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엔 가늘고 하얀 소금을 뿌려주는 아이스크림이 있다. ‘유키시오(雪塩)’란 소금을 뿌린 이 아이스크림을 입안에 넣으면 혀가 완전히 색다르게 반응한다.

[흰 소금을 뿌린 아이스크림]

소금을 조금 뿌렸을 뿐이지만, ‘새콤달콤’이 아닌 ‘짜콤달콤’한 맛이 머릿속을 환하게 밝혀준다. 나는 서이수와 치넨우타가 단둘이 ‘존재적 혼인식’을 올린 곳을 찾아가면서 오늘 내가 흰 소금 같은 역할을 할 수 없을까라고 생각해봤다.

몇 시간을 더 살 수 있을지조차 예상할 수 없는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혼인식을 올린 ‘그 장소’를 찾아, 나는 늦었지만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싶었다. 오키나와 현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그 장소에 도착하자 나는 풀밭에서 클로버 꽃 여러 송이를 따서 아이스크림에 유키시오를 얹듯이 구스쿠다케 기슭에 꽃송이를 뿌렸다. 뒤늦게나마 두 사람의 혼인식을 온 마음을 다해 축하했다.

이제 이 기슭에서 외삼촌이 식물조사를 했던 장소를 살펴볼 차례가 됐다. 나는 노숙자 2명이 잠을 자고 있는 공원 벤치 옆을 지나 풀밭을 건너 공원 남쪽 입구로 걸어 내려갔다. 남쪽 입구는 북쪽 입구와 달리 시멘트 인도가 놓여있고, 철재 난간 너머로 확 트인 잔디밭이 펼쳐졌다.

잔디밭 사이 길을 약 80m쯤 걸어내려 왔을 때 오른쪽으로 지금은 폐허가 된 귀갑묘들이 나타났다. 외삼촌의 ‘수기노트’를 보면 그는 미군이 나하를 대규모로 폭격하던 날 이런 귀갑묘에 뛰어들어 목숨을 건졌다고 기록해놓았으며, 이런 귀갑묘 안에서 치넨우타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수기노트 덕분에 나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가잔비라 귀갑묘 자리는 찾아냈지만, 아직 두 사람이 묻힌 귀갑묘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오키나와 어디에서든 귀갑묘를 만나면 누가 묻혔는지 묘비를 확인하곤 했다. 여기에 있는 귀갑묘엔 ‘이곳은 나하시 소유이므로 무단사용을 금지합니다’라고 붙어있는 걸 보니 지난 1971년 이 지역을 공원화하면서 이장을 한 뒤 석묘만 그대로 남겨둔 것 같았다.

[구스쿠다케 기슭의 귀납묘]

나는 귀갑묘의 석문을 주먹으로 한번 두들겨 본 뒤 허리를 펴고 일어서는데 한 칸 너머 다른 귀납묘 마당에 아까 목례를 한 뒤 반대편 골목으로 사라졌던 ‘씨앗무늬’여자가 키 높은 잡초들 사이에 머리를 박은 채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손을 움직였다.

그녀를 그냥 외면하고 내려가려다, 다시 되돌아서서 눈여겨 보니 그녀는 허리를 굽혀 핀셋으로 씨앗을 따서 비닐봉지에 집어넣느라 내가 가까이 서 있는 줄도 몰랐다. 나는 그녀가 무슨 작업을 하는지 궁금함을 참지 못해 헛기침을 크게 한 번 하면서 그녀에게 물어봤다.

“거기서 뭐 찾으세요?”

나의 음성에 그녀는 깊숙이 굽혔던 허리를 세우며, 눈 위에 내리쬐는 광선을 피하기 위해 이마에 손을 얹더니 음성이 들려온 쪽을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달갑지 않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가 뜨더니 마지못해 대답했다.

“풀씨를 수집하고 있어요...”

“아...그러세요? 그러면... 식물학자이신가 봐요?”

“... 학자는 아니고, 그냥 연구원입니다”

퉁명스레 대답하는 것으로 봐 그녀는 내가 빨리 사라져주길 원하는 눈치였지만, 나로서는 외삼촌이 식물조사를 했던 곳에서 우연히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냥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의 질문에 그녀가 무척 귀찮아하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그녀에게 더 물어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어느 연구소에 근무하세요...?”

