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을 활성화합시다.”

공허하고 외로운 이 외침은 꽤나 오래도록 제자리걸음 중이다. ‘블록체인’이라는 Young 하고 Tech-Oriented 느낌과는 도통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운 국회의원들까지도 언제부터인지 갑자기 ‘블록체인을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여 줬건만... 이 외침은 계속 공허할 것 같다.

이유는 하나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생태계를 활성화시킬 판, 그 판을 깔아줄 조물주들에게 아직 제대로 된 초대장이 발송되지 않았다. 그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뭐라고 하고 싶어도 목소리를 낼 틈이 없다. 정작 필요한 몇 가지 축에게 ‘블록체인’ 판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이크가 주어지지 않았다.

새 판이 활성화되려면 돈이 돌아야 한다. 돈이 돈 다는 것은 한 탕하고 빠질 투기 자본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투자하고 재투자하고 (Re-up) 투자에 대한 이윤이 발생하면 이를 적절하게 과세하고 규율하는 일정한 순환 고리가 생겨야 한다. 일단, 순환 고리가 생기면 활성화 (Size-up) 될 수도 있다. 선순환을 타게 되면 오매불망 기다리던 일자리도 창출되고 토종 인프라를 활용한 블록체인 선도 유니콘들이 탄생하는 등등의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 미래를 위해서, 더 많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유인을 연구할 수도 있다. 가령, 초기 투자자들의 투자를 위해 조세감면 정책을 쓰기도 하고 외국계 투자 자본의 지분(Equity)을 통해 창출된 고용 인원의 수에 비례하여 외국계 투자자본에 대한 특례를 적용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새 판이 짜였을 때이다.

지금은 활성화는커녕 판 자체가 형성되지 못했다. 그 이유? 입법이 없어서? 아니다. 블록체인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주체가 한쪽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는 투자받을 블록체인 회사와 더 구체적으로는 코인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거래소에게 있었다. 코인이 필수 불가결한 것인지부터 코인의 개념이 화폐인지, 증권인지, 증권이 아니라면 자산 가운데 무엇인지의 개념 정의도 흔들린 상태에서, 증권 아닌 증권 같은 토큰을 증권거래소와 매우 흡사하지만 여러모로 부실한 구조에서 거래하도록 방치하다가 사고들이 터졌다. 그 결과, ‘코인=사건사고’라는 편견이 생겼다. ICO가 잘 안 되기 시작했다. 거래소는 어려워졌다. 블록체인 기술 이야기는 어려워졌다. 코인은 미래가 없다고들 한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블록체인을 활성화’하자니 다들 갸우뚱거릴 수 밖에. 오히려 ‘활성화’를 주장하는 의원님의 모습을 TV에서 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의원님도 코인 좀 했나 봐.”

활성화하자는 말을 ‘바닥을 친 내 코인시세 끌어올려 나는 손절하겠다’는 의중으로 오해를 하여 ’에이, 관심없다. 나는 코인은 잘 모르겠어.’라는 시무룩한 반응들이 이어지게 되는 순간 판이 생기기도 전에 이 생태계의 씨앗은 심길 땅도 찾지 못하고 끝날 수 있다.

다시, ‘블록체인을 활성화하자’는 이야기로 돌아가자.

활성화를 주장하는 말 다음에 이어지는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아무리 그래도 일단 블록체인 개발은 잘 되고 있으니 두고 보라는 말. 둘째, 나도 하고 싶은데 규제 당국이 뭘 안 정해줘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말. 최근 몇 달간 그리고 오늘 이 순간에도 ‘블록체인’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있는 언론 매체의 보도, 신문 기사들 속에는 위 두 가지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첫째 입장, ‘그런 거 없이도 잘하고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헤어진 남자친구 때문에 온 밤을 울며불며 지내놓고 ‘나 완전 잘 살고 있거든?’이라며 입을 삐죽거리던 내 마음과 같다. 더 잘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목소리가 행간 사이로 들리는 입장 같기도 하고. 게다가, 실제 카카오도 네이버도 힘차게 시작했고 순항하고 있으니 맞는 말이다. 소수이나마 이른바 ‘용감한 펭귄(First move Penguin)’기업들은 일단 이렇게 비포장도로길인데도 용감하게 앞서나가고 있다. 이에 대해서 그것은 ‘탈중앙화’라는 기본 이념에 충실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일리 있는 지적이다. 다만, 이는 지나치게 원론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그 이념만을 금과옥조로 삼다간 블록체인 기술, 나아가 토큰 이코노미로 확장될 이른바 블록체인 생태계는 조성되기 어렵다.

둘째 입장, ‘규제 당국이 무엇을 해주지 않아서 블록체인이 활성화 되지 않는다.’는 말은 다시 생각해보자고 하고 싶다. 기존의 접근이 틀렸다. 블록체인 기술의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면 생태계를 설계할 신(神)들을 초대했어야 하니까. 그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그저 코인은 오를 것이라는 말만 해서는 이 판은 제대로 순환고리를 만들 수 없다. 초대장을 던져야 한다. 초대받을 자들의 설계 도면을 보지 않고는 블록체인이라는 작지만 무궁무진한 새로운 생태계는 절대 이 큰 세상에 나올 수 없다. (계속)

이정의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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