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친구가 영국에서 일 하는 바람에, 몇 년에 한 번씩은 영국, 런던을 방문하곤 했다. 지난해 갑작스럽게 다시 방문하면서 2015년에 쓰다 남았던 런던 교통카드, 오이스터 카드를 가져갔다. 그냥 혹시나 모르는 마음에.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정말 멀쩡하게 잘 썼다. 버스 카드에서 T-Money 카드로 바뀌는 과정에서, 나는 비싼 돈 (그러니까 충전금이 아니라 오로지 카드 값) 울며 겨자 먹기로 내며 구매했던 몇 장의 교통카드들이 무용지물이 되던 서울 출신이라, 이 모든 것이 낯설었다. 몇 년이 흘렀는데, 다시 와도 그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대단히 감동받아, 이 사실을 런던 사람들에게 호들갑스럽게 자랑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당연한 것인데 감동하는구나. 너는 오이스터 카드를 이용하기 위해 구매했고, 그게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Trust)은 당연해.”

믿음.

믿음에 대한 당연한 결과.

T-money이후 카드보증금 환급은 물론 충전소도 찾기 어렵던 내 서울버스조합 카드 몇 장이 떠오르자,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블록체인 기술이, 정녕 그 수많은 밋업(Meet up)행사에서 약속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인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활용하기 나름이고, 응용하기 나름인 초기 단계이기에, 대단한 확신도 어렵고 대단한 불신도 어렵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종교인도 아니고, 갑자기 믿음 타령을 하는 것이 어색하긴 하지만, 정말이지 우리에게는 서로 믿음이 필요하다.

일단, (Regulator로서의)행정관청과 일종의 스타트업 종사자로서의 블록체인 종사자 간에도 깊이 있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 산업을 시작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할 때에는 그 제시하는 방향을 믿고 긴 여정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올해의 기조는 ‘장려’였다가, 내년의 기조가 ‘규제’로 돌아서면 안 된다. 시간의 길이에 맞추어, 단기, 중기, 장기의 사업계획을 작성했을 종사자들에게는 1년을 넘어서는 긴 호흡으로 준비하는 일들도 많다. 지금은 등 떠밀어 시작했는데, ‘담당자가 바뀌었으므로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면 안 된다. 송금업을 시작한다고, 유수의 담당 기관 실무자들과 한참을 논의했는데,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던, 인사 담당자의 변경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되면 안 된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믿음직한 정책이 나와야 한다. 이 부분은 입법을 준비하는 쪽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다. 한시적으로 잠깐 반짝거리는 법을 보고, 앞으로 달려나갈 사람은 없다. 긴 호흡이 가능한, 그에 맞는 구속력이 겸비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모든 논의의 시작은 아마, 블록체인 산업의 한 요소인 가상화폐에 대한 성격을 정의하는 방법부터 결정되어야 유의미한 시작이 될 것이긴 하지만.

둘째, 자금을 수혈 받은 (Funding에 성공한) 종사자들은,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당신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 주변의 몇 몇 나쁜 예 때문에, 당신을 ‘먹튀’로 생각하는 편견이 생겼다. 이 편견이 존재한다는 점은 어쩔 수 없다. 다만, IPO와 달리 느슨한 ICO의 그늘 아래에서도, 최선을 다해 발전한다는 점에 대하여, 아무 자료 없이, 그나마 당신이 제시한 장밋빛 자료만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의 믿음을 져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 이 생태계는 믿음 하나 말고는 투자자를 보호할 그 어떤 장치도 없다. 그래서 도박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이 손가락질은 양질의 거버넌스가 구축되기 전까지는 당신밖에 극복해줄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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