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몬대교의 모습

큐슈 일정을 끝내고 혼슈에 들어섰다. 고쿠라 역에서부터 걷기 시작해서 모지항을 거쳐 간몬 해저터널을 지나 혼슈의 시모노세키로 들어섰다.

내 머리 위로 조수의 유속이 빠르기로 유명한 간몬 해협이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울렁거린다. 건강을 위해 터널을 걷는 주민들도 눈에 띈다. 거리는 780미터에 불과하지만 매우 길게 느껴진다.

시모노세키 역을 향해 2킬로 남짓 걸어가니 우측으로 그 유명한 고급식당 '슌판로'가 보인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이등박문이 이홍장을 불러들여 청일강화조약을 체결한 장소다.

청나라와 일본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이는 바람에 애꿎은 우리 백성들이 고통을 겪었다. 무능했던 왕과 부패한 관료들이 나라를 그 꼴로 만들었다.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들보다 나은 점이 있는가.

14개 조로 된 조약문의 1조에는 '청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는 문구가 있다. 이를 계기로 500년간 이어온 조선에 대한 종주국 지위를 중국은 잃게 되고 대신 그 자리에 일본이 들어서게 되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슌판로를 지나쳤다.

숙소가 있는 야마구치시 유다온천역으로 가려고 시모노세키역에서 젊은 남녀에게 길을 물었다. 친절하게 스마트폰으로 조사를 해서 알려준다.

청일강화조약의 현장 '슌판로'

나는 같은 길을 몇 차례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확인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그러는 가운데 보다 많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구글 지도가 있지만 아날로그 방식을 택했다.

 

20대 중반의 그녀는 아시아나 항공 후쿠오카 지점에서 7년이나 근무했다 한다. 우리말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일련의 아시아나 사태에 실망을 느껴 사표를 내고 간호학교에 입학했다. 같이 있는 청년은 동급생이라고 한다.

다음날 히로시마로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는데 인근 유다 초등학교 입학식이 있는 날이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학교로 가는 꼬마들의 표정이 재미있다. 그리고 예쁘게 차려입은 엄마들의 표정도 아이의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상기되어 있다.

새 연호가 시작되는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 연도에 사랑하는 자녀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다는 생각으로 아마 젊은 엄마들은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히로시마로 가는 신칸센 안에서 산케이 신문이 제공하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일본의 새 지폐에 들어갈 초상을 내각에서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5년 뒤에 사용될 지폐 초상을 벌써 결정해서 발표한다.

1,000엔 5,000엔 1만 엔 세 종류의 지폐다. 모두 오늘의 일본을 만드는데 기여한 근대의 인물들이다. 정치가는 없고 의학자, 교육자 그리고 실업가이다.

1만 엔 지폐에 들어가는 인물은 '일본 경제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다. 그는 91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을 해냈다.

일본 최초의 은행을 설립했으며 500여 개의 기업을 창업했다. 그리고 수많은 학교를 설립하여 일본 근대교육의 기초를 닦았다. 식민지 시대 조선은행의 설립을 주도했으며 조선은행권의 초상인물이 되기도 했다.

며칠 전 접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갑작스러운 비보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사람이 신이 아닌 이상 일생을 살다 보면 공도 있고 과도 있게 마련이다.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고 아직 한창 일을 할 나이인 71세다. 작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도 비슷한 연령대의 LG그룹 구본무 회장 별세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던 일이 생각난다.

