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7회 조선통신사 우정의 걷기' 일행과 함께 하기로 한 날이다. 이들은 나와 같은 4월 1일에 서울에서 출발 부산 쓰시마 그리고 이키섬을 거쳐 어제 오사카에 도착했다. 5월 22일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제7회 조선통신사 일행과 오사카 시청 앞에서

오늘은 오사카 시청 앞을 출발하여 히라카타까지 28킬로를 걷는다. 히라카타에는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한 백제 왕인 박사의 묘소가 있다. 양국 단원에 다 현지 참가자까지 50여 명의 일행이 조선통신사 깃발을 앞세우고 걸었다.

연도의 일본 시민들이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준다. 요도가와 강변의 파란 뚝방길이 참 길기도 하다. 이곳 출신으로 에도의 시인이자 화가인 요사부손은 '봄 바람 불고 뚝방길은 긴데 집이 멀구나'라고 노래했다.

아이들이 비닐포대를 타고 뚝방길을 환성을 지르며 미끄러져 내려온다. 눈썰매를 타는 것 같다. 강변 넓은 잔디 위에는 많은 시민들이 가족단위로 황금연휴를 즐기고 있었다.

단원들은 도시락을 하나씩 받았다. 그런데 이곳 강변에는 믿었던 편의점이 없다. 선상규 단장이 나누어 먹자며 나무젓가락까지 절반으로 뚝 잘랐다. 다른 회원들도 조금씩 덜어주니 생각지 않았던 포식을 했다.

다음 목적지는 시가현 오쓰다. 어제 구입한 샌드위치를 들고 게스트 하우스 1층 휴게실로 내려갔다. 내 이웃 침대의 상하이 아줌마들이 부지런하다. 벌써 일어나 편의점에서 아침거리를 사 왔다.

61일간 일본 열도를 걷는다는 내 얘기에 놀란다. 왜 그런 힘든 일을 하느냐고 묻길래 "일본인들과 일본 열도를 즐기고 또 건강을 위해서"라고 답변했다. 복잡한 얘기를 말하고 그들이 이해하기에는 서로 영어실력이 부족했다.

숙소의 일본인 여성 스탭이 훌륭한 답변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그녀는 미치코와 같은 가가와현 출신이다. 게스트 하우스를 나서며 한중일 삼국의 친구들과 뜨거운 악수를 나눴다.

오사카역에서 신쾌속을 탔다. 옆 자리의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다. 연휴를 맞아 교토의 우지에 있는 아들집에 간다고 했다. 아들보다는 3살짜리 손자를 보러 간다는 그녀의 쇼핑백이 크다. 손자에게 줄 선물을 가득 준비한 것 같다.

오쓰역에 내려 관광안내센터에서 숙소 문제를 상의하니 역사 안에 있는 캡슐 호텔을 소개해 주었다. 가보니 예상대로 만실이다. 그리고 소개받은 게스트 하우스는 전화가 불통이거나 만실이다. 은근히 걱정이 된다.

하루 세끼 챙겨 먹고 그날 잠자리를 마련하고 20-25킬로를 걸으며 부지런히 일본인들과 교류한다. 그리고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주 2회 언론사 등 SNS를 통해 발신한다. 이런 하루하루의 일정을 소화해나가는 것이 조금 힘에 부친다.

숙소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될 거야!!!' 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하며 우선 이곳의 심볼인 비와코 호수를 걷기로 했다. 빗속에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거리로 나섰다.

오쓰 시민회관이 우측으로 보인다. 입구 현판의 시민헌장을 우연히 읽었더니 '외국에서 오시는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하자'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영감이 번득였다.

오늘은 공휴일이라 중년의 남자가 회관 청소를 하고 있다. 무작정 들어가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한국인임을 밝히고 숙소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민헌장의 마지막 구절에서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가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조금 있다 나타난 그가 나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사연을 전해 들은 두 명의 당직 여직원이 오쓰시의 명예를 걷고 필사석으로(?) 전화통에 매달린다.

1시간 정도의 악전고투 끝에 내가 원하는 수준의 숙소를 확보했다. 1박 4,000엔 하는 민박집이었다. 그녀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숙소 문제도 해결됐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열차를 타고 사카모토의 히에이잔으로 갔다. 히에이잔에 오르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가장 길다는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비와코 호수의 전경이 일품이다. 이 호수는 일본 최대 규모로 시가현 면적의 1/6이나 된다. 호수라기보다 바다라고 느낄 정도로 섬도 있고 수평선도 보인다.

일본 3대 사찰의 하나인 엔랴쿠지 절로 향하는 삼나무 숲길에 안개가 자욱하다. 마치 구름 속을 걷는 듯하다. 이곳은 해발 848미터다.

히에이잔 엔랴쿠지 절로 가는 길

엔랴쿠지에서 제일 큰 본당 곤폰주도를 둘러보았다. 천태종을 개창한 사이쵸 대사가 세운 이곳 본존 옆에는 1,200년 동안이나 꺼지지 않고 빛을 발하고 있는 '불멸의 등'이 있다. 이 본당 건물은 1994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오늘은 2019년 4월 30일 일본 헤이세이 마지막 날이다. 내일이면 새 왕이 등극한다. 스님들이 새 일왕의 등극을 축하하는 독경을 하고 있었다. 참배객들이 '깃쬬' 즉 축하의 마음을 담아 방명록에 본인의 주소와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데 표정들이 하나같이 진지하다.

