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야마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국도변에 쳐 놓은 천막 아래 몇 가지 농산물이 놓여 있고 노인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그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 그분들의 추천대로 국도가 아닌 옛길로 코스를 바꾸었다.

이 길은 에도시대 다이묘(지방영주)일행이 참근교대를 위해 에도(지금의 도쿄)로 갈 때 이용한 길이다. 에도 막부 시절 다이묘들은 1년 기준으로 장군이 있는 에도와 자기 영지를 오가며 근무했다.

에도를 떠날 경우에는 자신의 정실과 뒤를 이을 아들을 남겨두어야 했다. 영지에서 에도를 오가는 데 드는 여행경비는 물론 에도에 머무르는 동안 드는 비용 또한 자신이 부담해야 했다.

이것은 지방 정부로서는 막대한 재정부담이었고 에도에 남은 가족은 인질이 되었다. 이 제도로 막부의 중앙집권적 권력은 강화되었고 지방 영주가 대립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다. 덕분에 에도막부는 260년을 존속했다.

오늘은 29킬로를 걸었다. 역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소개받았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소개받은 라면집으로 가는데 한국어가 병기된 교회 간판이 보인다. 일본에서는 교회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내일은 오랜만에 교회에 가야겠다.

한국인 교회 가족들과 즐거운 점심식사

다음날 11시 부활절 예배에 참석했다. 특별한 날이라 교토에서 초청한 목사님이 설교를 했다. 예배가 막 끝나려는데 교회 건물이 '쿵! '하며 크게 흔들렸다. 여기 와서 처음 겪는 지진이다.

목사님이 나를 교인들에게 소개했고 일어나서 몇 마디 인사를 했다. 일본 교회는 대부분 신자 규모가 적다. 예배 후에 점심을 함께 하는 친교회 분위기가 가족적이었다.

여행객인 나를 위해 목사님이 문씨 성의 여성 집사님을 소개해주었다. 그녀가 저녁에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을 떠나 이십 여일이 지나 김치가 그리웠던 참이라 기쁜 마음으로 응했다.

저녁식사까지는 시간이 있어 와카야마역의 아이스크림 가게에 앉아 언론사에 보낼 여행기를 정리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아주머니들과 오늘 경험한 지진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오늘 지진이 비록 3도로 경미했지만 지진은 늘 두려워요. 대형 지진의 전조일 수도 있으니까요." 큰 지진으로 쓰나미가 오면 최소한 5층 이상 높이의 건물로 올라가야 살 수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만득이네'에서 식사를 앞두고

저녁에 집사님과 인근의 '만득이네'에서 식사를 했다. 그녀는 돼지갈비에다 부침개 순두부 백반 등을 잔뜩 주문했다. 원 없이 한국 음식을 먹었다. 오늘은 가게가 쉬는 날인데도 나를 위해 식당 주인인 권사님이 문을 열었다.

생면부지의 나그네에게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따뜻하게 대접을 해준 것이다. 식사를 마친 다음에는 인근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불렀다. 집사님 노래 솜씨를 보니 오랜 내공이 묻어난다.

헤어질 때 문 집사님은 내일 아침 식사라며 편의점에서 산 오니기리(주먹밥)를 내게 건네주었다. 와카야마는 생각보다 낙후된 지역이다. 우리 교민들이 많으며 한국인 교회도 몇 군데 있다 한다. 걸어가다 보니 한국식당도 여기저기에 보였다.

다음날에는 열차로 그리고 일부 구간은 걸어서 온천 리조트 인 시라하마로 갔다. 같은 와카야마현이지만 이곳은 분위기가 사뭇 이국적이다. 힘들게 시라하마역에 도착했는데 버스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마을이 중심지역이란다.

역의 관광안내센터에 가니 마스크를 쓴 여직원의 말투가 퉁명스럽다. 숙소에 관해 상의를 하려고 하자 오늘 업무시간이 종료됐다며 여관 조합의 전화번호가 인쇄된 광고지를 준다.

피곤해서 조합에서 소개받은 몇 군데 여관 중 첫 집으로 예약을 했다. 그녀에게 "당신 덕분에 방을 잡았다. 당신은 참 친절하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계면쩍어하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자기는 대도시 오사카 출신이라며 목에 힘을 준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가 다가와" 17번째의 '마부유' 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 내려서는 바닷 쪽이 아니라 언덕으로 100미터를 올라가면 우측에 여관이 보일 것이다. 버스 요금은 400엔이고 내릴 때 내면 된다"라며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고 간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시라하마의 온천여관

방 한가운데 고다쓰가 놓인 정갈한 일본의 전통 여관방이다. 대욕탕은 아니지만 중규모의 온천탕이 방 앞에 있다. 손을 넣어보니 물이 미끈거린다. 옛날 일왕들이 힐링과 치유를 위해 왔을 정도로 일급수를 자랑하는 온천이다.

40대의 여주인이 드물게 보는 미인이다. 칭찬을 하니 "거리에 나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얼굴이에요"라면서도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아침에 나갈 때 기념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하니 흔쾌하게 승낙했다. 아쉽게도 다음날 일찍 출발하느라 사진 찍지 못했다.

다음 지역은 구마노다. 오늘은 먼저 걷고 열차를 타기로 했다. 바다를 우측으로 바라보며 걸었다. 어제 와카야마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말이 생각나 아름다운 망망대해가 무섭게 느껴진다. 쓰나미가 왔을 때의 피난 장소가 쓰인 표지판이 연이어 보인다.

