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과 목멱산 사이 성곽이 호랑이 꼬리처럼 펼쳐져 있다. 성벽과 성문이 이어진다. 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높지만 그다지 험하지 않다. 바위가 많고 나무가 울창하다. 순환도로에 도착하니 도성 안과 밖이 한눈에 있다. 사직동과 무악동이 경계이다. 450여 년을 살아온 은행나무가 이 마을의 수호신처럼 우뚝 서있다. 도원수 권율장군의 집터다. 행촌동(杏村洞)이다.


  오래된 성벽과 오래 산 은행나무 옆에 붉은 벽돌집이 있다. 서양식 근대 건축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 붉은 벽돌 구조다. 역사와 예술의 공간이다. 시간이 잠시 멈춘 듯 비장하고 고요하다. <딜쿠샤 1923 (DILKUSHA 1923)>라 쓰여 있다. ‘기쁨과 이상향, 행복한 마음이 전해지는 꿈의 궁전’이라는 힌두어다. 광산 엔지니어이자 UPI 통신원인 앨버트 테일러의 집이다. 3.1운동과 독립선언서를 전 세계에 타전한 미국인이다.

 


3.1운동 후 지방 곳곳에 이어진 만세운동도 기사화해 알렸다. 화성 제암리 학살사건도 앨버트 테일러와 스코필드가 있어 가능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사업가로서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혹독한 시간도 보냈다. 태평양 전쟁이 임박하자 앨버트 테일러는 서대문 형무소에 부인인 메리 테일러는 <딜쿠샤>에 가택 연금된다. 이후 강제 추방되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다.

  



꽁꽁 묶어 있던 <딜쿠샤>의 비밀은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방문하며 알려졌다. 1919년 2월 28일 세브란스병원에서 독립선언서와 함께 태어났다. 어린 소년은 87세 노구로 책 한 권을 가지고 왔다. 인왕산 성곽길 따라 제일 높은 곳에 집을 지었던 추억도 되새겼다. 성벽 아래 드넓은 집터. 커다란 은행나무와 큰 우물이 있던 15,000평 규모의 <딜쿠샤>였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올해 손녀인 제니퍼 테일러가 기증한 유품으로 <딜쿠샤와 호박목걸이>전시회를 열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먼 길 따라 길 위에 서 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비바람이 불어도 번개가 쳐도 따뜻한 마음은 그 세월을 이겨 낼 수 있다. 추위가 가고 봄이 오면 <딜쿠샤> 옆 은행나무에 연두색 싹이 필 것이다. 수백 년을 그랬던 것처럼...

<최철호/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초빙교수,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