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水仙花)

                              추사 김정희


날씨는 차가워도 꽃봉오리 둥글둥글

그윽하고 담백한 기풍 참으로 빼어나다.

매화나무 고고하지만 뜰 벗어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에 핀 너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一點冬心朶朶圓 品於幽澹冷雋邊

梅高猶未離庭砌 淸水眞看解脫仙

 

겨울 제주에 와서 수선화 꽃밭에 들었다. 희고 노란 꽃무리가 구름 같다. 한림공원에는 혹한을 견딘 수선화가 50여만 송이나 피었다. 제주에 자생하는 ‘제주수선화’보다 하얀 꽃받침에 금빛 망울을 올린 ‘금잔옥대 수선화’가 더 많다. 한라산에 눈발이 날리는데도 여린 꽃잎을 피웠으니 설중화(雪中花)라 할 만하다. 똑같이 눈 속에 피는 꽃이지만 매화나 동백과 달리 몸체가 가녀려서 더욱 마음이 끌린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 살던 대정읍 일대에도 수선화가 앞 다퉈 망울을 터뜨렸다. 대정향교에서 안덕 계곡까지 이어지는 추사유배길 또한 길쭉한 수선화 밭으로 변했다.

추사는 54세 때인 1840년 이곳에 와 8년 넘게 유배생활을 했다. 그 외로운 적소의 밤을 함께 보내고, 간난의 시간을 함께 견딘 꽃이 수선화였다. 그는 수선화를 워낙 좋아해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위에 소개한 시 ‘수선화(水仙花)’에서는 ‘해탈신선’이라고 극찬했다.

그가 수선화를 처음 본 것은 24세 때였다. 아버지를 따라 연경(베이징)에 갔다가 이 꽃의 청순미에 매료됐다. 43세 때에는 평안감사인 아버지를 만나러 평양에 들렀다가 중국에 다녀온 사신이 아버지에게 선물한 수선화를 달라고 해서 남양주에 있는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선물했다. 다산은 감탄하며 ‘어린 손자는 처음 보는지라 부추 잎 같다고 하고/ 어린 여종은 마늘 싹이 일찍 피었다며 놀란다…’는 시로 화답했다.

추사는 이로부터 10여 년 뒤 유배지 제주에 닿았다. 놀랍게도 수선화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들판을 가득 메운 수선화를 보고는 감격해서 친구 권돈인에게 편지를 썼다. “수선화는 천하에 큰 구경거리입니다. 산과 들, 밭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흰 눈이 광대하게 쌓여 있는 듯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농부들이 소와 말 먹이로 쓰거나 보리밭을 해친다며 파내어 버리는 걸 보고는 매우 안타까워했다. 마구잡이로 버려지는 수선화를 보면서 그는 절해고도에 갇힌 자신의 처지를 돌아봤을 것이다. “꽃이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안쓰럽다”고 한탄한 것도 이런 까닭이리라.

수선화의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이다. 이름은 그리스 신화 속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에서 유래했다. 소년이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 빠져 죽은 자리에서 수선화가 피었다고 한다. 그래서 꽃말이 ‘자아도취’ 또는 ‘자기애’다. ‘나르시시즘’도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나르키소스 신화는 수많은 이야기로 변주됐다. 그 중에서도 오스카 와일드가 각색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요정들이 찾아와 호수를 위로했다. 그러자 호수는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라고 반문했다. “아니, 그대만큼 잘 아는 이가 어디 있겠어요?” 호수는 한참 뒤 입을 열었다. “그가 그토록 아름다운지는 몰랐어요. 저는 그의 눈에 비친 제 모습만 보았거든요.”

나르키소스와 호수가 서로 ‘자기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 만큼 서로 외로운 존재였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을 정상적인 것과 병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너무 지나쳐 자기밖에 모르는 지경이 되면 ‘자기애적 인격 장애’에 빠진다고 분석했다.

재미있는 것은 나르키소스가 병명뿐만 아니라 약 이름으로도 쓰였다는 점이다. 수선화의 어원인 ‘나르코’에서 진통제나 마취약을 뜻하는 나르코틱스(narcotics)가 나왔다. 진통연고와 나르키소스유(油)도 오랫동안 쓰였다. 동양에서는 하늘에 있는 것을 천선(天仙), 땅에 있는 것을 지선(地仙), 물에 있는 것을 수선(水仙)이라 부르며 신선한 약으로 활용했다.

수선화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구근식물이어서 뿌리로만 번식한다. 아무리 꽃이 고와도 꽃가루받이를 못하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수선화는 참 외로운 꽃이다. 씨앗 하나 남기지 못하고 땅속줄기로만 후세를 이어가야 하니 외로움이 끝도 없다.

180년 전 추사의 심정이 그랬을지 모른다. 깊은 고독을 견디는 땅속뿌리의 자세로 그는 ‘세한도(歲寒圖)’를 그리고, 독창적인 추사체를 완성했다. 그 과정에서 추사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따뜻하게 달래 준 것이 수선화였으니, 둘은 한 몸에서 난 꽃과 뿌리인 셈이다.

조금 있으면 제주뿐만 아니라 남부지방 곳곳에 수선화가 만발할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마음의 밭에도 꽃 향이 묻어날 것이다. 그 향기 속에는 나도 모르는 자기애의 얼룩과 세속의 먼지들이 함께 묻어 있으리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금 수선화 꽃잎에 눈을 맞춘다. 그해 겨울 눈 속의 수선화로 시를 읊는 추사의 모습과 올 겨울 눈 속의 수선화로 새 거울을 삼는 내 모습을 그 위로 천천히 겹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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