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과 부처님 ①

입력 2012-05-16 11:09 수정 2012-05-16 11:21
“형님, 재들 그만 짝 지워줍시다”
<서로 좋아할래나 모르겠구먼>
“좋아하고 말고가 어딨어요, 나이는 먹었고 농사 외에는 달리 할 것도 없질 않습니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구먼, 아우님 좋으실대로 함세>

초등학교만 겨우 마치고 농사짓는 집안 일에만 매달려 살아온 처녀 총각이 결혼했다.
이들 신혼부부도 농사꾼이었던 그들의 부모처럼 살아갈 판 이었다.

꿀맛? 같았던 신혼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3년이 지나면서 아이가 생겼다.
즐거운 나날이었으므로 농삿일이 힘든 줄도 몰랐다.

아이가 생기면서 이들 부부에게 고민이 생겼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도회지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시골에서의 탈피는 아들의 태어남과 맞물렸다.
밭일 준비를 하다가 산통(産痛)을 느껴 급히 택시를 불러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이는 정작 병원과 거리가 먼 곳에서 태어났다.
엄마가 낳았다기 보다 빠트렸다가 맞을 듯 했다.
아니, 아이가 세상 구경하려고 성급하게 뛰쳐나왔다고 할만 했다.

그날 그렇게 택시 속에서 태어난 아들은 길에서 태어났으므로 길동(吉童)이란 이름을 달고 살게 됐다.
길동을 낳은 뒤 서울 경동시장으로 진출, 막노동, 커피장사, 채소.단무지 장사 등을 하면서 돈을 모았다.
악바리 장사꾼으로 변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돈 모으는 일에 전념했다.
길동이 고교생이었을 때 작은 집을 두채나 장만하게 된 부모들은 이만하면 하고 한숨 돌릴만하게 됐다.

길동은 전문대학을 겨우 마쳤다.
좋은 대학나와 큰 사람? 되기를 갈망하며 뒷바라지에 온갖 신경을 썼던 부모님들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해 버리게 된 것이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길동은 대학입시가 자신의 공부 능력과 맞질 않는다고 느끼자 「돈 만 잘벌면 된다」로 바뀌어 버렸다.

요즘 길동은 장가들려고 열심이지만 대학입시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차츰 깨달아 가고 있다.
학력과 돈이 문제인 것이다.

길동은 자신이 크게 잘 못 하지도 않았는데 학교, 돈, 부모 때문에 장가도 못가고 일이 꼬여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길동이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는 습성은 초등학교때부터 길들여져 왔다.

길동은 어려서 장사소리를 들을 만큼 힘이 셌다.
공부도 곧잘했다.
언제부턴가 반 아이의 부모가 봉투들고 담임선생 찾아 다니며 치맛바람 일으키는 일이 있고서는 (그런일은 초등학교 내내 지속됐다) 벼락맞은 고목나무 신세처럼 변해갔다.

돈의 막강한 힘을 깨달은 길동이 처음 주목한 곳은 은행이었다.
모든 돈이 모이는 은행, 「그래, 은행장만 되면 세상 돈 다 만질 수 있잖아」하고 은행장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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