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세토대교 바라보다

구라시키에 하나 있는 유스호텔이 쉬는 날이라 해서 부득불 2배나 되는 돈을 치르고 역 근처의 호텔에서 투숙했다. 본전 생각이 나서 아침 일찍 2층 대욕탕에 가서 또 한 번 느긋하게 몸을 담갔다. 오늘은 어제 목욕하며 우연히 만난 오카야마 친구가 추천한 대로 근처 미관지구와 미술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미관지구는 구라시키 역에서 도보로 채 1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다. 날씨는 쾌청하고 상쾌한 아침이다. 벚꽃이 아름답다. 여기에는 우리 민속촌처럼 에도시대의 마을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물자 수송이 이루어졌다는 운하에는 나룻배가 다닌다. 물론 관광용이다. 주민들은 복장만 달라졌을 뿐 이곳에서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점이 우리 민속촌과는 다르다.

분리수거 쓰레기를 들고 나온 동네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었다. 이곳은 주변 도시들과 달리 2차 대전 때 공습을 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오하라 미술관만은 꼭 보고 가세요"라며 미술관 자랑을 잔뜩 늘어놓았다.

앞에 한 여성이 개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하고 있다. 영리하게 생긴 검은 색깔의 개가 내 스틱 소리에 자꾸 뒤를 돌아본다. 무기처럼 보이는 스틱으로 자기 주인에게 위해를 가하지나 않나 경계하는 눈빛 같다.

명치시대에 창업한 구라시키 방적 건물이 호텔과 식당으로 개조되어 활용되고 있었다. 구라시키 방적의 오너가 세웠다는 오하라 미술관은 9시에 문을 연다.

입구의 돌다리 위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바라기현에서 왔다는 여성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북해도까지 걸어간다는 내 얘기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미술관에 입장하며 배낭을 맡겼다. 세계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골고루 수집 전시해 놓았지만 눈에 익은 대작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도자기관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일본 도예가들과 일본에서 공부했다는 영국 도예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임진왜란 때 끌려갔던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에 도자기 기술을 전수했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더욱 연구 발전시켜 세계적인 수준의 도자기를 만들어냈다. 전시된 작품들이 창의적이며 종류도 다양했다. 그들은 기술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

이것은 장인을 존중하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일전에 라면을 처음 개발한 대만계 일본인이 죽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의 장례식에 일본의 전직 총리를 비롯해서 사회지도층 인사 등 수천 명이 참석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오카야마역에서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내리려는데 스틱이 보이지 않는다.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며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작년 산티아고 800킬로를 걸으며 정이 든 소품이다.

이곳에서는 목숨처럼 소중한 스마트폰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미술관 입장료 영수증에 전화번호가 있었다.

마쓰야마로 이동하는 열차 안에서 전화를 걸었다. 직원은 자기들 미술관에는 신고된 분실물이 없다며 미관지구 관광안내센터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예약한 유스호스텔이 있는 마쓰야마의 이요호죠 역에서 전화를 걸었다. 신고된 분실물은 없지만 내가 얘기한 곳에 사람을 보내어 확인해 보겠으니 30분 뒤에 다시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머리를 짜내어 기억을 추적하다가 미술관에 입장할 때 배낭은 맡겼지만 스틱은 맡기지 않은 사실이 생각났다. 입장 전 돌다리에서 이바라기현에서 왔다는 여성들과 사진을 찍느라 돌다리 난간에 걸쳐놓은 스틱을 깜박 잊고 미술관에 들어간 것이다.

30분 후 전화를 거니 내가 말한 그 자리에서 스틱을 발견했다고 한다. 내가 사카이데의 지인의 집에서 2박을 한다고 하니 착불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내가 이번 일요일 오카야마로 가니 그때 직접 찾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마쓰야마의 숙소는 2층으로 된 낡은 일본식 주택이다. 현관으로 들어서니 큰 개가 한 마리 떡 버티고 누워 있어 깜짝 놀랐다. 좁은 집안은 온갖 잡동사니로 빼곡했다. 2층으로 안내받았다. 방은 춥고 을씨년스러웠으며 실망스러운 유스호스텔이다.

주인의 권유로 찾아간 노천온천에 몸을 담그니 세토내해의 망망대해가 눈앞에 펼쳐진다. 여기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마쓰야마 숙소에서 독일인 친구와

뒤셀돌프에서 왔다는 독일인 투숙객이 있어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나보다 조금 연장인데 불교 참선의 매력에 빠져 일본에 17-8차례나 왔다고 했다. 길게는 1년간 체류한 적도 있는데 이번에는 3주 일정이라 한다. 한국은 88서울올림픽 직전에 한번 다녀왔다고 했다.

