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를 두 정거장을 남겨두고
야마토야기에서 내렸다. 나는 이곳을 오사카 지역으로 착각했다. 한 일본인 승객이 "야마토란 이름이 붙으면 다 나라현입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야마토란 나라 왕국의 옛 지명이다.

오사카 경계까지 30여 킬로나 남아있어 호류지(법륭사)역에서 전철을 타기로 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산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호류지는 고구려 담징이 그린 벽화가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진 곳이다.

나라 법륭사역 앞에서

역 앞 잔디 위에서 여고생 두 명이 무언가를 먹고 있다. 사진을 부탁하니 총알같이 달려온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밝히자 "한국 너무 좋아해요. BTS 좋아요!!!"라고 했다. 교복을 입고 있어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전철에서 만난 어느 30대 여성도 한국이 좋다며 이번 황금연휴 때 친구와 서울에 간다고 한다. 가는 목적을 물으니 "첫째 미용, 둘째 쇼핑, 셋째는 맛있는 음식"이라며 한국을 '미용 천국'이라 불렀다.

서울에서 온 출판사 신수근 대표와 오사카 도톤보리에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이곳은 오사카 최고의 환락가다. 관광유람선이 다니는 운하도 있다.

이곳은 오사카가 근거지인 '한신 타이거즈'가 우승하면 젊은이들이 물로 풍덩 뛰어내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새 일왕의 등극을 전후한 10일간의 황금연휴라 인산인해다.

'굴뚝 없는 산업' 관광에 아베 정권이 공을 들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방문 외국인 관광객 수가 우리를 크게 앞질렀다. 작년에 3,000만 명을 돌파했고 올해는 3,500만 명을 예상하고 있다. 내년 7월에는 도쿄올림픽도 열린다.

오전에는 교토역 근처의 PHP연구소에 들렀다. 오에 부장을 만나 대화도 나누고 직원들과 기념촬영도 했다. 마쓰시다 코노스케 기념관을 둘러본 다음 식사를 대접받고 다음 방문지 후쿠이현의 지인도 소개받았다.

일본 PHP연구소에서

이 연구소는 파나소닉의 창업주 마쓰시타 코노스케가 1946년에 설립했다. 기업의 번영으로 세상에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자는 대국민 캠페인의 모체가 되었으며 출판사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나는 20여 년 전에 마쓰시타의 경영철학에 관심을 가진 국내중소기업인들과 한일PHP경영연구회를 결성했다. 지금은 한국PHP동우회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 마쓰시다는 파나소닉을 당대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시켰으며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존경받고 있다.

만년에 그는 사재를 털어 '마쓰시타 정경숙'을 만들어 일본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양성에 힘을 쏟았다. 총리 국회의원 등 수십여 명의 정치인도 배출했다. 그리고 연구소의 대정부 제안은 일본 정부도 무겁게 받아들여 이를 정책에 반영해 왔다.

시내 지도를 얻으려고 교토역 관광센터에 들렀다. 내가 걸어서 은각사로 간다고 하니 깜짝 놀란다. 직선거리로도 7킬로가 넘는다며 역 앞에서 100번 버스를 타라고 한다. 그 말을 귓등으로 흘리고 8킬로를 걸었는데 신호등이 많아 2시간이나 걸렸다.

은각사 입구에서 신 대표를 만났다. 더위에 걷느라 목이 말라 가게에서 생맥주를 시켰다. 안주로 얇은 햄소시지 두 쪽이 나왔는데 그것으로는 모자라 배낭에서 주섬주섬 과자를 꺼냈다. 그러자 여주인이 얼른 달려오더니 안 된다고 손을 흔든다. 순간 머쓱했다.

철학의 길로 들어섰다. 교토대학에서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는데 이 길이 기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근에 명문 교토대학이 있다. 10여 년 전 11월 이곳에 처음 와서 붉은 단풍의 장관에 감탄한 적이 있다. 늦은 벚꽃이 군데군데 피어있는 4월의 철학의 길은 고즈넉했다. 이 또한 좋았다.

흥복사 앞의 '다경'이라는 작은 선술집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했다. 신 대표의 단골집이었는데 주인은 60대 중반의 한국인 아주머니다. 최근 5-6년 일본에 오지 않아 혹시 문을 닫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문을 연지 15년이 되었는데 단골이 많아 거의 매일 빈자리가 없다고 했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서 그 아이템 번호를 자기 전표에 직접 기록하게 하고 나중에 계산도 스스로 한다.