그녀는 다시 귀찮다는 표정으로 억새풀 속으로 머리를 숙이며 어떻게든 몇 마디라도 해서 빨리 돌려보내야겠다는 심사로 짧게 대답했다.

“진 뱅크(Gene Bank)요.”

진 뱅크라면 일본유전자원연구소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곳은 귀갑묘 마당이었지만 이장을 한 뒤 오랫동안 방치해둔 곳이라 억새풀이 1.5m 이상 높이의 억새풀이 곳곳에 자라나 있어 얼굴이나 팔을 베일 수도 있고, 풀숲이 너무 짙어 뱀이 나타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것엔 관심도 두지 않고, 풀씨를 수집하는 데만 집중하는 게 무척 위험스러워 보였다.

“죄송하지만, 그 연구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이죠?
“네?... 아, 그런데 제가 그런 질문에 다 대답을 해야 합니까?”

나는 연거푸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외삼촌이 식물조사를 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식물의 씨앗을 채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쉽게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녀에게 외삼촌의 ‘식물노트’가 얼마나 유용한 자료인지 꼭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버티며 계속 서 있자 그녀는 허리를 펴지 않은 채 설명했다.

“우리 연구소는 식물의 유전자원을 수집해서 조사한 뒤에, 오랜 기간 보존하며 활용할 수 있게 합니다.”

“아, 네에... 그렇다면 그 연구소는 엄청나게 많은 유전자원을 갖고 있겠네요?”

“아뇨. 아직은 모아가는 단계죠. 현재 등록된 식물유전자원은 20만 개 정도 됩니다.”

“그러면... 그 유전자원정보는 국가 기밀입니까?”

“아뇨... 우리 연구소는 식물유전자원을 수집 조사한 뒤 보고서를 통해 데이터를 모두 공개합니다. 품종개발을 원하는 사람이나 유전자해석, 식품연구를 하는 기업과 대학에 정보를 제공하죠.”

“연구원님, 저는 식물에 대해서는 문외한입니다. 다만 돌아가신 저의 외삼촌이 식물학자였는데, 태평양전쟁 때 오키나와에 와서 바로 이곳에서 식물을 조사한 노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 얘기를 듣자 그녀는 풀잎 속에서 허리를 펴며 다시 얼굴을 들더니 믿기 어렵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그거... 무척 귀중한 자료일 수 있겠네요. 근데 수집한 식물이 실물입니까, 아니면 그림이나 사진입니까?”

“모두 외삼촌이 직접 그린 그림과 기록입니다.”

“아, 안타깝네요... 요즘은 그림도 중요하지만 실제 식물이 남아있어야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니까요... 하지만 식물학자가 조사한 거라면 그림만으로도 70년 전 여기 구스쿠다케의 생태계와 현재의 것을 비교해볼 수 있겠네요.”

그제야 그녀는 몸을 완전히 일으켜 허리를 이쪽저쪽으로 돌리며 운동을 하더니 이수의 눈을 도전적으로 똑바로 노려보았다.

“연구원님, 그 식물조사노트가 호텔에 있는 제 가방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장이라도 보여드릴 수 있어요. 제가 노트를 보여드릴 테니 이따 저녁때 다시 만나면 어때요?”

“네?... 네, 좋습니다. 아까 시청 앞에서 캐리어를 끌고 가시는 걸 봤는데, 호텔이 그쪽인 거죠?”

“아 네, 저도 시청 앞에서 세 분이 걸어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럼... 이따 저녁 6시에 고쿠사이도리 입구 돌사자상 앞에서 만나시죠.”

나는 그 연구원에게 고맙다며 고개를 숙인 뒤 내리막길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와 주택가 골목 안으로 굽어 들어가기 직전 고개를 뒤로 돌려 풀밭 쪽을 쳐다보았는데, 그녀는 다시 키 큰 풀 속에 얼굴을 집어넣은 상태였다.

나는 하버뷰 거리를 지나, 고쿠사이도리 입구에 있는 유키시오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아갔다. 역시 이곳 아이스크림의 ‘짜콤달콤’한 맛은 머리끝까지 상쾌하게 해주었다. 나는 아까 만난 그 연구원이 외삼촌의 묘지를 찾는데 소금 같은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호텔로 향했다.

이파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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