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가 된 황제

입력 2012-01-09 13:35 수정 2012-01-09 15:29
“토해라! 실컷, 다 토해놔라, 그리고 또 처먹어라, 돈, 술, 여자 다 처먹어라”
뱃전을 부여잡고 꿱꿱거리는 친구의 등을 두들기면서 김(金)회장은 속으로 부르짓고 있었다.
간밤 술자리에서의 횡포, 2차로 이어진 변태적인 성접대에서의 친구는 한 마리의 벌레였었다.
처음에는 다독이듯 등을 쓸었다.
출렁이는 파도를 보며 부화가 일었다.
안간힘을 쓰는 친구가 측은 하면서도 얄미워 김회장은 차츰 힘을 가했다.
드디어 세게 두들겨 패주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어, 시원하다>
위신을 차리느라, 얼굴이 샛노랗게 변했으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친구.
그날 이후로 친구는 오랜 세월의 별명 『책 벌레』 대신 『거위』로 자리잡아 갔다.

작고 못 생겼다.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안경을 쓴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시(斜視)때문 인 듯했다.
음치, 몸치, 왕따 수준의 그가 동창생 사이에서 살아남게 된 것은 책 때문이었다.
엄청나게 책을 사 모았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를 찾으려면 도서관에 가면 됐다.
책을 떠나서는 잠시도 존재할 수 없는 책벌레.
도서관의 책 속에서 살 던 책벌레가 동창생의 첫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명문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했을 때였다.

대학 졸업 후 당 총재의 수행비서가 됨으로써 정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책벌레』는 10년쯤지나 드디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어린시절의 친구, 중·고 대학의 동창생들이 깜짝 놀랐다.
『책벌레』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떠 올려져 갔다.
갑자기 떠 오른 태양처럼 존재감이 부각 되면서 주위에 친구들이 꼬여 들었다.
김회장을 비롯한 몇 명의 사업가들도 친구들 사이에 끼여 있었다.

바보 같았던 『책벌레』가 참 용한 것은 그렇게 몰려드는 많은 친구들 속에서 김회장을 콕 찍어 <축하해줘서 고맙다>는 전화를 해 온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 볼 줄 안다』더니...
술, 밥 같이 하고 어울려 다니면서 책벌레는 재선을 거쳐 삼선(三選)의원이 됐다.
어느덧 거물의 대열에 성큼 다가선 책벌레.

김회장의 회사도 번창일로에 있었다,
책벌레의 도움으로 조달청을 비롯한 각종 정부기관에 납품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회사규모는 커져갔다.
정경유착은 사업을 하게 되면 필수라고 했던 친구들의 말이 문득 문득 떠올랐다.

책벌레는 돈을 잘 썼다.
아니 거위가 된 후로 돈을 펑펑 써댔다.
술,밥사는 것은 물론 경.조사. 지역구 주민 등 관리에 필요한 모든 분야에 돈을 넉넉하게 뿌렸다.
김회장과의 밀월관계는 정계를 은퇴할 때까지 까발려지지 않았다.

『거위님 가셨다』는 사발통문이 돌려졌다.
김회장의 심경은 시원섭섭함 같은 묘한 감정으로 채워졌지만 『드디어 해방』이라는 쪽이 훨씬 강했다.

김회장은 『거위야, 잘 가거라』하고 명복은 빌었지만 다시는 『돈 먹는 정치가』로는 태어나지 말 것도 빌었다.
변태성욕자도 되지 말고, 이중인격자도, 함부로 거들먹거리지도 말고, 틈나는 대로 운동은 하고... 등등을 빌었다.

거위의 명은 무인(戊寅)년, 계해(癸亥)월, 계해(癸亥)일, 계해(癸亥)시. 대운 4.

초년의 힘든 시기를 책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 평생의 화려함(겉으로 드러나는)과 연결됐다.
24세 이후 60년 대운으로 이어지는 세월이 정치가가 아닌, 연예인, 외교관쪽이거나 대학교수였어도 대성(大成)했을 것이다.

정치가가 되고 돈 먹는 황제쯤으로 변하면서 드러나지 않은 이중인격, 변태성욕자로 산 것은 큰 업을 지은 것으로 후손의 발복을 막게 될 것이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62명 34%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122명 66%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