이곳 히에이잔은 고야산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불교 성지 천태종의 본산이다. 처음 한반도에서 들어온 불교는 나라의 귀족 등 상류층을 중심으로 번성하며 찬란한 아스카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승려들이 정치권과 결탁하며 부패해 갔다. 중국 유학을 다녀온 구카이와 사이쵸가 펼친 '일체중생이 평등하다'는 교리는 민중에 먹혀들었다. 이 진보적인 불교사상은 급속도로 대중 속으로 퍼져나가며 오늘날 일본인들의 생활 문화로 뿌리를 내렸다.

히에이잔을 둘러보며 노부나가를 생각했다. 그는 자신에 적대하는 천태종의 본거지 히에이잔을 화공으로 공격했다. 그렇지만 도망쳐 나올 줄 알았던 승려들은 그대로 남아 소신공양을 했다.

이 공격으로 수만 명의 스님 신도들이 희생됐다. 결국 신망을 잃은 노부나가는 혼노지에서 측근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은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시해된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게 한다. 천하를 잡겠다는 원대한 뜻은 김재규에게도 미쓰히데에게도 애당초 없었다.

주군의 공공연한 모욕이 쌓여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미쓰히데의 모반의 뒤에는 일왕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노부나가가 승승장구하면서 일왕마저 가볍게 보는 무례를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하통일을 꿈꾸던 히데요시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미쓰히데의 거사는 3일 천하로 끝나고 노부나가의 권력은 고스란히 히데요시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재주는 김재규가 벌이고 돈은 전두환이 가져간 꼴이다.

내년 NHK 대하드라마 선전 플래카드

히에이잔을 내려오니 사카모토 마을 곳곳에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아케치 미쓰히데를 주인공으로 하는 NHK의 2020년 대하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선전이다. 이곳 사카모토는 미쓰히데가 근거로 한 성이 있던 곳이다.

다음 방문 지역은 후쿠이다. 후쿠이역 못 미쳐 사바에역에서 내려 빗속을 걸었다. 이제 두 달째에 접어든다. 피로가 누적되어서인지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오늘은 겨우 18킬로를 걸었다.

후쿠이역 관광센터의 여직원이 친절하다. 지선을 타고 3 정거장을 가야 했지만 명색이 비즈니스호텔인데 3,000엔이라고 한다. 호텔은 낡았지만 1층 목욕탕은 최고다.

PHP연구소에서 소개받은 니시카와씨가 저녁에 찾아왔다. 그와 인근의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선회는 역시 이곳이다.

다음 일정은 일본 3대 정원의 하나인 켄로쿠엔이 있는 가나자와다. 기차 안에서 가나자와 미술관에 간다는 옆 자리의 30대 여성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내가 니시베쯔인의 '쇼라쿠'에서 투숙했다는 얘기를 듣더니 깜짝 놀랐다.

그녀의 집이 호텔 근처에 있다. 그리고 언젠가 직장 동료의 부탁으로 그 호텔의 방을 잡아준 적이 있다며 이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라며 흥분한다.

내가 걷기 위해 고마이코역에서 내려 그녀가 앉은 차창 앞을 지나갔다. 어느새 마스크를 벗은 그녀가 나를 향해 셔트를 누르며 손을 흔들었다.

가나자와역

가나자와역까지 23킬로를 걸었다. 일반 열차로 갈아타고 친구 다무라 사장과 약속한 노노이치시역에 내렸다. 도착해서 1-2분도 안 되어 그가 활짝 웃으면서 나타났다.

그의 집에 도착 그가 만들어 주는 차를 우선 한 잔 마셨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일본 전통 다도를 배우고 있는데 요즘 차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일전에 서울에 온 그와 산에 올랐다. 한겨울 추운 산중에서 준비해 온 도구를 꺼내 정성스럽게 차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감탄한 일이 있다. 그가 다도를 배워서 대접한 두 번째 손님이 나라고 했다.

그가 준비해 놓은 뜨거운 목욕물로 피로를 푼 다음 근처에 있는 그의 회사를 둘러보았다. 올해로 100년이 되는 텐트 메이커인데 세계적 기술 수준이라 자신한다.

그가 3대째인데 일본의 연호가 바뀌는 금년에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100주년 기념 타월을 선물로 받았다. 한국과 25년 동안 거래를 하고 있는 그는 우리나라를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를 PHP경영동우회 활동을 하며 알게 되었다. 그는 이달 하순 열리는 PHP서울대회에 참석한다. 그때 그의 부친 때부터의 거래선으로서 아버지같이 생각했던 분의 묘소를 참배할 것이라 했다.

다무라 사장 생일축하 모임에서

그런데 나는 몰랐는데 이날이 그의 생일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가족 생일 모임에 함께 하게 되었다. 아무 준비 없이 참가한 나는 선물 대신 축하 노래를 불렀다.

'해피 버스데이 투유' 한곡으로는 부족해서 이시카와 사유리의 히트곡 '쓰가루 해협 겨울 풍경'이라는 엔까를 아카펠라로 불렀다. 즐거운 그리고 오랜만에 영양 보충을 한 밤이었다.

 

허남정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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