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지역에서는 진도 홍주와 영광 법성포 토주가 유명한 술이다. 그러나 홍주는 제법 많이 알려진 반면 토주는 과거 명성과는 달리 다소 주춤하고 있는 상태다. 애주가들에게는 상찬(賞讚)을 받는 전통 곡주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가 없다. 그만큼 상품성 있는 술로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병석 한양대 경제학부 석좌교수(전 노동부 차관)는 이를 늘 안타까워하면서 토주를 널리 알리고 싶어 한다. 이유는 그가 전남 영광 태생이고 지금은 영광군 자문위원이기 때문이다. 가끔 자문회의 차 지역에 내려가면 토주를 한잔 하곤 했는데, 좋은 술임에도 불구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

옛날에는 각 가정마다 제사에 쓸 고유의 술이 있을 정도로 술 빚는 문화가 발달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주세정책에 의해 술 빚는 문화가 쇠퇴했다. 이런 주세법은 90년대까지 골격을 그대로 유지했다. 어쩌면 법성포 토주도 이런 상황 속에 쇠락한 것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진도 홍주와 전라도 대표술이던 토주의 쇠락

법성포 토주는 증류주로 멥쌀에 황곡(효모)을 버무려 만든다. 20~25도 되는 실온에서 4일간 1차 발효하고 다시 고두밥과 물을 부어 7~8일간 2차 발효시키면 맑은술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소줏고리를 통해 중탕하면 높은 도수의 토주를 얻을 수 있다. 토주는 과거 조기잡이를 하던 뱃사람들의 고단함을 녹여주는 술로 알려져 있다.

옛날 법성포 앞바다는 조기잡이와 파시로 유명했다. 조선 말기 지방 관리였던 오횡록이 쓴 <지도군총쇄록(智島郡叢鎖錄)>에 따르면 법성포 앞바다 칠산어장에는 당시 거대한 곡우사리 파시가 형성돼 있었다. 기록에는 팔도에서 수천 척의 배가 모여 고기를 사고파는 데 오고 가는 거래액은 수십만 냥, 가장 많이 잡히는 것은 조기였다고 적고 있다.

칠산 바다에서 잡은 조기는 영광에서 판매됐다. 생물로 팔고 남은 것을 오랫동안 저장하기 위해 말린 것이 굴비다. 굴비는 고려 때 난을 일으켰다 실패한 이자겸이 영광으로 유배 온 후 궁으로 진상하는 굴비에 ‘정주굴비(靜州屈非)’란 글을 써 붙여 올린 데서 유래한다. 정주는 영광의 옛 지명으로 이자겸은 영광에서 귀양살이 하지만 절대 뜻을 굽히지 않겠단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말린 조기에는 굴비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조기잡이 뱃사람들의 지친 육체를 달래주던 토주가 전국적으로 뻗어나가지 못한 점에 대해 정 교수는 늘 아쉬워했다. 지난 19일 강남 대치동 한식당인 <순천만>에서 만났을 때도 정 교수는 토주를 전국주로 널리 알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부탁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토주는 법성포에서 조차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영광군청 홈페이지서 토주를 검색했는데 단 한건도 검색되지 않은 데서 현실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다. 한 지역신문 기자가 법성포에 가서 토주를 찾았지만 쉽게 접할 수 없었다고 한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은 정식 술도가가 아니고 가정집서 소줏고리를 들여놓고 만들고 있는 정도였다고 한다.

지역에서 조차 잊혀져 가는 이름, 토주 

쌀로 빚은 토주는 도수가 매우 높다. 70도짜리를 입술에 대면 홀연히 사라지고 60도짜리를 목으로 넘기자면 불이 한번 지난 간 듯 화끈거려 화주(火酒)란 별명을 얻었다. 필자도 맛을 봤는데, 특유의 묵직하고 강한 뒷맛이 인상적이었다.

