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기도와 밥

입력 2012-01-16 10:19 수정 2012-01-16 11:03
<아들이 좀 달라졌을까?>
사회에서 망나니 생활을 하다가 군에 가면 개과천선 하는 경우 많다는데...
부모들은 아들의 군 입대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아들은 게임방을 전전 하다가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줄기차게 부모 속을 썩여 오던 아들이 갑자기 군대에나 다녀와야겠다고
열을 올렸을 때,
<해가 서쪽에서 솟아 오르려나? 저러다가 또 더 망가지는 것은 아닐까?>
 했던 부모들.

아들이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지원입대를 했을 때도
<탈영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우려했던 부모들.
아들이 논산 훈련소를 마치고 대구 근교의 군부대에 배치를 받았을 때 까지만 해도 이런 저런 걱정이 많았던 부모들.
첫 면회를 다녀오고서는 <어쩌면 딴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작은
희망을 갖게 된 부모들.

“추웅 서엉”
군부대 정문 옆의 면회소에서 만난 아들은 면회소가 깨질 듯이 큰 소리를 질러대며 거수경례를 했다.
아들은 웃지 않았다.
씩씩하고 늠름했다.
군복이 썩 잘 어울렸다.
얼굴이 조금 검어진 탓일까?
어른스러워진 것 같았다.

면회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부모들의 기도하는 마음이 시작됐다.
<이대로 성실한 생활을 하는 사람, 부모 속을 썩이지 않고 사회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하고 빌었다.
특히 변호사인 아버지는 <늦게라도 제대로 된 대학을 나와서 사회의
유능한 일꾼이 되길>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아들은 네댓 살(4~5세)때부터 엄마가 『공부』속으로 몰아넣었다.
영어, 수학, 태권도, 피아노, 바이올린 등 쉴 새 없이 이곳저곳으로 몰고 다녔다.
엄마는 자신의 공부욕심이 아들을 비뚤어지게 끌고 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고시합격』이란 더 큰 목표를 위해 다그쳤다.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가출을 시작.
중학교 졸업 때까지 해마다 한 두 차례씩 연례행사를 치러냈다.

아버지는 이제부턴 자신이 아들을 교육시킬 차례임을 깨달았다.
<하느님, 제발 아들이 정신 차려서 사회의 유능 인재가 될 수 있게 도와
주십시오>하고 매일 매일 기도했다.
군인이 된 아들이 변하고 있음을 감지한 아버지는 『찬스』라고 생각.
<어떻게 하면 아들을 감동시킬지?>를 연구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사랑으로 감동시켜야 궁극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두 번째 면회를 가던 날 아들의 밥그릇, 국그릇, 수저 등을 챙기고 밥과
미역국, 생선부침개 등을 해서는 담요 몇 장으로 식지 않도록 쌌다.
겹겹으로 싸면서 아버지는 빌었다.
아들에게 꺼내 놓을 때 제발 김이 모락모락나는 따뜻한 음식상태 이기를...

서울에서 군부대까지는 4시간 넘게 걸렸다.
<과연 따뜻한 밥과 국이 될 수 있을까?>
드디어 아들 앞에 놓인 밥솥과 국통.
아들이 눈이 휘둥그레 졌다.
<집에서 먹던 대로 먹게 하려고...>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뚜껑들을 열었을 때 금방 한 음식인양 김이 피어올랐다.
아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 뒤로는 아들이 서울로 외박을 나왔다.
부모님들의 수고를 덜겠다는 생각에서다.

아들은 『다시는 부모님들의 속을 썩이지 않을 것』을 맹세하며
『홍콩의 유명대학을 졸업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들의 명은 경오(庚午)년, 정해(丁亥)월, 갑오(甲午)일, 무진(戊辰)시,
대운4.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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