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를 찾으러 오카야마역에 내렸다. 두 번째 오니 낯이 익어 고향에 온 것 같다. 그런데 게스트 하우스의 현관 암호를 눌렀는데도 열리지 않는다.

이상하다 싶어 다시 누르려는데 남자 봉사요원이 나왔다. 그 새 암호를 바꾼 모양이다. 침대로 가니 나를 한 때 공황상태로 몰고 갔던 그 노트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오카야마의 맛집

숙소 인근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라면집이 보였다. 물어보니 50년이 넘은 이곳의 맛집이라 한다. 앞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잠깐 사이에 내 뒤로 20미터도 넘는 줄이 생겼다.

보통 돼지뼈로 육수를 내는데 이 집은 특이하게도 닭고기를 쓴다고 했다. 먹어보니 역시 맛에 전통이 묻어난다. 주인 아주머니가 친절하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준다. 내가 배낭을 맨채로 불편한 자세로 앉으니 그 좁은 가게에서 배낭 놓을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다음 여정은 히메지다. 일반열차를 타고 작은 역에 내려 히메지역을 향해 걸었다. 히메지역에 도착 관광센터의 여직원에게 가까운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받았다.

역사 바깥으로 나서니 저 멀리 히메지 성이 보인다. 일본의 3대 성 가운데 하나이자 가장 아름다운 성이다. 과거 신칸선 차창으로 멀리서 본 적은 있지만 직접 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히메지 성 앞에서

서양 관광객이 많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느낌이다. 숙소의 봉사요원 교코에게 가까운 센또를 소개받았다. 센또 가는 길에 길을 물은 어느 40대 여성은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는 무척 좋아한다.

그녀는 6개월 전부터 일본 공영방송에서 하는 한글강좌를 듣고 있다고 했다. 헤어지면서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녀가 "반갑스무니다"라며 수줍게 웃었다.

센또에서 목욕하는 동안 짧은 머리에 험상궂게 보이는 50대 후반의 남자에게 신경이 쓰인다. 몸에 문신은 없지만 아무래도 그쪽 출신 같다.

60대의 목욕탕 여주인이 남자 탈의실과 욕탕을 종횡무진 왔다 갔다 한다. 남자 손님이 아랫도리를 훤히 드러낸 채 탕에 서서 여주인과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일본의 센또에서는 낯익은 장면인데 오랜만에 보니 역시 신기하다. 주인 아주머니가 벗은 손님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일본 문화를 제대로 느껴보려면 센또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Enjoy sento in Japan!"

몸을 닦고 옷을 입어야 하는데 그 조폭 같은 남자가 내 바로
옆의 옷장이다. 나도 같이 옷장을 열다가는 그분께 폐를 끼칠 것 같아 그가 옷을 다 입기를 기다렸다. 옷 입는 속도는 왜 그렇게도 느린지 짜증이 났다.

나가니 목욕탕 안 간이식당에서 그가 점잖게 생맥주를 마시고 있다. 나도 목이 말라 옆자리에 앉아 한 잔 시켰다. 여주인이 자판기에서 식권을 뽑아오라고 한다.

맥주 안주로 흔한 '에다마메' 즉 삶은 완두콩을 시켰다. 재고가 없었는지 새로 삶아서 가져왔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갓 삶아서 그런지 맛도 있고 양도 많았다.

조끼 한 잔을 거의 다 비웠는데도 안주가 절반 가까이나 남았다. 옆을 보니 그가 두 잔 째 시킨 조끼에 술이 절반이나 남았는데 안주가 없다. 내가 그릇을 내밀며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고 하니 그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 그는 부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는 등 말이 많아진다. 그리고 최근에 게스트 하우스를 오픈했다며 친구들에게 소개를 좀 해달라고 했다. 그가 주섬주섬 명함과 전단지를 꺼내는데 갑자기 맥이 빠졌다.

히메지 성 앞에서

아침에 일어나 히메지성을 둘러보았다. 명성 그대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이다. 한 마리의 백로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백로성'으로도 불린다.

17세기에 처음 지어진 작은 요새 수준의 성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위가 증개축을 해 오늘의 히메지성으로 만들었다 한다.

