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술술 풀리는 날 VS 이상하게 일이 꼬이는 날

요즘에는 이상하게 하는 일마다 꼬였다. 같은 미용실에 같은 헤어디자이너한테 한 머리인데도 왠지 마음에 안 들고, 구입한지 얼마 안 되는 노트북인데도 너무 느린 것 같고, 작년에 입었던 옷이 너무 꽉 끼는 것 같은… 뿐만 아니라 생각도 못한 업무 파트너가 나타나 협약을 맺자고 손을 내밀기에 반갑게 손을 잡았다. 그런데 상대방이 잇속만 차리고 슬쩍 손을 빼버렸다. 결국 그 일을 위해 나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는데 맨땅에 헤딩한 것 같은 결과가 나를 쳐지게 만들었다. 살면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경우는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은 이런 기분을 전환하는 ‘행복과 행운을 잡는 방법’에 대한 소개를 하겠다.

우울한 기분의 악순환

쳐지니 의욕이 없어지고, 만사가 귀찮아 진다. 자연스럽게 불만이 많아지고, 불평도 늘어만 갔다. 하지만 불평 불만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가슴 속에 그 불평불만 더미들을 쌓아놓고 있었다. 해소를 못하니 답답함은 쌓여가고...”행복한 삶 그리고 행복한 이미지와 서비스”에 대해서 강의를 하는 내 자신이 참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문득, ”나는 지금 행복한가?” 거울 속의 나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Nobel 경제학상 수상자인 “카네만 교수”는 「하루 동안 기분 좋은 시간이, 길면 길수록 행복한 삶」이라 하였다. 그런데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하루 중 행복한 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느끼면서 내게 터닝 포인트가 필요함을 느꼈다.

행복은 상황보다는 그것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그러했다. 미용실, 노트북, 옷. 모두 제자리에 그대로였는데. 그것을 보고 느끼는 내가 바뀐 것이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행복의 스위치를 켜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라고나 할까? 얼마 전 지인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우연히 탑 탤런드 K씨를 보았다고한다. 같은 여성이 봐도 매력적인 그 미모를 보면서 속으로 ‘저 사람은 참 좋겠다.’ 싶었다. 그 생각은 순수한 부러움이었지 질투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 지인의 마음속에 저 사람과 지인은 전혀 다른 세계의 다른 사람으로 선을 진하게 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투가 나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그 지인의 잣대로 보았을 때 그 지인과 비슷한 상황과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질투를 한다고 한다. 질투를 하는 순간 행복의 스위치는 비교로 인해서 곧잘 껴져 버리는 것 같다고 한다. 그렇다. 사실이다.

남과의 비교가 행복을 가로막는 방해꾼

주변의 동료나 친구의 일이 자신보다 더 잘 풀리면 행복이 잠시 멈추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비교는 참 못난 짓이다. 더 크게 볼 일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목표는 원대하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관대해 지는 것이리라… 저녁으로 근사한 한정식을 먹으러 가는 사람에게 빵 한 조각 줬다 뺏는 것이 그리 노엽지는 않다. 참을 만하다. 하지만 배고파하기만 할 뿐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던져진 빵 한 조각은 먹는 것의 전부로 보일 수 도 있고 줬다 뺏는 행동을 경험했다가는 그 노여움이 하늘을 찌르지 않을까? 바로 꿈의 차이다. 목표의 차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져야 할 꿈의 파이를 조금 넓힐 필요가 있다.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은 감사하게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하고 친해진다. 생각해보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가 슬쩍 빼버렸던 나에게 주어진 그 많은 기회들… 또한 실망하기 보다는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그 기회들이 내게 주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했다. 늘 여유가 있고 행복에너지가 넘치는 한 성공한 경영자에게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성공한 경영자의 성공비결

그 대답은 간결했다. “좋은 결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좋은 결정은 어떻게 내릴 수 있었는지 물었더니 “ 좋은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라고 한다. 좋은 경험은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물으니 “나쁜 경험들 덕분입니다.”라고 한다. 우리가 생각했던 그 수많은 나쁜 경험들이 우리를 성공의 길로 인도해주는 반딧불이었음을 우리는 몰랐던 것이다. 성공은 아무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패 또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도전을 해야 성공도 그리고 실패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행복의 결도 달라진다.

