 기본찬만 있어도 좋다.

오랜만에 경기도 구리에 갈 일이 생겼다. 젊은 시절 함께 출입처를 누비던 선배 기자 문상 때문이다. 문상을 마치고 구리전통시장 근처 돌다리곱창골목을 지나 <고향도토리임자탕>이란 도토리묵 전문점에 들렀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선배가 상갓집에서 마시지 못했던 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한 접시 1만원인 가성비 좋은 도토리부침개.

도토리부침, 도토리멸치묵밥을 주문했다. 도토리부침 1만 원짜리가 풍성하다. 도토리가루를 갠데다 갖은 채소를 듬뿍 넣고 부쳐냈다. 가성비가 좋은 탓에 장수하는 품목이다. 식감이 퍽퍽해 개선 방안을 이야기 하자니 여사장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리고는 8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한마디로 자기 음식에 대한 고집을 내비쳤다.

따뜻한 국물의 도토리멸치묵밥.

도토리부침에 따라 나온 오이냉채와 도토리멸치묵밥도 육수 맛도 생소했다. 흔히 먹었던 레시피를 살짝 벗어나 여사장 나름의 음식 세계를 구축한 듯하다. 손맛을 더 보기 위해 김치 맛좀 보자고 졸랐다. 곰삭은 묵은지와 무생채를 꺼냈다. 무생채는 손님용이 아니라 개인 식사 용도다. 이들 역시 그 동안 먹어왔던 맛과는 다소 달랐다. 강원도 음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금방 쑤어 낸 도토리묵. 식혀서 냉장고에 넣었다가 다음날 사용한다.

계산을 하고 나오자니 막 쑤어낸 도토리묵을 식히려고 주방서 홀로 내왔다. 여사장의 멋진 쇼잉(showing) 마케팅이다. 도토리묵을 직접 만들어서 제공한다는 강력한 ‘무언의 언어’인 셈이다. 그래선지 실제로 도토리묵밥에 들어 있는 도토리묵은 적당한 찰기에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 이 집은 맛보다는 가성비 좋은 구리 도토리묵 집으로 기억할만 하다.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로 시집가면 어쩔 수 없이 손맛이 변한다. 다양한 음식을 융합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응용력도 생긴다. 그런데 강원도 사람이 강원도에 머물면 손맛이 변할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손맛에 대한 고집이 생기고 밀고나가는 우직함이 있다. 맛은 기호이기 때문에 그 맛을 따라가는 손님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단골’이다. 두 집 모두 나름의 단골이 제법 있어 보이는 곳이다.

유성호 한경닷컴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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