이 성은 일본 봉건시대 건축의 백미로 199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완벽한 방어용 성이다. 깊은 해자가 삼중으로 둘러쳐져 있고 해자 사이에는 나무를 울창하게 심어 놓았다. 그리고 성안을 미로로 만들어 침입한 적의 동태를 위에서 손금 보듯이 훤히 볼 수 있다 한다.

16세기 전만 해도 일본에는 은 제련 기술이 없어 은광석 덩어리를 조선으로 가져와 제련해 가져갔다고 한다. 그런 그들이 조선에서 제련기술을 이전받았다.

마침 대규모의 이와미 은광도 발견되어 17세기 일본은 전 세계 은 생산량의 1/3을 점했으며 수출도 활발히 이루어져 경제대국 군사대국으로 발전했다. 당시 일본이 보유한 조총의 숫자는 서양의 모든 나라들이 가진 조총보다 많았다고 한다.

한편 조선에서는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이 '사치풍조 척결'을 내세우며 은광개발을 중지시켰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은 제련업자들의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도쿠가와가 일본 전국을 통일하고 수도로 정한 에도(지금의 도쿄)는 당시 인구가 100만 명 규모로 세계 4대 도시중 하나였다. 조선은 성리학에서 뒤떨어진 일본을 미개한 나라라고 무시했다.

오늘날은 어떤가? 여전히 우리 정치권은 그리고 일부 국민들도 일본을 가볍게 본다.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13억 인구의 중국에 밀려 GNP 세계 3위로 밀려나기는 했지만 높은 기술력과 국민의 단합된 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본은 서구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아시아 유일의 선진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나라로서 세계경제가 불안해지면 먼저 일본의 엔화 값이 오른다.

중국이 경제대국 군사대국으로 부상했지만 일본은 주눅 들지 않는다. 그들은 기술력 그리고 인문학에서 중국을 압도한다. 27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 숫자가 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한다.

근세에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중국을 그리고 당시 최강국이던 러시아를 이긴 전통이 있다. 그리고 중국은 일본에 패배했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부정부패가 없고 국민들이 사회지도층을 신뢰한다.

길을 걷다 보면 가장 많이 만나는 것이 크고 작은 신사이고 편의점이다. 신사는 일본인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들 정신문화의 바탕이다. 전국에서 모시는 신사의 신들 가운데 정점에 있는 것이 일왕이다.

패전 후 일왕이 인간선언을 했다고는 하지만 정신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여전하다. 그래서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도 일본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일왕제를 온존시켰던 것이다.

일왕은 일본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언론이 일왕의 동정을 보도할 때는 극존칭을 사용한다. 일왕의 생일은 공휴일이며 사후에는 그 기일이 적당한 이름으로 공휴일로 정해진다.

크리스마스나 석가탄일은 공휴일이 아니다. 일본에는 800만 명의 신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나 부처도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이며 서열로서는 일왕의 아래에 있다. 그래서 일본에는 기독교 신자의 숫자가 미미하며 '전도의 지옥'이라 일컬어진다.

국민의 구심점으로의 일왕제도가 기능하고 있다. 일본인에게 일왕은 특별한 존재다. 그런 일왕을 전범의 아들 운운하며 사과하라고 한 우리 국회의장의 공개 발언은 일본 국민들을 화나게 했다.

한일의원연맹의 회장을 역임했고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는 그가 공개적으로 일왕을 언급한 것이 납득이 안간다. 그의 발언이 잠시 우리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가 되었겠지만 한일관계는 크게 후퇴했다.

부모가 상대방으로부터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했다고 일본 국민은 생각한다. 그들의 정신세계의 바탕인 무사도는 모욕을 당하면 반드시 복수하라고 가르친다. 어떤 형태로든 일본 정부의 보복조치가 따를 것이다.

히메지 성을 둘러보고 역으로 가는데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빌딩 앞에서 빗자루로 청소하는 모습을 본다. 아침에 자기 집이나 가게 앞에 물을 뿌리고 청소하는 것은 이곳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센또에서 목욕을 하고 나면 다음 사람을 위해서 자기 자리를 깨끗이 하고 작은 물통 등 비품은 원위치를 시킨다. 놀이터에서 놀던 어린이가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고 나면 휴지로 세면기에 틔긴 물을 깨끗이 닦고 나온다.

