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좀 과장되지만 4월 초 지역 전통문화 프로그램을 보기위해 전라도와 경상도, 그 사이 충청도를 거치는 것은 물론이고 경기도까지 쉼 없이 찾아 돌았다. ‘쉼 없이’라는 것은 1박2일이란 짧은 일정 때문에 붙은 꼬리표다. ‘삼만리’라는 단어가 주는 거리감은 1970년대 어린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엄마 찾아 삼만리’ 때문인데, 대체로 고단하고 아득함을 의미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매년 지자체로부터 지역의 전통문화 체험관광 프로그램 후보를 받는다. 콘텐츠가 취지에 맞으면 국비와 지방비를 매칭해 1억원을 프로그램 활성화에 지원한다. 이번에 순회한 지역은 지난해 12월에 심사하면서 새롭게 선정한 3곳이다. 심사에서 내 손으로 선정한 것이기 때문에 책임감과 기대감으로 다녀왔다.

전남 담양군 ‘죽로차 다도체험’, 경남 통영시 ‘통제영 12공방 공예체험’, 경기 수원시 ‘세시풍속 북새통’ 등 3곳을 차례로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를 듣고 컨설팅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종의 현장점검인데 프로그램 운영을 잘 하면 심사를 통해 예산이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때문에 지자체와 수행기관에서 열정을 가지고 준비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전통문화 체험관광 프로그램 육성 위해 컨설팅 지원

 

담양 죽로차 체험 프로그램 시연.

물론 수행기관의 전문성에는 편차가 크다. 순수 민간단체보다는 지자체 산하 기관들의 세부 프로그램이 짜임새 있는 이유도 전문 인력 유무에 따른 것이다.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 노력도 프로그램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많은 프로그램이 민간단체에 의해 지금껏 꾸려져 왔고 나름의 노하우가 축적돼 있기 때문에 이를 간과할 수는 없다.

통제영 12공방 체험 프로그램 시연. 중요무형문화재 제 114호 조대용 염장.

컨설팅 단은 2시간 동안 프로그램 수행기관 담당자와 지자체 관계자를 만나 계획의 충실성, 수행기관의 전문성, 지역관광 파급효과, 지자체 육성의지, 정부 및 사업추진기관 협업 정도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문을 진행했다. 이후 컨설팅 보고서를 만들어 수행기관과 공유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하고 프로그램 질을 높여 체험 관광객을 늘리는 것이 예산지원과 컨설팅의 취지다. 프로그램 자문을 컨설팅 단은 전통문화‧예술 콘텐츠, 관광, 마케팅 등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수원전통문화관에서 실제 진행중인 삼짇날 세시풍속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

이들은 첫날 새벽 기차를 타고 전남 남원역에 내렸다. 그리고 준비된 버스를 이용해 담양으로 향했다. 죽녹원 후문으로 들어와 한참을 걸어 오르다보면 죽로차 제다실이 나오고 이를 지나면 다도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우송당을 만나게 된다. 담양은 죽녹원,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길, 담양음식테마거리 등 관광자원이 제법 풍성한 곳이다. 하드웨어를 움직이는 것은 휴먼웨어다. 일은 사람이 한다는 것이다.

세상 일이 사람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문화 체험도 사람이 하고 맛있는 음식도 사람이 만든다. ‘휴먼&푸드’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이번 컨설팅투어는 우연찮게도 전통음식과 함께 한 여정이다. 이번 투어를 기획한 주관자의 센스가 읽힌다.

수행기관 전문성 지원해 관광객 늘리는 것이 목적

담양 떡갈비의 대표선수라고 할 수 있는 덕인관. 곧 가격을 올릴 것이라고 한다.

담양 컨설팅이 끝나고 지역 전통음식인 떡갈비 집을 향했다. 담양 떡갈비 대표선수는 1963년 창업한 <덕인관>이다. 업력만큼 가격도 만만찮다. 세 덩이 1인분이 2만9,000원인데 곧 오를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두 덩이로 조절된다는 귀띔이다. 가성비가 지금보다도 떨어진다는 의미다. 최저임금 상승, 원육값 인상 등 가격 인상요인이 겹친 상태라 고육지책인 것으로 사료된다. 그럼에도 이 집만큼은 역사성과 대표성으로 인해 저항을 크게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우 암소 갈빗살을 쓰는데 칼집을 내서 양념한 후 다시 뼈에 붙인다. 일반적으로 고기를 다지고 양념하는 이유는 원육이 안 좋은 부위이거나 상태가 나쁠 때다. 그러다 보니 <덕인관>이 1등급 이상 되는 한우 암소를 굳이 떡갈비로 만드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담양 떡갈비 자존심 56년 업력의 <덕인관>

싱싱한 쌈채소와 정갈한 상차림.

