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20도를 웃돌더니 어느새 30도에 육박하고 있다. 봄인가 싶더니 시나브로 여름이 되는 기후에 살고 있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여름은 아열대 기후로 변하고 있다. 반가운 일은 아니다. 사계절이 뚜렷해 춘하추동이란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던 나라였는데, 이젠 봄과 가을이 점차 실종되고 있다.

여름이 빨리 오고 길어지는 것을 반기는 곳이 있다. 평양냉면 면옥(麵屋)이다. 날이 더워지면서 입맛을 당기는 음식이 냉면이다. 말 그대로 찰 냉(冷)이 들어간 면이다 보니 여름에 찾는 게 당연하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엔 겨울 음식이었는데, 과학의 발달이 식문화에 영향을 끼친 대표적 음식이 아닐까 싶다.

겨울음식이던 냉면, 여름별미로 환골탈태

우래옥

평양냉면은 한식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지리가 표시된 음식 중 가장 ‘핫(hot)'하기도 하다. 평양이란 단어가 음식에서 떨어져 따로 쓰면 주변 눈치를 봐야 하는 불편했던 시절이던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에도 평양냉면의 '평양'만큼은 자유로운 해방구였다.

평양냉면은 한국전쟁과 함께 남하했다. 남하보다는 월남했다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리고 피란(避亂) 왔다고 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북쪽에 살다가 한국전쟁 와중에 서울을 비롯해 휴전선과 가까운 인천지역, 경기, 강원지역으로 피란 온 실향민들이 생계형으로 평양냉면 집을 차렸다. 지금껏 길이 열리지 않아 눌러앉은 것이 남쪽의 평양냉면이다.

하루에 서너 곳 투어 하면 냉면 맛 기준 알 수 있어

필동면옥

남포면옥

최근 10여 곳의 평양냉면 집을 두루 다녔다. 우래옥, 봉피양(방이본점), 남포면옥, 진미평양냉면, 필동면옥, 정인면옥(여의도), 능라도(강남), 서경도락(강남본점, 마포점), 을밀대(마포본점, 일산), 을지면옥 등이다.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 선정된 곳과 2020년 선정에 가장 유력한 곳을 돌아 봤다.

소위 평양냉면으로 한 가닥 한다는 면옥들이다. 역사가 70년이 훌쩍 넘은 곳부터 10년이 채 안된 곳도 있다. 역사는 식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맛은 역사와 반드시 비례하진 않는다. 맛과 역사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면 여러 사람들이 찾는 좋은 문화가 되는 것이다.

서울의 면옥들은 저마다 평양냉면의 정통성을 선보이면서 나름의 맛을 추구하고 있다. 맛은 개인적 기호에 크게 좌우된다. 그렇게 때문에 우열을 공개적으로 논하기는 조심스럽다. 다만 여러 곳을 다니면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평양냉면 맛을 알 수 있다. 그 맛의 범주를 벗어나는 곳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럴 때 일종의 서열이 매겨진다.

한국전쟁 때 월남한 실향민들의 소울푸드

봉피양

서경도락

우래옥은 평양냉면의 성지다. 80세 전후반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다. 오래된 면옥의 특징이다. 이들은 대부분 북쪽에서 내려온 실향민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운 고향 맛을 찾기 위해 이 곳을 찾는 것이다. 봉피양, 필동면옥, 을지면옥도 노인 고객층이 두텁다.

우래옥이 강북을 호령한다면 봉피양은 강남 쪽 평양냉면의 자존심이다. 송파구 방이동은 봉피양 타운이 만들어지고 있다. 본관을 중심으로 주변 건물을 사들여 별관을 늘려가고 있다. 그만큼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는 반증이다. 진미평양냉면도 어느새 별관을 얻어 영업 중이다. 간판 내건 것은 후발주자지만 면장 경력 20년의 내공이 있는 곳이다.

최근 젊은 층에 호평받고 있는 곳은 정인면옥과 서경도락이다. 맛의 밸런스가 가장 잘 잡혔고 흔들림 없이 견고하단 이유다. 특히 두 곳은 메밀 100% 순면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진미평양면옥

봉피양도 순면을 팔지만 고가라서 쉽게 주문을 넣지 못하지만 정인면옥과 서경도락은 봉피양의 일반 평양냉면 값보다 싼 순면을 접할 수 있다. 정인면옥 순면과 서경도락 순면은 찰기와 색상 등이 차이가 있다. 같은 순면이라도 순도와 반죽, 숙성 차이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마니아들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정인면옥ㆍ서경도락 마니아들에게  인기

평양냉면 입문자들이 많이 찾는 필동면옥과 을밀대는 완전히 다른 면발이다. 때문에 입문을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평양냉면의 기준이 달라진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면스플레인이다. 면과 익스플레인의 합성어인데, 자기 기준을 남에게 설명하는 일종의 ‘전지적 참견시점’이다. 이는 기호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일종의 오만으로 지적된다.

능라도는 경기도 판교에서 생겨 서울로 올라 온 케이스다. 최근 같은 이름 간판이 서울 시내에서 눈에 많이 띈다. 브랜드가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남포면옥은 고대광실 커다란 한옥채를 이어서 만든 널찍함을 자랑한다. 밖에서는 덩치가 작아 보이지만 내부가 의외로 넓다. 육수에서 색다른 향이 올라와 호불호가 강한 곳이다.

을밀대

지난해 이맘때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도중 평양 옥류관 냉면을 준비해 왔다고 말을 꺼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실제로 저녁 만찬에는 평양냉면이 제공됐고 두 정상이 맛있게 식사를 한 모습이 세계로 타전됐다. 평양냉면이 한식 대표선수 반열에 당당히 오르는 계기가 된 역사적 사건이다.

본격적인 여름 초입으로 들어서는 계절이다. 냉면은 한국인의 소울 푸드 중 하나다. 특히 분단의 아픔을 안고 그것을 치유하는 힐링 푸드이기도 하다. 또 세계 속에 자랑하고 내세울 만한 한식 중 하나가 됐다. 이미 유명 면옥 집은 점심에 대기 줄이 늘어선다. 한국인의 면식 사랑은 나날이 깊어가는 듯하다.

냉면이 겨울 음식인 이유는 찬 성질 때문

정인면옥

냉장고의 발명을 떠나 냉면이 겨울 음식이었던 이유는 메밀과 돼지고기가 모두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 체내 발열을 강제하기 때문이란 이론이 있다. 추운 겨울에 차가운 음식, 그것도 찬 성질을 가진 식재료가 몸에 들어가면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열을 내기 시작한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겨울철 냉면 한 그릇은 몸을 평온하게 한다는 것이다.

평양냉면은 고기육수 육향과 중후한 맛에 시원함을 더해 여름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오죽했으면 을밀대 외벽에는 ‘겨울에도 합니다’라고 써 붙여 놓았을까. 날이 더워질수록 시원한 고기 육수가 그리워진다. 선주후면, 선육후면의 유혹이 강해진다. 어디로 갈까, 고민의 계절이다.

 

유성호 한경닷컴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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