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역에서 10분 걸으니 산(山)이다. 복잡한 도심 속 차량 소리와 소음이 잠시 멈춘다. 눈 앞에 펼쳐진 화강암 바위들과 소나무 향만이 이 산의 주인이다. 너럭바위와 통돌 사이로 계곡물이 흐른다. 옥구슬 구르듯 물소리가 옥류동천을 향한다. 바로 300여 년 전 겸재 정선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겸재는 이곳에서 84세까지 심신을 연마하며 작품을 벗 삼아 살았다. 묵과 먹 대신 카메라를 둘러메고 별유천지 수성동 계곡 사진을 찍는다.  사진 속 그림은 겸재 정선의 ‘수성동(水聲洞)’이다.


  서울은 산이다. 산과 산이 이어지고, 천과 천이 모여진다. 인왕산과 백악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인왕산 수성동 계곡과 백악산 백사실 계곡은 물이 맑고 공기가 좋다. 수성동 계곡 1급수 맑은 물은 청계천을 향해 흐른다. 백사실 계곡 1급수 청정한 물은 홍제천을 향해 간다. 굽이굽이 길고 긴 청계천과 홍제천은 한강(漢江)에서 만나 서해로 향한다. 산은 스스로 나누어지고, 강은 하나로 만난다.

 

산은 물을 건너지 않는다. 물은 산을 돌아가 흐른다. 산과 산이 물을 가른다. 산은 움직이지 않고 포용할 뿐이다. 물은 흐르고 흘러 바다로 모인다. 산은 어머니 같은 마음의 고향이다. 강은 아버지처럼 든든한 바다와 같다. 산과 물은 나누지 않고, 구불구불 이어져 하나가 된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처럼 서울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울은 어디에서나 삼각산(三角山)을 볼 수 있다. 봉우리 3개가 뿔처럼 연결되어 병풍처럼 펼쳐진 울울창창한 깊은 산이다. 600여 년 전 태조 이성계와 왕사 무학대사 및 삼봉 정도전이 오르내리던 진산이다. 무학대와 정도전은 삼각산에서 한양을 내려다보며 천년 도읍지를 정한다. 두 사람은 인왕산과 백악산을 오르내리며 한양의 주산을 놓고 설전을 벌인다. 백운대(836.5m), 만경대, 인수봉 등 산마다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명산이자, 영산이다. 그리고 서울의 상징이다. 인왕산과 백악산, 낙타산과 목멱산이 이어져 있다.
  광화문 역사광장에서 걸어서 10분 안에 산이 있고, 길이 있다.  이런 명산이 10분 거리에 있다는 건 축복이다. 인왕산 자락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24절기가 아름답다.  인왕산은 골산이다. 즉 화강암으로 둘러싼 바위산이다. 그야말로 기암괴석이 가득하다. 선바위, 모자바위, 책바위, 삿갓바위, 해골바위, 범바위, 치마바위 그리고 거대한 기차바위가 찾는 이를 맞이한다.

 



인왕산 자락 성곽길에 어느새 가을이 가고 겨울 색이 묻어난다. 시간이 허락되면 <와행우보(蝸行牛步)>, 달팽이와 소걸음처럼 느릿느릿 산속에 있는 길을 걸어보자.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시간여행은 이내 역사가 된다. 그 길에서 역사가 깊어가는 시간여행도 해보고 퇴색해진 꿈도 한번 찾아보자. 역사는 살아있다.

<최철호/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초빙교수,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