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야기 하자면 글도 쓰기도 전에 화부터 난다. 솔직히 어디하나 성한대가 없으니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난감하다. 국민들의 의식이 변하고 주장이 받아 들여져서 일부분은 과거보다 나은 듯 해 보이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변화는 크지 않다. 아마도 기대치가 높아서 작은 변화는 변화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싶지만 케케묵은 고릿적부터 쌓여온 문제들이 한 순간에 해결 될 거라고는 기대도 안 한다. 이리 단호하게 말하지만 그래도 찜찜한 뭔가가 자꾸만 남는 것은 변화에 대한 미련이다. ‘이혼해!’ 라고 소리 질러도 법원으로 당장 쫓아가지 못하는 처절한 미련 같은 것이 게다.

하지만 빌고 빈 소망이 간절함으로 모이고 모이면 하늘을 움직인다는 선조들의 말씀들을 부여잡고 오늘도 두 손 모아 머리를 숙여 기도해 본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게 해 주소서’ 얼마 전에는 프랜차이즈 사업자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광화문 앞마당에 모였다. 하나님 위에 건물주, 건물주 위에 가맹점주가 있다는 현실에 대한 한탄이며, 경기 악화와 최저임금 상향조정은 타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택시 기사들이 카카오의 횡포에 반기를 들며 머리에 띠를 하고 주먹 쥔 손을 뻗어 하늘을 찔러댔다. 밥그릇 싸움이 치열하다. 이 모든 것들은 광화문 앞마당의 비애다.

임금의 큰 덕(德)이 자신들에게 비추어 소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갖가지 불꽃으로 타오른다. 승자와 패자가 모두 공존 하는 곳, 때로는 고통으로 부르짖고, 때로는 환희로 노래하는 경복궁 앞마당은 그런 곳이다. 그들의 뜻은 온전히 임금을 향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언제까지 하늘의 은총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기에는 현실의 고통이 너무 빨리, 질서 없이 몰아쳐온다. 년 초 미투(me too)가 촉발되어 세상을 뒤 흔들 때 필자는 어렵고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라 예견했었다.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묵은 때는 인간 심리의 근간을 흔드는 총체적 난국을 불러 올 것이어서 그랬다.

경제체제 또한 미투 만큼이나 지난한 문제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며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경제활동의 변천사는 인간의 물욕을 충족시켜줄 막강한 매개체로서 그 자리를 깊고 높게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물교환의 시작은 아름다운 출발이었다. 그저 그랬으면 좋았을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바벨탑을 쌓고 끝없는 창공을 향해 뾰족한 피뢰침을 꽂고 또 꽂아 댄다. 빌딩숲은 인간 욕망의 상징물로 경제가 파탄에 이르는 작금의 현실에서도 오늘도 높이 더 높이 올라가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파괴의 형국을 만드는 것은 물욕이 특정 개인들에게만 충족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단독 자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사회적 동물이 되려면 이러한 고리를 끊어야 한다. 광화문 앞마당의 머리띠도 너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잘 살자는 소망의 표현이라면 지금의 경제체제로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불가피성은 2008년 ‘공유경제(sharing economy)’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고, 세상을 바꿀 10대 아이디어 중 하나로 뽑혔을 때 까지만 해도 인류는 희망의 빛을 찾는 듯 기대에 차 있었다. 비어있는 집, 쉬고 있는 차 등을 소유하지 않고도 편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제안이었다.

돈 냄새를 맡은 부호들은 돈 되는 곳에 앞 다투어 투자했고 순식간에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키며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 우버, 에어비앤비, 아마존, 알리바바는 상상을 초월한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이베이, 쿠팡, 페이스북은 물론, 카카오택시, 풀러스, 마이 리얼 트립, 트리플, 여기 어때, 픽업스캐너 , 직방, 다방, 온오프믹스, 위버, 마일로, 탈잉, 카카오카플, 쏘카 등도 그 새를 늘여가고 있고, 팀스퀘어와 쉐어피플도 시장에 진입 중이다. 불가 10년 동안 일어난 일이다. 2025년이 되면 세계 공유경제 시장은 378조원까지 성장할 것 같다. 돈이 된다는 얘기다.

돈이 되면 돈 냄새를 좋아 하는 좀비들이 벌 때 같이 몰려든다. 여기에 휴먼은 없다. 법제도 규정도 소비자를 위한 그 어떤 보호 장치도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지만 모양만 화려하게 치장하여 마구 쏟아져 나오는 형국이다. 이들의 기업 대부분은 플랫폼 운영자 개인만 부를 축적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나만 배부르고 너는 계속 배고프고, ‘함께 더불어’는 1도 없다. 이들이 더불어 사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이 세상을 어떻게 사멸하는 지를 보여주는 또 한 가지의 사례만 만들어 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진정 ‘함께 더불어 잘사는 길’을 모색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 진정 ‘인도주의적 사회’를 만드는 일을 현실화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 진정 이렇게 스스로를 자멸의 길로 이끄는 일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대안이 필요하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