행복한 사람들은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행복한 사람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실패를 성공의 씨앗이라고 여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던가! 한 발명가는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나는 9,999번의 실험을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그 발명가의 한 친구는 실패를 1만 번 되풀이할 셈이냐고 그 발명가에게 물었는데 그는 이렇게 답했다.“친구, 나는 실패한 게 아니라 전구가 안 되는 이치를 9,999번 발견했을 뿐이라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네!”바로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의 실패에 대한 생각이다.

역시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다. 상대성이론이 인정받기 전까지 아인슈타인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아홉 살 때까지 말을 잘 못해서 학습지진아 취급을 당했고, 독일의 중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공부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취리히공과대학에 지원했다가 낙방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가정교사와 임시교사를 전전하다 특허사무소의 심사관으로 채용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물리학 연구를 포기하지는 않은 결과, 결국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역사적인 위인이 되었다.

실패하는 것을 꼭 두려워 할 필요는 없는 이유

아무것도 겨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명중시킬 수 없다. 실수는 인간의 일부다. 네 실수의 실체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 실수는 어렵게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삶의 교훈임을 음미하자. 치명적 실수는 가급적 피해야겠지만, 대부분의 실수로부터 우리는 보통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많은 인생의 실패자들은 포기할 때 자신이 성공에서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실패하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도도 안하면서 성공을 원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자전거를 타고 싶다면 우선은 넘어질 준비를 해야하는 것처럼, 성공을 원한다면 실패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알고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운은 운을 부르는 사람을 따라간다. 그리고 운이 왔을 때 재빠르게 알아보는 눈도 필요하다. 영국 BBC 방송에서 보도했던 흥미로운 연구보고서가 있다. 리처드 와이즈만 교수가 지난 10년간 한 실험으로, 자신이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운이 나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연락하도록 신문광고를 냈다. 수백 명의 남녀가 지원을 했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실험에 참여시켰다. 먼저, 행운을 알아차리는 능력을 파악하는 실험을 했다. 신문을 주고, ‘신문에 사진이 몇 장이 실렸는지 말하라’고 한 것이다. 이 때 와이즈만 교수는 신문 가운데 “이 광고를 봤다고 말하고 250파운드를 받으세요.”라고 신문지 절반크기의 광고를 냈다.

어떤 사람이 250만 파운드를 받았을까?

행복과 행운이 따르지 않는 사람은 신문에 사진이 몇장이 실렸는지만 찾아내느라 ‘이 광고를 봤다고 말하고 250파운드를 받으세요’라는 광고를 놓친 반면, 행운이 따르는 사람은 이 광고를 찾아내는 비율이 높았다. 운이 나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운이 좋은 사람보다 긴장돼 있고 열망이 커서, 기대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가로막힌다는 것이다. 뭔가를 찾는 데 너무 열중한 탓이다. 닭을 찾다가, 꿩을 놓치는 식이다. 행운이 따르는 사람은 더 여유가 있고, 더 열려있어서 자신들이 찾는 것 이상의 것을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기회를 만들거나 알아채는 능력이 뛰어나고, 직감에 따라 결정하고, 긍정적 기대로 자기만족적 예언을 하고, 불운도 행운으로 바꿀 수 있는 긍정적 사고를 갖는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행복과 행운을 보지 못한다

행복과 행운은 저절로 굴러 들어오지 않는다. 복권을 사야 복권에 당첨되는 행운을 누리고, 데이트 신청을 해야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과 행운은 노력이 기회를 만난 것이라는 말처럼 행복과 행운을 원한다면 마음의 여유를 갖고 도전해보자. 실패를 하더라도 말이다.

 

박영실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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