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왕산에 가보셨나요

                                  고두현


용평 발왕산 꼭대기

부챗살 같은 숲 굽어보며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더니

전망대 이층 식당 벽을

여기 누구 왔다간다, 하고

빼곡이 메운 이름들 중에

통 잊을 수 없는 글귀 하나.

 

‘아빠 그동안 말 안드러서

좨송해요. 아프로는 잘 드러께요‘

 

하, 녀석 어떻게 눈치챘을까.

높은 자리에 오르면

누구나 다

잘못을 빌고 싶어진다는 걸.

 

용평 숲에서 사흘을 보낸 적이 있다. 나무들의 입김이 손끝에 닿을 때마다 감미로운 추억이 밀려왔다. 삼림욕장의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오솔길은 아늑했다. 낙엽송이 군락을 이룬 능선의 공기는 또 얼마나 싱그러웠던지…….

그곳에 머문 지 이틀째 되는 날, 뒷집 아저씨처럼 마음씨 좋게 생긴 발왕산에 올랐다. 정상에 도착했더니 전망대 안 식당 벽에 수백 장의 메모가 붙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정말 유쾌하고 감동적인 건 초등학교 1~2학년쯤 되는 녀석의 ‘고해’였다.

‘아빠 그동안 말 안드러서 좨송해요. 아프로는 잘 드러께요’

비록 맞춤법은 틀리지만, 내게는 가장 진솔한 마음의 표현으로 다가왔다. 녀석은 어떻게 알았을까. 높은 곳에 오르면 누구나 잘못을 빌고 싶어진다는 것을.

산에서는 모두가 겸손해진다. 자연의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도 모르는 그 개구쟁이의 글귀가 가장 살갑게 다가왔다. 그것은 찬 물에 세수를 하고 난 뒤의 청량감처럼, 산에서 얻은 뜻밖의 깨우침이었다.

▶또 다른 시와 인생,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은 고두현 시에세이집 《시를 놓고 살았다 사랑을 놓고 살았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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