그녀가 모토로 삼은 정직은 신용을 확립했고 수많은 단골이 생겼다. 그녀는 손이 컸다. 비싼 김치를 얼마든지 추가로 주었다. 일본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음식도 푸짐하게 주고 술도 잔이 넘치게 부어주었다.

4대가 오는 단골도 있다고 했다. 이른 시간인데 옆자리에 한국의 짜파게티를 맛있게 먹으며 맥주를 마시는 70대 여성이 있다. 오사카에서 기차를 타고 매월 1-2회 오는 단골이라 한다. 음식보다 그녀의 푸근한 마음이 그리워서 오는 것 같다.

혹시 못 오는 달에는 정성껏 쓴 안부 편지를 보내온다고 한다. 여주인이 최근에 온 편지를 보여 주었다. 글씨를 보니 공직에 있다 은퇴한 사람 같다. 달필이었다. 옆에서 신 대표가 양해를 구하고 편지를 사진에 담았다.

이 여성은 올 때마다 자택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를 종류별로 가져오기도 하고 서서 일하는 그녀를 위해 파스를 박스채 사오기도 한다. 물론 여주인도 뒤질세라 그녀에게 김치 등을 잔뜩 들려 보낸다.

그 여성은 먼저 일어서면서 일본 열도를 종단하는 나를 격려하고 싶다고 여주인에게 정종 두 잔 값을 선불했다. 그러자 여주인은 선불로 받은 돈의 갑절이 넘는 비싼 고급 가고시마 소주를 가득 부어주었다.

다경 여주인이 격려해준 가고시마산 고급소주

일본에서는 신용만 잘 지키면 살기가 편한 곳이다. 그리고 일본인은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해코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여주인의 경영전략을 들어보니 신용은 기본이고 첫째 스피드 둘째 맛 셋째는 서비스라고 했다. 혼자서 하는 장사라 손님이 필요로 하는 것은 손님 앞 탁자 아예 다 비치를 해 놓았다. 손님이 그녀에게 음식이나 술 주문 외에는 아예 다른 요구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 놓았다.

항상 뜨거운 물을 끓여두고 있어 손님이 라면을 시키면 스피드하게 만들 수 있다. 배고파 식당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스피드한 음식 제공이 최고의 서비스라고 그녀는 말했다.

신 대표의 권유도 있어 토요일에는 1박 2일로 일본 불교의 성지 고야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 오사카는 상업도시라 이렇다 할 관광거리가 없다. 오사카성 정도다.

토요일 난카이철도 난바역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고야산으로 향했다. 특급열차가 최근에 생겨 이제 1시간 40분이면 갈 수 있게 되었다.

종점인 극락교역에 내리니 추위로 몸이 움츠려든다. 해발 800고지 산악지대라 평지와 온도차가 크다. 오리털 재킷으로 무장했는데도 으스스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고야산역까지 가는 동안 중년부부와 얘기를 나눴다. 내가 일본 열도를 종단하고 있다는 얘기에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안내센터로 가서 숙소 문제를 상담했다. 직원이 여기저기 전화기를 돌렸지만 빈 방이 없다. 황금연휴 기간이다. 십여 차례 시도 끝에 겨우 빈방이 있는 여관을 찾았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박에 게스트하우스의 2배나 하는 7,000엔이지만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니다.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추워서 여관까지 버스를 탔다. 여관 주인은 내일 아침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눈이 올 것 같다고 했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우선 몸을 녹였다. 주인이 컵라면을 하나 준비해 놓았다. 주변에는 식당도 편의점도 없고 칠흑같이 어두운 산속이다. 지옥에서 부모님을 만난 듯 컵라면이 반갑다.

체크인할 때 몇 시에 아침식사를 할 것이냐 묻길래 7시 30분이라고 했다. 방으로 가져다주겠다고 한다. 아침에 출발 준비를 마치고 시계를 보고 있는데 정확하게 그 시간에 문을 두드린다.

아침은 갓 구운 토스트 두 쪽 크로와상 한 개 계란 반숙에 오렌지잼 버터 그리고 커피다. 여느 특급호텔 못지않은 훌륭한 아침식사 메뉴다. 계란 반숙이 적당하게 익어 먹기에 좋았으며 성의가 담겨 있었다.