볼펜을 가지러 자기 방에 다녀온다고 나가다가 문지방에 머리를 받아 피를 흘린다. 일회용 밴드를 얼른 내가 붙여 주었다. 키가 190센티는 되는 것 같은데 한 두 번 머리를 찧은게 아니라고 했다. 독신이지만 애인은 있다는데 참선을 오래 해서 그런지 얼굴이 편안하게 보인다.

아침에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별하며 독일인 친구와 주인에게 내 명함을 건냈다. 자기 명함이 마침 떨어졌다며 주인이 개 명함을 가져와서는 여백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성은 개와 같다. 개 명함을 받은 것은 평생 처음 있는 일이다.

주인은 유스호스텔을 20여 년간 운영하고 있는데 손님에게 제공하는 음식은 직접 만든다고 했다. 파는 음식은 방부제 투성이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침에 떠나는데 주인이 개를 데리고 나와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29킬로 바닷길을 걸은 다음 이요 가메오카 역에서 열차를 탔다. 무인역이다. 중간에서 특급열차로 갈아타고 우타즈역에 내려 마중 나온 미치코를 반갑게 만났다.

그녀는 나의 30년 지기다. 그녀의 둘째 딸도 그리고 본인도 서울에 왔을 때 우리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우리 아이들도 초등학교 시절에 이 집에 보내 일본 생활을 경험하게 했다.

저녁에는 술을 못 마시는 그녀가 나를 배려해서 나와 비슷한 연배의 시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오랜만에 불고기와 일본식 김치를 실컷 먹었다. 그리고 퇴역 여가수가 하는 스낵에 가서 거의 12시까지 노래도 불렀다.

다음날은 그녀의 시동생 시오이리 전무가 운전하는 배를 타고 아와시마로 갔다. 그는 나이 든 어부로부터 어부 면허를 샀다고 한다.

그래서 낚시 좋아하는 그의 취미가 용돈벌이로 연결되었다고 했다. 어부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간 몇 박스의 생선을 공판장에 판 실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장 앞 매점에서 시식한 도코로텐

배를 타러 가기 전 미치코가 운영하는 공장에 들러 일하고 있는 아들 며느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270년 이어온 이 지역 명산품 도코로텐(한천으로 만든 묵의 일종) 공장의 오너이다. 그녀가 내온 3종류의 도코로텐을 맛있게 먹고 요트 정박 부두로 갔다.

아와시마 섬은 뭍에서 배로 30분 거리에 있다. 옛날에는 배가 항시 100척 이상 정박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섬이었다고 한다. 선원을 양성하는 학교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적한 어촌마을이다.

이곳에서 시오이리 전무의 동료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각기 71세 81세라 하는데 은퇴 후 요트를 사서 취미활동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81세 어른은 90세까지만 요트를 즐기고 싶다고 했다. 그들과 함께 인근의 활터에 가서 활을 쏘았다. 일본 활은 기장이 우리 정통활보다 2배는 되는 것 같다.

아와시마 표류우체국장과

바닷가에 있는 '표류우체국'이라는 곳에도 들렀다. 사별해서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나 엽서를 써서 이곳으로 보내면 보관해 주는 특이한 우체국이다.

개국한지 5년이 되는데 일본 국민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다. 영국에 지국도 생겼고 이 우체국의 사연을 테마로 영화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우체국이 문을 닫을 당시 우체국장으로 있었던 나카다씨가 볼런티어로 이곳 우체국장을 하고 있었다.

분류해서 꽂아 놓은 엽서를 몇 장 꺼내어 읽어보았는데 내용이 애절하다. 살아있을 때 했어야 하는 속마음을 죽은 다음에 표현하는 그들의 안타까운 마음이 진하게 전해왔다.

미치코와 불고기집에서

점심을 이곳에서 했다. "걸으려면 잘 먹어야 해."라며 미치코가 부득부득 우동에 고기덮밥 그리고 일본 정종까지 시켜주었다. 결국 절반을 남겼다.

1월에 무릎 수술을 받아 자기 집에 홈스테이를 받지 못해 미안하다며 그녀가 정갈한 호텔을 잡아주었다.

짐을 가능한 줄여야 하는 내 사정을 고려해서 선물을 못한다며 대신 숙박비를 부담하고 싶다고 해서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와시마 섬을 다녀와서 들어간 호텔 노천 욕탕에는 핑크빛 벚꽃잎이 둥둥 떠 있었다. 사카이데의 봄의 정취 속에서 마음까지 힐링이 되는 온천욕이었다.

일요일 아침 나를 역으로 안내하기 위해 그녀가 차를 가지고 왔다. 도야마에서 친구를 만난다는 얘기를 듣고는 선물로 가져가라고 도코로텐을 예쁘게 포장해서 가져왔다.

그렇지만 보름이나 남은 도야마 일정이라 정중하게 사양을 하고 대신 팜플릿만 받았다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그녀와 찻집에 들러 커피를 한잔 나누고 긴 이별을 했다.(2019.4.14)

 

허남정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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