2-3년 전의 일이다. 롯데면세점의 간이 휴게실에서 아내를 기다리는데 일본의 30대 여자 관광객 3명이 들어왔다. 쇼핑하느라 점심을 걸렀는지 사 온 빵을 허겁지겁 먹었다.

다 먹고 나더니 화장지를 꺼내 탁자 위에 흘린 빵 부스러기를 깨끗이 닦았다. 뿐만 아니라 테이블 아래에 떨어진 것까지 깨끗하게 물티슈로 청소했다.

이것은 몸에 밴 그들의 생활습관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라기 때문이다.

고베시에서 열차로 20여분 거리의 아카시에서 고베역을 향해 걸었다. 일본은 편의점 천국이다. 나도 아침/저녁을 편의점에서 구입한 음식으로 해결할 때가 많다. 어떨 때는 하루 세끼를 모두 편의점 신세를 지기도 한다.

편의점에는 깨끗한 화장실이 갖추어져 있다. 길을 걷다가 편안하게 볼 일도 보고 음료수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직원에게 길을 확인하기도 하고 그들이 한가할 때는 일본의 궁금한 점에 대해 대화도 나눈다.

재작년 일본에서 온 대학생들로부터 한국의 편의점에 화장실이 없어서 불편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 와 보니 그들의 말이 이해가 갔다.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받으려고 고베역으로 갔지만 시에서 운영하는 관광센터가 없다. 고베시에서는 산노미야역이 서울역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다. 여기서 숙소를 소개받고 인근의 센또에서 온천욕을 즐겼다.

매일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떠돌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저녁에 센또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즐거움을 생각하면 걸을 때 힘이 난다.

미치코가 준 선물의 내용을 어제 처음 확인했는데 그녀의 세심한 배려에 감탄했다. 각종 군것질거리뿐 아니라 강력한 약 성분의 파스도 한 봉지 들어 있었다. 어제 아침에 양쪽 허벅지에 한 장씩 붙이고 길을 나섰는데 다리가 시원했다.

나라로 가는 기차안에서 소풍가는 초등학생들과

다음날은 열차로 1시간 반 거리의 '나라'로 이동했다. 열차를 타고 가는데 아이들이 우르르 올라탄다. 초등학교 6학년인데 나라공원으로 소풍을 간다고 했다. 가는 동안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었다.

걷기 위해 먼저 내리면서 젊은 인솔교사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아이들과 즐겁게 얘기를 나눈 내게 먼저 사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혹시 아이들이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았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곳 나라는 우리 조상이 일본땅으로 건너와 수도로 정하고 찬란한 아스카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나라'라는 지명이 우리말에서 왔다. 일본 최고의 역사서인 '일본서기'도 이 시대에 편찬되었다.

나라역에서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받았다. 경비 절약을 위해 여러 사람이 자는 도미토리방을 예약했는데 가 보니 내가 예약한 3층에는 손님이 나밖에 없다고 했다.

단돈 2,000엔에 3층 전체를 내가 독차지하는 횡재를 했다. 침대 4개에 화장실 2개 그리고 샤워실이 2개나 있다. 살다 보면 이런 예상치 못한 좋은 일도 생긴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우선 숙소 근처의 나라공원에 들렀다. 야생 사슴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관광객들이 주는 사료를 받아먹는 평화로운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흥복사를 둘러보고 신사 앞으로 갔다. 60 대 아주머니 두 사람이 참배를 마치고 나온다. 그들에게 신전함에는 얼마를 던져 넣었느냐고 짓궂은 질문을 해보았다.

미에현에서 온 여인은 10엔이라 하고 친구인 기후현에서 온 여성은 무려 100엔짜리를 넣었다며 약간 목에 힘을 준다. 그렇지만 금액의 다과가 중요하지 않고 최소한의 본인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란다.

최소 단위는 5엔. 1엔의 경우는 알미늄 소재여서 던져 넣어도 소리가 나지 않아 신이 들을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내일은 와카야마로 이동한다.

 

 

허남장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