여관을 나서면서 오리털 재킷 밑으로 옷을 몇 개나 겹쳐 입었다. 여름바지라 아랫도리는 여전히 썰렁하다. 오쿠노인으로 향했다. 이곳은 중세 전국시대의 영웅들 근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명인사들의 무덤 약 20 만기가 있는 곳이다.

고야산 오쿠노인 입구

울창한 삼나무 숲 속에 자리한 거대한 공동묘지다. 기업들이 사원들을 위해 마련한 기업 묘소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사원들에 대한 최고의 복지이며 회사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는 훌륭한 제도이다.

이곳은 불교 진언종을 개창하고 고야산 성지의 토대를 만든 고보대사 구카이가 묻힌 곳이다. 이곳에 묘를 쓰면 고보대사의 음덕으로 극락왕생한다는 믿음이 있어 이곳은 일본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먼저 우리에게 너무나도 그 이름이 익숙하지만 악연인 히데요시의 묘에 가보았다. 그의 가족들도 함께 묻혀 있다. 미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명석한 두뇌와 재능 그리고 주군 노부나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이 그의 필살기였다.

결국 노부나가가 닦은 기초 위에서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일본을 통일하며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히데요시는 일본에서 세속적 출세의 전형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렇지만 말년에 중국 그리고 인도까지 통일하겠다는 망상에 사로 잡혀 임진왜란을 일으켜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의 가족묘는 10평도 채 되지 않는 넓이다. 살아서 그렇게도 영화를 누렸지만 인간은 죽고 나면 그만이다. 죽은 사자는 살아 있는 한 마리 토끼보다 못하다. 그의 산소는 찾는 이도 별로 없고 온갖 잡풀만 무성했다. 인생무상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족묘

인근 고보대사의 산소 앞 사당 등롱당은 연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찾는다. 시코쿠섬에 88개의 절을 수십일에 걸쳐 순례하는 코스가 있는데 이곳에 와서 스탬프를 찍어야 순례가 완성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고보대사의 사당에 와서 합장하며 그를 기리며 온갖 세속사를 상의한다. 그리고 소원 성취를 기원하며 돈을 바친다. 고보대사는 살아생전 속세의 영화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오로지 어리석은 중생의 구제가 유일하며 간절한 소망이었다.

그의 유년시절 일곱 살 때의 일화가 있다. 구카이는 높은 절벽 위에 올라가 큰 서원을 세우고 "저는 불법을 익혀 앞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고 싶습니다. 저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부처님의 모습을 드러내어 주시고 저에게 그 자격이 없다면 이 몸을 부처님께 바칩니다 "하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자색 구름을 탄 천녀가 나타나 그를 감싸 안으며 "일생성불(살아서 부처가 되리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보대사의 사당으로 올라가려면 작은 돌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모자를 벗으라고 쓰여 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며 숙연한 자세를 취한다. 지금도 고보대사가 살아서 이 산에서 수행을 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초라한 노부나가의 묘소

풍운아 노부나가의 묘는 더욱 초라했다. 한평 남짓한 묘소에 나무로 만든 표지 하나가 쓸쓸하게 서 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반대세력인 천태종 본거지히에이잔에 불을 질러 수 만 명의 승려들을 몰살시켰다.

그런 악연을 가진 그의 묘소가 고야산 불교 성지에 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무덤은 더욱 초라하게 보이고 찾는 사람도 없다

고보대사가 주석한 진언종 본사인 곤고부지와 단조가란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이에야스의 위패를 모신 영대도 둘러보았다.

이에야스의 묘소인 도쇼구는 닛코에 있다. 이곳은 도쇼구가 지어지기 전 그의 손자가 아버지인 히데타다와 함께 모시려고 지은 사당이다. 270년 지속된 에도 막부를 연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었다. 후손이 잘되어야 조상이 대접을 받는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인내의 대표적인 인물이 이에야스다. 세상만사 다 때가 있다며 참고 기다린 이에야스가 3명의 영웅 중 가장 돋보인다. 인간에 대한 평가는 죽은 이후에 드러난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버린다고 했고 히데요시는 자신의 재능으로 울게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허남정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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