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피해를 당한 구마모토성

엊저녁에는 번개가 번쩍거리고 천둥이 무섭게 쳐서 오늘 아침 걸을 일이 걱정이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파란 하늘이다.

오늘로서 새로운 2주 차 혼슈 걷기가 시작된다 계획대로 1주 차 큐슈 지역에서는 하루 평균 25킬로를 걸었다 날씨가 도와주었고 사방은 벚꽃이다 눈과
마음이 호강을 했다.

배낭에는 일장기와 태극기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먼저 밝고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한일민간외교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 4월 1일 내가 입국하던 날 오전 11시 일본의 새 연호가 발표되었다 30년간 계속된 헤이세이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새 연호는 새 일왕이 즉위하는 5월 1일 0시부터 시작된다.

서울의 일본인 친구는 내게 말했다 "일본의 새 시대의 개막이 선언되는 날 입국하고 또 걷는 동안 새 일왕이 등극한다 절묘한 일정이다"며 감탄을 했다.

나는 솔직히 말해 그 일을 염두에 두고 일정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본 열도 종단 도보 여행의 좋은 배경이 된 것은 틀림이 없다.

헤이세이(평성)에서 레이와(영화)로 바뀌었다 일본 국민들은 환호하였고 만나는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새로운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나가사키 폭심공원 조선인 위령비 앞에서 한국 관광객들과

1,300년 이상 이어왔다는 일본의 연호는 일본의 문화로 일본 국민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하지만 서기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생활의 불편을 호소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교도통신의 연호에 대한 조사를 보니 서기가 34% 연호가 24% 양쪽 다 사용하고 싶다는 비율이 39%로 나타나고 있다.

그간의 연호들은 모두 그 출처가 중국의 고전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자국의 가장 오래된 고전 시집 < 만요슈>에서 가져와 일본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지난 한 주간 걸은 큐슈의 어느 지역이나 역사적으로 우리와 무관한 지역이 없다.

가고시마와 사가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들이 일본 도자기 산업을 꽃피운 곳이다 일본의 국부 축적과 일본 도자기 문화시대를 열었다.

미야자키에는 백제인들의 후손들이 당시의 풍습을 그대로 보존 계승하며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 있다.

구마모토는 임진왜란 때 선봉장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가 만든 구마모토 성이 있다.

그가 포로로 끌어간 조선인들을 동원해서 지었다고 한다. 일본 3대 성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아름답고 견고한 성이다.

19세기 말 유신의 주역 사이고 다카모리의 반군이 이 성에 공세를 퍼부었지만 결국 포기했다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사이고는 "내가 가토공에게 졌다"고 말했다 한다.

그렇게 일본이 자랑하는 이 성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졌다 3년 전 지진으로 무너진 성의 모습은 처참했다 성의 중심인 천수각은 금년 중에 수리가 완료되지만 무너진 성벽의 복구에는 20년은 걸릴 것이라 한다.

일본인은 지진과 태풍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와 공존한다 그들에게는 이미 일어난 재해를 복구하는 일 그리고 닥쳐올 새로운 재해에 대비하는 일이 중요하다.

과거보다 미래를 생각하는 민족성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일본 국민 70%의 DNA가우리와 같다고 한다 대다수가 한 핏줄이지만 어려운 자연환경 속에서 오늘의 일본인이 만들어진 것이다.

금수강산에서 사는 우리는 자연의 고마움을 잘 모르고 산다. 일본 열도가 방파제처럼 막아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일본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구마모토에서 공직에서 갓 은퇴했다는 60대 초반의 여성 구보타씨를 만났다. 외손녀를 데리고 구마모토 성에 놀러왔다. 함께 식사하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10살 된 외손녀가 스테이크에다 밥 한 그릇까지 깨끗이 비우는 것을 흐뭇하게 보는 모습이 우리 할머니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헤어져 구마모토역으로 가는 나에게 "전차길을 따라 쭉 가면 역이 나온다"고 해서 한참을 걸어가는데 누가 뒤에서 쫓아오며 나를 부른다.

돌아보니 그들이다 숨을 헐떡이고 있다 전차길이 두 가닥으로 나뉘어지는데 오른쪽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내가 쭉 직진할까 봐 걱정이 되어 달려왔다는 것이다 헤어지며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구보타씨 그리고 외손녀와 함께

나가사키는 1945년 8월 9일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폐허가되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17만명의 희생자들 중 조선인도 무려 2만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가 찾으려 평화공원과 폭심공원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결국 주민에게 물어 물어 찾아냈지만 폭심공원의 바깥에 조그맣게 조성되어 있었다 꽃에 물을 뿌리고 참배했다.

중국인 희생자 위령비는 공원 내에 번듯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어째 우리를 이렇게 푸대접을 하는가 생각하게 된다 관광을 온 한국인 몇 사람도 같은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인들에 한국이라는 존재는 고대를 생각하면 콤플렉스를 느낀다 그렇지만 근대에는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무지몽매한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걸으면서 만나는 일본 국민들의 얼굴에서 우리에 대한 미안함이나 그늘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식민지 시대의 한국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역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광개토대왕 시절 가장 넓은 영토를 개척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영토를 빼앗긴 지역 사람들의 고통은 추호도 생각하지 않듯이 우리가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이루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본인들 눈에는 한국은 없다 아시아에서는 중국만 눈에 보인다.

우리는 한일관계를 영국과 프랑스 관계로 생각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800년 식민지로 지배했던 아일랜드와 영국 관계를 생각한다.

걸으면서 않은 일본인들을 만나며 얘기를 나눈다 모두 한국이 참 좋다고 한다 그들의 표정은 평화 그 자체였다.

사가의 숙소 관리인은 73세라 했다. 그에게 후쿠오카로 가는 국도에 대해 안내를 받고 출발했다 8킬로쯤 걸어갔을 때 내 앞에 소형차가 선다.

차 안에서 그가 내게 손을 흔든다 깜짝 놀랐다 나를 찾아 나섰다고 했다 걸어가는 나를 찾기 위해 넓은 도로 양옆을 둘러보며 위험한 운전을 한 모양이다. 나를 발견한 것이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한다.

내가 걷는 길에 있다는 일본 선사시대(야요이 시대) 유적지 요시노가리 공원까지 나를 태워주고 싶다는 것이다. 잠시 생각하다 그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10여분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 동네 산다는 그와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야요이 시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에 의해 일본 열도에서도 처음으로 벼농사가 시작되었다. (2019년 4월 8일)

 

 

 

허남정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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