그러나 그것이 음식에 대한 고집이고 철학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덕인관>은 고조리서인 ‘시의전서’에 나오는 전통조리방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이를테면 ‘가리(갈비의 옛말)를 두치 삼사푼 길이씩 잘라 가로결로 매우 잘게 안팎 긁어 하고 세로로 어히고(자르고) 가운데를 타(잘라) 좌우로 젖히고 갖은 양념으로 주물러 제어 구어 쓰라’란 식을 따르고 있다. 이 집 박규완 대표는 가리구이로 지난해 대한민국 전통식품명인으로 지정됐다.

덕인관 떡갈비는 두번 구워 먹어야 한다. 속가지 익히려면 겉이 타기 때문이다.

두꺼운 무쇠 프라이팬에서 적당히 구워진 상태로 제공 되는 떡갈비는 속까지 다 익히려면 겉이 탄다. 그래서 적당한 타이밍이서 익은 부위를 뜯어 먹고 다시 한번 구워야 한다. 떡갈비를 뜯어 먹느라 밑반찬을 소홀하면 안 된다. 음식 값 상당 부분이 반찬값이기 때문이다. 싱싱한 쌈채소가 인상적이고 나머지 밑반찬은 식당 명성과 지역세에 비해 아쉬웠다.

덕인관의 신축건물 머릿돌에는 1963년 창업년도가 새겨져 있다. 그만큼 업력이 이 집의 자랑이다.

지체할 시간 없이 통영으로 향했다. 남해대교를 지날 때는 흐드러진 벚꽃터널을 지났고 멀리 해안마을을 감싸고 있는 봄 진객의 향연을 봤다. 남도의 봄은 무르익어서 곧 터져버릴 것 같은 팝콘처럼 느껴졌다. 지난 여름 다녀 온 통영 지세가 제법 눈에 익는다. 통영을 들어서면 박경리 선생이 쓴 ‘김약국의 딸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통제영 12공방 체험은 국보 305호 세병관 좌측에 붙어 있는 12공방에서 다양하게 이뤄지는 프로그램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이 있다 보니 경상‧전라‧충청 삼도의 장인들이 죄 모여서 군수품과 진상품을 만들었던 것이 오늘까지 이어진 귀한 문화자원이다. 현지 젊고 유능한 관광두레 PD 등이 프로그램을 주도하고 있다. 통영 역시 굵직한 관광자원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구슬만 잘 꿰면 12공방 체험 프로그램은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백석 시가 나붙은 강구안 뒷골목의 <한산회식당>

백석의 시가 잔뜩 붙어 있는 강구안 뒷골목에 위치한 통영의 흔한 횟집인 <한산회식당>이 객을 반겼다. 9명의 인원이 세 테이블로 나눠 앉으려 하자 사장은 두 테이블로 몰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생선모듬회 3인분 담음새보단 4인분, 5인분 담은 모양새가 풍성하고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애피타이저로 입맛을 돋우는 참소라무침.

새콤한 참소라무침이 입맛을 돋우고 굴찜이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할 무렵 갖은 해산물을 담은 메인 회접시가 테이블 한가운데로 공수됐다. 병어, 대방어, 참숭어(밀치)가 ‘상석’에 놓였고 멍게, 전복, 생굴, 소라, 개불이 좌우에 입시해 있었다. 철이 지났지만 대방어는 여전히 아삭함을 간직하고 있었고 개불은 선도 차이인가 싶을 정도로 그동안 봐 왔던 것과 색감이 틀렸다. 산낙지를 해삼내장젓(고노와다)에 찍어 먹는 풍미는 일품이다.

병어, 대방어, 참숭어(밀치), 멍게, 전복, 생굴, 소라, 개불 등으로 구성된 메인 회접시.

특회정식에서나 맛볼 수 있는 게사시미에 잔뜩 기대를 걸었다. 냉동 게에 간장소스를 붓고 양파와 고추 등으로 덮어서 나오는 데, 보기에는 간장게장과 비슷하지만 맛은 이국적이었다. 다행이 일행 중 입맛에 맞는 분이 독점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간장소스를 조금만 손보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 메뉴였다. 열기 구이도 예상을 뛰어넘어 탕수 형태로 나왔다.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메인 요리들이 모두 나올 무렵까지 한쪽 벽에 붙은 메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바로 제철인 도다리쑥국 때문이다.

간장소스 맛이 이국적이고 음식 이름도 남다른 게사시미.