전통 방식으로 고수하면서 술을 내리는 집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기술을 내려받은 이도 고령이라서 맥이 끊일 처지에 놓여있다. 이렇다 보니 정 교수의 토주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는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정 교수와는 <순천만> 식당에서 가끔 만나 식사를 한다. 오래전 인터뷰를 한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 고용보험제도를 만들고 정착시킨 장본인이다. 이 제도는 지금도 사회안전망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해외에도 수출하는 ‘효자상품’이기도 하다. 정 교수는 이 제도 도입을 희망하는 나라에 컨설팅을 해주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순천만> 식당은 미식가들도 인정하는 남도 음식 요람

정 교수가 <순천만> 식당을 좋아하는 이유는 입맛에 맞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내로라하는 미식가다. 야무진 손맛을 가진 어머니의 영향으로 미각이 발달했다. 게다가 오랜 관료 생활에 따른 수많은 외식이 정 교수의 미뢰를 진화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음식맛은 많이 다녀 본 사람이 잘 알기 마련이다.

이날 <순천만> 식당에는 새조개 샤브샤브를 팔고 있었다. 한 접시 가득 담겨 나온 새조개가 먹음직스러웠다. 올해는 새조개 작황이 좋지 않아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말은 익히 들었던 터다.

참꼬막

정미숙 사장에게 한 접시 가격이 얼마냐 물었다가 깜짝 놀랐다. 한 접시에 열 마리가 올라가는 데 15만 원이라고 했다. 시중에 새조개가 소고기보다 비싸단 말이 돌았는데 사실이었던 것이다. 새조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대신 사장님 추천 안줏거리를 알아서 좀 내오시라 했다.

참꼬막

이날 정 사장이 차례로 내온 안줏거리는 새조개 못지않은 구성이었다. 가장 먼저 참꼬막을 내왔다. 시중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터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흔한 것은 새꼬막으로 참꼬막과는 줄무늬 개수로 쉽게 판별이 된다.

굴 알 여러개를 넣어 풍성하게 하나로 부쳐낸 굴전.

참꼬막은 열대여섯 개의 굵직한 줄무늬가 있고 새꼬막은 잔 무늬가 무수히 많다. 데쳐서 뚜껑이 벌어지면 더 선명하게 구별된다. 참꼬막은 속살이 새까맣고 안에 담긴 국물 또한 먹물에 가까울 정도다.

알이 꽉찬 주꾸미. 지금이 한창 제철이다. 일명 밥알문어라고도 한다.

주꾸미‧굴‧갑오징어‧참꼬막 등 풍성한 제철 바다 음식

참꼬막 까먹기를 열중하고 있으려니 굴 서너 알을 하나로 뭉쳐서 부친 풍성한 굴전과 알이 꽉 찬 주꾸미 숙회가 나왔다. 작은 오징어 크기만한 실한 주꾸미는 알이 마치 흰쌀밥처럼 보여 ‘밥알문어’라는 멋진 별명도 갖고 있다.

두툼한 갑오징어와 갖은 채소가 입안에서 어우러져 새콤달콤한 진미를 내는 갑오징어숙회초무침.

이어지는 접시는 갑오징어숙회초무침으로 새콤달콤한 양념에 굵직한 갑오징어와 갖은 채소 씹히는 식감이 일품이다. 이쯤에선 술이 ‘술술’ 넘어가는 시간이다. <순천만> 식당은 남도의 자연주의 밥상을 표방한다. 제철 식재료를 이용해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은 양념으로 능숙하게 맛을 낸다. 한마디로 손맛이 일품이다.

두툼한 갑오징어와 갖은 채소가 입안에서 어우러져 새콤달콤한 진미를 내는 갑오징어숙회초무침.

마무리로 굴미역국에 간장게장이 찬으로 나왔다. 굴과 미역, 바다향이 곱절로 들어가 시원한 미역국에 간장게장 마무리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밥상’ 아니던가. <순천만> 식당을 애정하는 이유는 남도 음식의 감칠맛 나는 손맛을 서울서 느끼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매끈하고 살이 토실한 굴이 들어간 굴미역국. 바다향이 물씬하다.

보리굴비‧간장게장 유명...시즌메뉴로 새조개 샤브도 팔아 

보리굴비, 가장게장, 민어를 이용한 음식이 소문난 곳이다. 식사 때면 남도 손맛을 그리워하는 이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대치동 우래옥 강남점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그나저나 법성포 토주를 <순천만> 식당에서부터 손님들한테 맛보이면 어떨까?!

유성호 한경닷컴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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