수많은 터널을 통과했다. 첩첩산중을 걸었다.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차만 간간히 지나간다. 걷고 또 걸었다. 외로움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이윽고 저 멀리 바다가 보이며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아! 살았다." 오늘은 25킬로를 걸었다.

가게에 들러 늦은 점심으로 허겁지겁 빵을 먹었다. 레드와인을 한 잔 마시니 조금 마음이 안정된다. 더 이상 못 걷겠다. 그런데 아까 역무원에게 얻은 열차 시간표를 보니 히키가와역에서는 2시간 뒤에나 기차가 있다.

그다음 정거장은 조금 규모가 있는지 30여분 뒤에 출발하는 기차가 있다. 가게 주인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역으로 달렸다. 거금 3,000엔을 택시비로 썼다. 이번에 와서 처음 타는 택시다. 신구라는 역에서 환승을 위해 내렸다.

환승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역 앞에 있는 관광안내센터로 갔다. 구마노시역 인근의 숙소 문제를 상의하자 현이 달라 도와줄 수 없다고 한다. 구마노시는 미에현이고 이곳은 와카야마 현이란다.

그녀가 알려준 구마노시역 관광센터로 전화를 하니 자기들은 7시까지 근무하니 걱정 말고 오라고 했다. 30분 거리라 6시 전에는 도착하겠다.

이곳 센터 여직원이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는 너무 좋아하며 명함을 준다. 20년 전 한국의 김천 인근의 한센병 환자 마을에서 한국 대학생과 봉사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6개월째 공영방송에서 하는 한국어 강좌를 듣고 있다 했다. 식민지 시절 일제가 신사 참배를 강요한 사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태극기와 일장기를 단 내 배낭을 보고 감격하여 떠나는 나를 향해 오래오래 손을 흔들었다.

구마노로 가는 바닷길

구마노에서는 적당한 게스트 하우스가 없어 역 근처의 비즈니스 호텔을 잡았다. 구마노에는 스페인 산티아고처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200년 된 불교 성지 참배길(구마고도)이 있다.

빗속에 판초 우의를 쓰고 인근에 있는 세계 문화유산 사자바위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인 '하나노 이와야'를 둘러보았다. 이제 이세 신궁이 있는 이세시를 향해 출발이다.

걸어가는데 사람과 자전거는 통행이 불가능한 자동차 전용 고가도로가 나타난다. 우회길로 들어섰는데 길을 잘못 들어섰다. 한참을 가도 안내표지가 안 보인다. 산길로 들어선다. 이건 아니다 싶어 되돌아 나왔다.

인근 바닷가 마을 오오도마리로 들어가 동네 주민에게 길을 물었다. 산길이 험한 데다 거리가 멀어 오와세까지 걸어가면 한밤중이 된다며 극구 말린다.

근처의 오오도마리역으로 갔다. 무인역인데 다음 열차가 오려면 아직 1시간 반이나 남았다. 아예 신발 양말을 다 벗고 미숫가루를 더운물에 타서 먹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열차 안에서 옆에 앉은 마쓰모토라는 중년 부인과 얘기를 나누다. 남편이 심장마비로 쓰러져 오와세의 병원에 입원해 있다. 매일 병원으로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인데 이제는 남편의 상태도 많이 안정되었다고 했다.

남편도 그녀도 이제껏 해외에 나가 본 일이 없다. 언젠가는 북유럽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97세 된 친정어머니를 언니와 교대로 보살피고 있다고 해서 내가 효녀라고 칭찬해주었다.

그동안 부모님이 길러주시고 보살펴주셨는데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그녀는 반문했다. 자식을 길러 결혼시키고 이제 좀 편하게 살겠구나 생각했는데 쓰러진 남편 병수발에다 연로한 친정어머니를 돌보아야 한다. 그러다 간다. 이것이 인생인가.

다음 역에서 그녀가 내렸다. 기차가 떠날 때까지 홈에 서 있었다. 차가 천천히 움직이자 나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자기 얘기를 들어준 내가 고마워 그랬나 그녀가 눈물을 보였다. 남편이 하루속히 회복되고 그녀가 여생을 행복하게 살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이세신궁 입구 도리이

다음 방문 지역 이세시는 일본 왕실의 조상신을 모신 이세 신궁이 있는 곳이다. 년간 참배객이 6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달 말로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이 일전에 퇴위 신고를 하러 왔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주로 일본인들이 찾는 곳이라 외국인 관광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역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받아 짐을 두고 버스를 타고 15분 거리에 있는 내궁으로 갔다. 외궁은 역 근처에 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이세 신궁을 둘러보았다. 숲이 울창한 산으로 둘러쌓인 고즈넉한 분위기다. 규모가 거대하며 아름드리나무에서 역사가 느껴진다. 왠지 엄숙해진다. 일본 조상신에게 한일 양국의 우호증진을 기원했다.

비가 많이 내린다. 센또에 다녀왔더니 여기서 봉사하는 여성 마사미가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다. 또 다른 투숙객인 히로시마에서 온 시즈코도 함께 가서 즐겁게 저녁식사를 했다. 이곳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 총각이 경영하는 이자카야였다. 1인당 500엔씩 더치페이했다.

내일은 오랜만에 대도시인 오사카로 간다. 출판사 신 대표가 나를 격려하러 이곳으로 온다. 숙소도 그가 특급호텔을 스폰서 했다. 덕분에 내일은 숙소 걱정 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허남정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