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기고, 비움이 채움보다 행복하다. 양보하는 자가 앞서가고, 힘을 빼야 공이 멀리 나간다. 정언약반(正言若反), 바른말은 반대인 듯하다. 특히 노자는 정언약반 기법을 즐겨 썼다. 공을 세우고도 이름을 갖지 않고, 만물을 작동하고도 주인이 되지 않는다. 빛나도 눈부시지 않고, 곧아도 방자하지 않는다. 도(道)는 작고도 크다. 스스로 작아져야 진짜 커진다. 성인이 위대한 것은 스스로 위대해지려 않기 때문이다…. ≪도덕경≫에는 정언약반으로 깨우침을 주는 문구가 빼곡하다.

병법의 대가 손자는 “가까운 길을 먼 길인 듯 가는 방법을 적보다 먼저 아는 자가 승리한다(先知迂直之計者勝)”고 했다. 가까운 길을 바로 질러가지 않고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는 우직지계(迂直之計)는 ≪손자≫ 군쟁편에 나온다. 손자는 여기에 말을 덧붙였다. “군쟁(軍爭)의 어려움은 돌아가는 길을 직행하는 길인듯 가고 불리한 우환을 이로움으로 만드는 데 있다. 그 길은 돌기도 하고, 미끼로 적을 유인하기도 하고, 상대보다 늦게 출발해 먼저 도착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이 우직지계를 아는 사람이다.”

때로는 빠른(直) 길을 돌아가는 것(迂)이 세상을 사는 큰 지혜(計)다. 목숨이 오가고 힘이 지배하는 전쟁터는 특히 그렇다. 전쟁은 멀고 가까움을 자유로이 부리는 장수가 이긴다. 전쟁은 세상보다 술수가 더 통하는 싸움터다. 상대의 허점을 알아내고, 돌아가는 것처럼 속여 상대의 방심을 찌르는 게 전술이다. 적이 한 손에 잡힐 듯하다고 직선으로 돌진하다간 몰살당하기 십상이다. 전쟁터나 세상이나 싸움에는 늘 상대가 있다. 상대 또한 미끼를 던져 나를 낚아채려 한다. 역사의 명전투는 막강한 화력으로 부실한 화력을 무찌른 전쟁이 아니다. 기울어진 듯한 전세를 우직지계로 반전시킨 싸움이 대다수다.

‘빨리 빨리’는 이 시대의 키워드다. 빠른 게 능력이고, 빠른 게 지혜고, 빠른 게 적응이다. 한데 그 ‘빠름’ 속에서 행복이 숨을 헐떡인다. ≪열자≫에 나오는 얘기를 보면 ‘빠름’은 인간의 숙명적 욕구인 듯도 하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를 싫어했다. 그림자를 자신에게서 떼어내려고 발걸음을 빨리했다. 한데 그림자는 여전히 붙어다녔다. 자신의  발걸음이 늦은 때문이라고 생각한 그는 뛰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림자는 떨어지지 않았다. 뜀박질이 늦은 탓이라고 여긴 그는 숨이 멎을 때까지 뛰었다. 뜀박질에 매인 그는 몰랐다. 나무 아래 그늘에서 쉬면 그림자도 사라지고 숨도 차지 않는다는 것을.

속도에 매인 시대다. 여유로움을 게으름으로 낙인찍는 시대다. ‘기술진화=속도’라는 공식이 곳곳에 적용되는 세상이다. 느긋한 걸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오늘 안에 어떻게 정상에 오르겠냐고 눈살을 찌푸린다. 세상이 뛰니 방향도 모르고 까닭도 모른 채 너도나도 앞다퉈 뛴다. 세상에는 방향을 잃고 뛰는 사람이 무수하다. 영문도 모르고 좇아가는 사람 또한 수두룩하다. 조금은 숨을 고르며 살자. 돌아가는 여유, 돌아보는 지혜, 두루 보는 느긋함을 회복하자. 속도에 끼여 숨을 헐떡이는 행복에 숨통을 터주자.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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