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한 캐롤 리프 교수의 ‘심리적 안녕감’의 세부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자기 수용입니다.

자기 수용은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며 수용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 수용이란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며, 자신의 ‘좋은 점들’과 ‘나쁜 점들’을 모두 포함한 자신의 여러 측면들을 인지하고 수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단점이 장점에 비해 많다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단점이 많다고 느끼는 나는 내가 아닐까요? 일정 부분 '장점이 있는 나'도 또 일정 부분 '단점이 있는 나'도 모두 ‘나’입니다. '장점이 있는 나'만 남겨두고, '단점이 있는 나'를 버리는 것은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는 대부분 경우, 자신을 ‘좋아하는 부분’과 ‘못마땅한 부분’을 구분하곤 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으로 자신을 경계 짓곤 합니다. 동서양의 심리학과 사상을 통합시킨 통합심리학의 창시자이자, 의식연구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는 켄 윌버(Ken Wilber)는 그의 저서 《무경계》에서 ‘경계 지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 바 있습니다.

"아주 흔한 자기 갈등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군사전문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경계선은 잠재적인 전선이기도 하다. 하나의 경계선은 두 개의 대립한 영토와 전투 가능성이 있는 두 진영으로 나누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영혼에 경계선을 그으면, 그와 동시에 영혼의 전쟁터가 만들어지게 된다."

켄 윌버의 말처럼 우리는 스스로가 만드는 경계 때문에 정신이 분열되고 대립하며, 투쟁의 장에 억지로 세워집니다. 하나의 경계를 긋는 것이 곧 스스로 갈등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개 나를 둘로 나누어 마음에 드는 한쪽은 받아들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쪽은 받아들이길 꺼려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쪽을 여전히 내키지 않은 채로 마음에 담아둔 나는, 자신에 대해 뭔가 충분치 못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며, 마음 깊은 곳에서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다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뭔가 부족해!’ 혹은 ‘나는 뭔가 잘못되었어!’라며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 나라는 존재는 뭔가 부족하지도 않고 뭔가 잘못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로서, 단점과 장점을 동시에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결점이 없는 완전한 인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은 장점도 가지고 있고 단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장점만 골라서 가지고 있다거나 단점을 떼어내 버리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빛으로부터 그림자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입니다. 빛의 존재만 인정하고 그림자는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빛으로부터 그림자를 분리해내겠다는 억지가 그토록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에서 마주하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이미 행복의 반을 얻은 것이다.’라고 역설한 인도의 음유 시인이자 명상가인 인드라 초한(Indra Chohan) 역시 같은 맥락으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곧 행복의 시작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단점’이든 ‘장점’이든 혹은 ‘좋아하는 부분’이든 ‘못마땅한 부분’이든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잠시 7,000만 년 전 공룡이 절대적 강자로 군림하던 시대로 가보겠습니다. 그 당시 우리 인간은 웬만한 집채보다 큰 공룡들에 비하면 너무나 약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생존이 가장 큰 관심사였겠지요. 까딱 잘못하면 공룡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인간은 생존에 유리한 자극은 받아들이고 불리한 자극은 멀리한다는 생명의 법칙에 따라 본능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고 ‘통증’ 즉 ‘위험’은 피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 그들에게 있어 쾌락은 ‘먹는 것’과 ‘짝짓기’가 거의 전부였을 테니까요. 어떤 위험한 경우에도 ‘먹는 행위’는 생존을 위해 가장 우선시되었으나, 단 하나! 공룡의 출현은 예외였을 겁니다. 공룡이 나타나면 그 즉시 먹는 걸 멈추고 잽싸게 도망쳐야 했을 겁니다. 당장 배를 불리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을 테니까 말입니다. 이 말은 ‘쾌락’보다 포식자가 주는 ‘위험’이 생존에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생존의 위험 속에서 살아남은 우리 조상의 뇌는 자연히 쾌락보다는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이 더 강한 유전자를 물려주었을 겁니다. 뇌 과학적으로 보면, 위험이나 공포를 관장하는 대뇌 변연계의 ‘편도체’로부터 위기 신호를 받은 ‘해마’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더 중요하게 갈무리한다는 것입니다. 즉 뇌의 이런 부정적 경향이 분노나 슬픔, 우울, 죄책감, 수치심 등과 같은 다른 부정적 감정들을 부추겨 지나버린 상실과 실패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현재의 가능성을 폄하하며, 미래의 장애물을 과도하게 확대해석합니다. 우리가 종종 자신을 '나는 뭔가 부족해!' 혹은 '나는 뭔가 잘못되었어!'라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간 뇌의 진화론적 이유로 우리는 성장하면서 가정에서는 부모에 의해 1:18, 학교에서는 선생님에 의해 1:12의 비율로 부정적인 것에 더 노출되며, 사회에서도 온갖 부정적인 표현이 난무하는 환경에 놓여지게 됩니다. 또한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나 5세가 될 때까지 부모에게 최소 4만 번 혼이 난다고 합니다. 약 한 달에 666번, 하루에 22번꼴인 셈입니다. 이런 부정적 경험은 우리의 마음속에 계속 쌓이게 되어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제한하게 됩니다. 어쩌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정말로 자신을 사랑할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자신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도록 학습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끌어안을 때,
자신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드러내 보일 때,
당신은 망가지는 게 아니라 온전해진다.
자기 그늘을 불편해하지 않고 태연히 끌어안을 때,
당신은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이 되고 당신 인생은 굉장한 모험이 된다.
자신의 모호함과 어수룩함을 불편해하지 않을 때,
당신은 자연스러워진다.”

- 디팩 초프라(Deepak Chopra), 정신신체학자, 《우주 리듬을 타라》 중에서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오상민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중소기업진흥공단 창업멘토링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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