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다동 일대는 오래된 맛집이 즐비하다. 부민옥, 용금옥, 인천집, 남포면옥, 무교동북어국집, 철철복집 등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업력도 40~50년이 보통이고 서민들이 즐겨 먹는 전통 메뉴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다동이란 동명은 조선시대에 있던 다방(茶房)에서 유래됐다. 다방은 사옹원에 속해서 다도와 차례를 주관하던 행정조직이다.

이 곳 식당가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서울시청을 비롯해 인근에 대기업들과 공공기관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기 때문에 유동인구가 대단히 많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혼밥족은 손님들이 몰리는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을 피해야 눈총을 받지 않는다. 넉넉잡아 1시 30분 이후에 식당에 가야 자리도 편히 잡을 수 있고 눈총 대신 대접도 받을 수 있다.

 

민초애호식당전문점이란 액자가 식당 내부에 걸려있다. 칼국수는 민초들의 음식이다.

 

오래된 맛집 즐비한 다동 골목

필자도 가끔은 혼밥족이 돼 다동을 기웃거린다. 부민옥의 육개장과 양곰탕을 즐겨 먹었는데, 3시부터 브레이크 타임이 생기면서부터 그 시간대 식당을 찾으면서 우연히 발견한 곳이 <소라 스테끼와 칼국수>란 집이다. 혼밥족이니 스테끼는 언감생심이고 칼국수 한 그릇 말아 올리려고 2층 식당으로 들어섰다.

입구를 들어서면 우측 벽에 걸려 있는 ‘民草愛好食品專門店’(민초애호식품전문점)이란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칼국수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라고 할 만큼 대중적인 메뉴다. 밀가루와 양념 몇 가지, 그리고 금방 버무려낸 겉절이만으로도 호화로운(?) 상을 차릴 수 있다.

칼국수와 수제비를 섞은 칼제비.

민초애호식품전문점 <소라 스테끼와 칼국수>

정성스레 치댄 밀가루 반죽을 숙성시켜 밀가루 풋내를 덜어내고 면으로 뽑아내거나 수제비를 떠낸다. 필자가 즐겨가는 칼국수 집은 종로 익선동 초입에 있는 <종로할머니칼국수>와 <찬양집>이다.

<찬양집>은 홍합, 바지락 등 해물로 육수를 낸 집인데, 미쉐린 가이드 ‘빕 구르망’에 선정되기도 했다. 빕 구르망은 3만 5,000원 이하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게 부여하는 상징이다. <종로할머니칼국수>는 멸치로 육수를 낸다. 두 집이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손님을 양분하고 있다. 필자는 해물 베이스보다 멸치 육수 베이스를 조금 더 좋아한다.

대부분 칼국수 점포처럼 겉절이와 적당히 익은 신김치 두 종류를 내 놓는다.

칼국수가 식당 메뉴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이 끝나고부터다. 한국전쟁 때부터 들어온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밀가루는 특히 1955년 초등학교에 무상제공 되면서 시중에 널리 풀렸다. 밀가루, 설탕, 면직물 등 삼백(三白) 산업이 이때부터 산업 중심축이 됐다. 3공화국의 혼분식 장려정책도 칼국수집을 늘리는 데 한몫했다.

한국전쟁 때 밀가루 원조...칼국수집 늘어나

바지락 칼국수는 1960년대 안산시 대부도 염전에서 일하는 염부들이 간단하게 한 끼를 때우기 위해 개발됐다. 1980년대는 제부도 방조제 공사현장에서도 바지락 칼국수가 인기 메뉴였다. 방조제가 완공된 후에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바지락 칼국수를 팔았고 전국으로 확대됐다.