봄철 제철 진미 ‘도다리쑥국’엔 남해가 온전히 담겨

도다리국은 연중 묵을 수 있지만 도다리쑥국은 초봄 두 달 남짓 맛 볼 수 있다. 남해안 특히 통영 식당에 ‘도다리쑥국 개시’가 써 붙어야 진정 봄이 왔다고 할 정도다. 도다리는 키우는 데 시간이 걸려 양식이 어렵다는 설이 있다. 그 보다는 좁은 가두리에 합사해서 키우기 어려운 어종이라서 그렇다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열기구이. 구이에다 소스를 뿌리는 탕수 형태로 나온다.

어부들은 도다리를 문치가자미로 부른다. 산란기가 끝나고 살이 물씬 오른 4월에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남해 해풍을 맞고 자란 자연산 ‘해쑥’과 궁합이 특히 좋다. 소문에는 통영이 가장 먹을만하다고 했다. 그러니 통영까지 와서 도다리쑥국을 눈앞에 두고 못 먹고 가려니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일행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맛만이라도 보자며 두 그릇을 시켰다.

남도의 봄은 벚꽃이 눈으로 환하게 다가오고 도다리쑥국 쑥향이 입으로 향긋하게 들어왔다. 맛보다는 올 봄 소원을 이뤘다는 기쁨이 더 충만했다. 통영의 특징은 생선국이나 탕을 뚝배기에 내오질 않고 거의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아 온다는 것이다. 맑은 국물에 뽀얀 속살을 드러내며 누워 있는 도다리를 쑥이 칭칭 감싸고 있다. 한입 입안으로 가져 오면 남도 앞 바다 짭쪼롬한 물맛과 진한 쑥향이 혀와 ‘왈츠’를 춘다.

4월 체철인 통영 도다리쑥국. 도다리 한마리가 통채로 들어가 해쑥과 어우러진 맛이 일품이다.

통영의 진미를 편안하게 음미도 못한 채 다시 버스에 올라타고 숙박지인 금산으로 향했다. 다음날 수원 컨설팅 시간을 맞추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정이다. 금산 1박 후 인근 인삼랜드 상행선 휴게소에서 인삼갈비탕으로 아침 식사를 했는데, 논하지 않겠다. 휴게소는 수수료가 매우 높기 때문에 질 좋은 음식을 가성비 좋게 손님들에게 내 줄 수 없는 구조다. 가끔 휴게소 음식이 맛있는 집이 뉴스가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수원갈비의 대명사 <가보정>…떡볶이로 시작해 외식기업 일궈

수원갈비의 일가를 이루고 있는 가보정 갈비.

수원은 정조 임금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원화성과 능행차 등 남겨 놓은 문화유산이 크고 고급스럽다. 인구 2000만 명이 밀집한 서울‧경기를 배후로 갖고 있기 때문에 관광자원만 잘 활용하면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데 이 보다 좋은 도시가 없다. 게다가 수원은 우리나라 절기 세시풍속을 전통문화관에서 꾸준히 체험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는 독보적인 곳이다. 수원시, 수원문화재단, 수원전통문화관 삼각 진영이 견고해서 프로그램 운영이 원활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원 가보정은 떡볶이 장사로 외시기업을 일군 입지전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는 곳이다.

수원에서는 수원갈비의 대명사급인 가보정에서 했다. 한정식 수준의 밑반찬이 인상적이었다. 된장찌개에 커다란 갈비뼈가 들어 있어서 재미났던 경험이다. 가보정 대표 김외순 씨는 원래 포장마차부터 시작해 오늘날 식당 기업을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가보정 밑반찬은 고급 한정식 수준으로 신선함을 중요시 한다.

12년간 떡볶이 장사를 해서 모은 돈으로 1992년 165㎡ 규모로 시작한 것이 현재는 현재는 5층짜리 건물 세 개 동으로 갈비타운을 만들었다. 1관 600석, 2관 550석, 3관 250석 등 총 좌석만 1,400석을 자랑한다. 밑반찬이 좋았던 이유는 모든 반찬을 김 대표가 직접 전수한 것이고 하는데 손님들이 집에서 만들어 먹기 힘든 것 위주로 메뉴를 짠다고 한다. 또 선도를 위해 만든 지 한 시간 이내 반찬만 내놓는다고 한다.

가보정 된장찌개에는 커다란 갈비 뼈가 들어가 있다. 된장과 고기 육수가 만나면 고소함이 살아난다.

음식도 마음이 맞는 사람과 먹어야 맛이 배가된다. 1박2일 동안 매우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식사만큼은 알차고 맛있게 했던 기억이다. 지역마다 음식의 색깔이 확연히 다른 것을 느낀 시간이었고 문화, 음식 등에서 전통의 승계와 유지, 발전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함께 한 이들과 재회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한경닷컴 유성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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