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음

                         정채봉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새해 아침 읽기에 딱이다. 초심(初心)의 초(初)는 옷 의(衣)와 가위 도(刀)가 합친 것이니 옷을 만드는 시초다. 처음에 세운 뜻을 이루려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초지일관(初志一貫)의 의미가 여기에서 나왔다.

초심을 잊지 않으면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일도 가능하다. 초심불망 마부작침(初心不忘 磨斧作針)의 고사가 시선(詩仙) 이백(李白)의 경험에서 나온 게 재미있다.

소년 이백이 공부에 싫증이 나 하산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 노파가 냇가에서 바위에 도끼를 가는 걸 보고 물었다. “할머니, 무얼 하고 계신 겁니까?” “바늘을 만들려고 한단다.” “도끼로 바늘을 만든다고요?” 이백이 큰 소리로 웃자 노파가 말했다. “얘야, 비웃을 일이 아니다.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 도끼로 바늘을 만들 수 있단다.” 이 말을 들은 이백은 크게 깨닫고 글공부를 다시 시작해 큰 시인이 됐다.

‘첫 마음’을 쓴 정채봉도 그를 닮았다. 전남 순천의 어촌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외롭게 자랐다. 내성적이고 심약한 성격으로 학교나 동네에서 또래 집단에 끼지도 못했다. 혼자 우두커니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결손가정에서 성장한 외로움을 거름 삼아 동심을 노래하는 동화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마침내 이뤄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지만 초심으로 이를 극복했다. 이른바 초부득삼(初不得三·첫 번에 실패한 것이 세 번째는 성공한다)의 자세로 ‘어른을 위한 동화’ 장르를 개척했다.

2001년 1월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하늘로 돌아간 그는 쉰 살이 넘어서도 동심과 초심을 잊지 않았다. ‘새 나이 한 살’에서 그는 ‘새 나이 한 살을/ 쉰 살 그루터기에서 올라오는/ 새순인 양 얻는다’고 노래했다. ‘시궁창 같은 마음 또한 확 엎어 버리고/ 댓잎 끝에서 떨어지는 이슬 한 방울 받아/ 새로이 한 살로 살자’고 했다.

오십이 되어서도 ‘엉금엉금 기어가는 아기/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벌거숭이// 그 나이 이제/ 한 살’이라고 한 것처럼 그는 평생 아이의 마음, 초심으로 살다 갔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첫 마음’을 다시 찾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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