지난 3월 어느 날 식사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3시경 느지막이 들어 선 <소라 스테끼와 칼국수>. 손님은 단 한 명도 없고 주인의 인기척도 느낄 수 없이 적막하다. 구석에서 쪽잠을 청하고 있던 주방 아주머니가 부스스 일어난다. 다소 미안한 목소리로 식사가 되냐고 물었더니 자리에 앉으라고 한다. 단잠을 방해한 것이 미안해 비싼 메뉴를 시키고 싶지만 칼국수 아니면 스테끼를 먹어야 하는데, 스테끼는 양도 가격도 혼자로는 무리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칼제비를 시켰다. 칼국수 면은 물론 수제비의 식감도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이 집의 저녁 매출을 견인하는 스테끼는 일본말 ステーキ로 스테이크(steak)를 뜻한다. 양식의 스테이크가 아니라 한국식으로 변형했다. 남영동, 후암동 황해, 은성 등에서 파는 스테이크와 같다. 냉동 등심과 프랭크햄, 베이컨, 갖은 채소를 볶다가 나중에 케첩을 둘러 먹는다고 한다.

노란 알배추를 집된장에 찍어 먹으면 별미다. 알배추는 평소에는 칼국수 손님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속 노란 알배추 늦은 점심 혼밥족을 위한 아량

칼제비가 나오긴 전 김치와 알배추, 당근, 마늘쫑이 담긴 접시를 내왔다. 김치는 대부분 칼국수 집과 마찬가지로 겉절이와 신김치 두 가지다. 알배추 접시는 바쁜 점심시간에는 없는 메뉴다. 원래는 스테끼 손님들한테만 제공되는 것인데 늦은 점심을 먹는 혼밥족에게 베푸는 주인의 아량이다. 알배추를 찍어 먹는 된장은 시판 된장이 아닌 집된장처럼 혀에 찰싹 달라붙는 맛이다.

칼제비 한 그릇 양이 제법 많다. 김가루를 고명으로 한 그릇 내오면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필자는 겉절이보다 신김치와 칼제비 조합이 좋았다. 적당히 먹다가 매운맛이 당기면 한쪽에 다져놓은 청양고추를 한 숟갈 투하한다. 그러면 등골은 서늘하지만 코끝엔 땀이 송글 맺힌다.

 

 

칼칼한 매운맛을 원하다면 다져 놓은 청양고추를 넣어보자. 등골은 서늘하고 콧잔등엔 땀이 맺힌다.

1978년 개업 업력 41년 내공

1978년에 개업을 했다고 하니 햇수로 41년이 됐다. 지금 자리가 아니라 근처에 있다가 이전한 것이다. 업력이 40년이 넘어섰다는 것은 한 분야 일가를 이뤘다는 의미다. 서울시의 경우 40년 이상 업력을 가진 음식점에 대해서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하기도 한다. 그 정도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혼밥은 단점이 많다. 일단 대화 상대가 없어서 오로지 음식 먹는 데만 열중해야 한다. 요즘이야 모바일폰 때문에 덜 심심하지만 과거엔 혼밥이 쉽지 않았으리라. 그러고 보면 아예 혼자 밥 먹는 일을 잘 만들지 않았던 기억이다. 혼밥이 어색했던 시대가 가고 이제는 혼밥족을 위한 자리를 따로 만들어 놓는 식당이 늘어가고 있는 시대다. 개인주의 성향이 점점 강해지다 보니 혼밥족도 늘어나고 있다.

저녁 매출을 담당하는 스테끼. 후암동 황해, 은성집과 같은 한국식 스테이크다.

쌀과 함께 주식으로 부상한 밀가루 칼국수

칼국수, 라면, 짜장면 등 밀가루 면 요리는 혼밥족이 즐겨 먹는 메뉴다. 메뉴가 단출하고 가볍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조리시간이 짧아 빨리 먹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한국전쟁 통에 구호물자로 대량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이제는 쌀과 더불어 주식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밀가루. 같은 밀가루지만 빵은 아직 부식에 머물고 있는 반면 칼국수는 주식으로 부상했다. 이는 반찬과 함께 먹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연인 반찬이 뒷받침했기 때문에 주식 무대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외식 강자들이 다수 버티고 있는 다동 한 구석을 꿋꿋이 지키는 <소라네스테끼와 칼국수>. 다음번엔 여럿이 가서 스테끼 맛을 좀 봐야겠다. 어떤 맛인지는 알겠지만 어떤 추억이 떠오를지는 입안에 한보시기 담아봐야 알겠다.

 

유성호 한경닷컴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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