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풍상 세월 눈 깜짝할 사이 흘러

복사꽃 활짝 핀 봄 혼인하던 그해 같네

살아 이별 죽어 이별 늙음을 재촉하니

슬픔 짧고 즐거움 길어지니 그 은혜에 감사하네>

  60년 해로 한 부부의 인연을 가슴 절절한 시(詩)로 옮긴 ‘회근시(回巹詩)’ 다. 이 시 한 수 들으러 한강을 거슬러 양수리에 머물다. 안개 자욱한 두물 머리에서 물안개 사라지듯 다산의 삶을 그려보니 가슴이 먹먹하다. 다산은 여유당에 모인 친인척과 후학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한 살 위 부인 홍혜환에게 회혼례에 ‘회근시’를 바친다. 회갑연에 장지와 묘지명을 직접 쓴다. ‘자찬묘지명‘ 글처럼 여유당 위 동산에서 회혼식 날 눈을 감는다.

    정약용은 한강을 따라 너른 광주(廣州)에서 나고 죽는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귀농(歸農)으로 호를 지어주며 고향에 머물기를 바란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큰 형수 곁에서 유년시절을 보낸다. 한양도성 안 목멱산 자락 회현동에서 혼인 후 초시와 회시 그리고 대과 과거에 급제한다. 젊은 시절 배다리 주교(舟橋) 설계 및 건설을 하며 정조 대왕과 함께 개혁을 꿈꾼다. 수원 화성(華城)을 축성 설계하며, 성곽의 나라와 부강한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한다.

  광주부 초부면 마현(馬峴)에서 태어나 꿈을 펼치던 정약용에게 큰 시련이 온다. 정조의 죽음과 함께 고향의 상징인 양수리 여유당(與猶堂)에서 40세에 폐족이 된다. “여(與)함이여, 겨울 냇물을 건너듯, 유(猶)함이여, 사방을 두려워하라.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그것을 삼가라.” 노자의 도덕경의 글처럼 여유당을 지키지 못하고, 18년 유배 길을 떠난다. 한강을 건너 검단산 넘어 남한산을 지나 장기 유배 후 강진으로 이배 된다. 산속에서 생각을 모으고 다산(茶山)으로 글을 쓰고 후학들과 희망을 심는다.

 



  18년 유배기간 중 멀리 떨어진 두 아들과 딸에게 끝없는 당부 말을 전한다. 책 읽기를 권하며 폐족의 아픔과 홀로 여유당을 지키는 부인께 미안함을 글로 전한다. 18년의 유배와 58세 노년의 해배 후 다시금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 머리에서 18년을 보낸다. 그는 과골삼천(踝骨三穿) 복숭아뼈가 세 번이나 뚫리는 아픔에도 499권의 경집과 문집을 편찬한다. <열수(迾水)>라는 호를 쓰며 남양주 조안면 여유당에서 말년을 보낸다.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는 우리네 공직자와 정치가가 꼭 읽어야 하는 역사와 철학이 깃든 책들이다. 정약용이 다음 시대를 기다리며 <사암(俟菴)>이란 호를 좋아한 이유는 뭘까?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연구할 가치가 있는 인물로 선정한다. 다산 연구소에서도 <다산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그를 재조명하고 있다. 젊은 정약용과 유배 후 정약용의 삶과 철학을 살피는 책들도 많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가 지났다. 엄동설한 깊어가는 밤에 200여 년 전 정약용의 길 속으로 시간여행을 함께 떠나보자. 한강 따라 한양도성 옛길 다산 유적지에서 꿈과 희망을 만난다. 한 해를 보내며 정약용의 삶 속에서 인생길을 찾는다.

<최철호/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초빙교수,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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