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다 화(化)는 두 글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똑바로 서있는 사람(人)과, 거꾸로 서있는(匕)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사전적 의미의 화(化)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접근하고 싶다. 사람(人)이, 칼(匕비수 비)과 마주한 형상이 화(化)다.

사진:픽사베이

칼(匕)은 사물의 원형을 변형시키는 도구다. 요리사의 칼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식재료를 필요에 맞게 가공하는 도구지만, 군인의 손에 쥐어진 전장의 칼은, 적을 해하는 무기로 둔갑한다. 이처럼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칼의 용도는 극명하게 달라진다.

칼(匕)은 사물의 원형을 바꾸는(변형 또는 죽음)데 사용하는 만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화(化 되다)는, 더 나은 무엇을 취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통(痛/아픔), 인(忍/참음), 수(受/받아들임) 과정을 거쳐야 하는 과제를 요구한다.

변화의 시작은 자기 성찰을 기반으로 한 반성과 도전에 기초한다. 자신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가정, 조직, 사회, 국가의 리더가 된다면,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와 혁신은 인류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과 사를 결정지었던 화두로, 인간의 역사가 이어지는 한 영원히 지속될 키워드다. 진정한 변화는 칼(匕)을 받겠다는 의미와 그 맥이 닿아있다. 아프니까, 두려워서, 용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칼(匕)을 받지 않겠다면 변화는 시작되지 않는다.

사진:픽사베이

농민 작가 전우익 선생은 그의 저서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에서 이런 표현을 적었다.

“느티나무는 가을에 낙엽 진 다음, 해마다 봄이 되면 새 잎을 피울 뿐만 아니라 껍질도 벗습니다. 누에를 쳐 보니 다섯 번 잠을 자고 다섯 번 허물을 벗은 다음 고치를 짓습니다. 탈피 탈각이 없이는 생명의 성장과 성취는 불가능합니다. 탈피 탈각을 못하면 주검이겠지요"

껍질은 나무를 보호하는 갑옷을 연상케 한다. 갑옷은 생명을 지키는 방어 도구다. 포기할 수 없는 수단이자 기득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벗어야 할 때 벗지 못하면, 결국엔 주검을 맞는다는 경고가 탈피 탈각(脫皮脫殼)이다.

성장과 성취의 모토는, 가진 것을 내어주고, 새로움에 적응하는 수고를 요구한다.

중국의 비단은 동서양을 연결하는 비단길을 열었고, 동양의 후추는 로마의 입맛을, 콜럼버스의 신대륙은, 서구 열강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옷감의 하나인 면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촉발시켰고, 이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다. 결국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이기는, 오랜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눈물, 아픔, 고통, 상처, 희생의 토대 위에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전이 만들어 낸 소산물들이다. 돌이켜 보면 개인, 조직, 국가들 모두 변화의 키를 쥐면 강자가 되었고, 그렇지 못하면 지워지거나 소멸된 것이 인간의 역사인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위기 상황에 직면하거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습관처럼 변화와 혁신을 외친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더 나은 발전을 위해 나는 무엇을 화(化. 다시 살기 위한 죽음) 해야 하는지?

변화의 시작은 내려놓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픔(痛), 참음(忍) 받아들임(受)등의 단련 과정을 통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와 믿음에 기초한다. 자기 주도적 변화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종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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