일본사회의 기업인 존중 풍토가 당연하다는 남자와 열차 안에서

히로시마 역에서 일반열차로 갈아타려 홈에 서있다가 일본의 중년 남자와 얘기를 나눴다. 내가 일본 사회의 기업인을 존중하는 풍토에 대해 얘기를 하자 "기업이 잘 돼야 세금이 많이 걷히고 나라가 부강해지는데 당연하지 않습니까?"라며 오히려 내게 반문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대한민국에서 황금알을 낳는 원천은 기업인들이다. 이들을 대하는 정치권과 우리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안타깝다. 물론 이런 분위기를 자초한 일부 기업인들의 일탈도 있었지만 일부 기업인의 문제를 일반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요즘 정치권을 보고 있노라면 산업을 무시하여 백성을 가난뱅이로 만들고 결국 나라를 식민지로 이끈 조선시대의 사농공상의 계급사회가 부활한 느낌을 받는다. 기업인에 대한 존경심이 없이 국가의 성장과 국민의 윤택한 생활을 기대할 수 있을까.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들렀다. 서양 관광객들이 많다. 이들을 보며 중국의 만리장성을 생각했다. 조상들이 흘린 피와 땀으로 오늘의 중국인들이 밥을 먹고 산다.

히로시마 원폭돔 앞에서

히로시마는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이다. 20만 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고 폭심 반경 2킬로미터가 초토화되었다. 사진으로 보는 피폭 직후의 모습은 처참했다. 조선인 희생자도 적지 않았다.

 

당시 일본 정치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이 이런 재앙을 가져온 것이다. 이 원자폭탄 한방으로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고 우리는 35년 식민지의 질곡에서 해방되었다. 세상 일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한쪽의 불행이 다른 한쪽에서는 행복이다.

과연 오늘의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대한민국호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증진을 얼마만큼이나 생각하고 있을까. 내가 보기엔 본인 개인의 권익과 특권의 향유를 최우선시하고 차기 선거만을 생각하는 정치꾼들로 보인다.

공중부양을 한다는 허경영씨 말대로 대한민국이 오늘의 무기력에서 탈출하고 세계 속의 한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혁명 수준의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를 과감하게 실행할 수 있는 강력한 대정치가의 등장을 꿈꾼다.

이곳의 상징물인 원폭 돔 건물 잔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시카고에 산다는 일본인 여성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런데 나는 카메라만 들이대면 웃는 습관이 있다. 입을 벌여야 사진이 잘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확인해 보니 구도도 좋고 내 얼굴도 잘 나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곳은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는 장소가 아니다.

서둘러 다리를 건너가서 근엄한 표정으로 다시 찍었다. 이번에는 중국 여성 관광객에게 부탁을 했다. 그녀 솜씨도 보통이 아니다. 마음에 쏙 들게 사진을 찍어 주었다.

신칸선 열차 안에서 동방신기 팬 여성과

오카야마로 가는 신칸센에서 옆에 앉은 30대 여성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오사카에서 열리는 우리나라 아이돌 가수 '동방신기'의 펜미팅에 간다고 했다. 후쿠오카에 사는데 맞벌이 서민 부부다.

작년 친구 따라 처음으로 공연을 보러 갔었는데 한 번에 매료되었다 한다. 그녀의 스마트폰 갤러리는 온통 동방신기들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후쿠오카에서 오사카까지 3시간 남짓 거리인데 편도 13,000엔이라 한다. 왕복에 교통비가 26,000엔 거기에 입장료가 7,000엔이다. 우리 돈으로 30만 원이 훌쩍 넘는다. 너무 많은 돈을 쓰는 게 아니냐고 묻자 열심히 일을 해서 벌 것이라고 했다. 전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이다.

구라시키 역을 지나 20여분 거리에 있는 작은 역에서 내려 구라시키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빗속에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다른 손에는 스틱을 잡고 국도를 걸었다. 대형트럭이 지나갈 때면 좁은 보행로라 두려움으로 몸이 움츠러든다. 스틱 하나는 접어서 배낭에 넣었다.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 간다는 검정 교복 차림의 고3 학생에게 길을 물었더니 친절하다. 나와 동행하며 자세하게 안내해주었다. "가고시마에서 삿포로까지 걸어간다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본은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의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이 명치 이전에는 개별 국가였다. 지금은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국내 교통요금이 워낙 비싸기도 하다. (2019. 4.11).

 

허남정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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