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풀포기도 생애에 한번은 가슴에 꽃을 단다. 꽃은 풀포기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풀은 가슴에 꽃 달고 사랑을 기다린다. 성격에 따라 스스로 상대를 찾기도 하고, 꿀벌이나 나비가 중매를 해주길 바라기도 한다. 사랑을 찾는 꽃은 들떠서 향기를 바람 속에 내뿜는다.

이수와 우타는 ‘광합성 연구’에 필요한 표본식물들을 채집하기 위해 채집도구와 도시락을 챙겨 모터보트를 타고 자마미항에서 루카히노사치를 지나 돈마해안에 보트를 매 놓고 이노해안으로 넘어갈 수 있는 작은 평지에 올라섰다. 거기엔 이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풀들이 그새 향기를 발산했다.

이수는 꽃의 향기를 ‘식물의 언어’라고 본다. 그래서 이수는 꽃핀 풀밭에 들어가면 꽃들이 떠드는 얘기가 들린다. 속삭이듯 유혹하는 숨소리도 들리고, 은은하게 부르는 노래도 들린다.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소리 때문에 시끄러울 때도 있다.

마챤산 입구에 나이 먹은 류큐마츠 한 그루가 이수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했다. 나무가 먼저 인사를 해온 건 참 오랜만이다. 오키나와로 징용돼 오기 전에 이수는 자주 나무들과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나무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친했던 나무는 도쿄 고이시카와식물원에 있는 은행나무다. 고이시카와 식물원은 1684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후 도쿄대학 부설식물원이 되었는데, 이수는 이 식물원에 가면 200년 넘게 산 은행나무에 가슴을 대고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이 나무는 도쿄에서 혼자 외롭게 생활하는 그가 맘껏 속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였다.

이 은행나무은 이수 이전에도 여러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그 덕분에 ‘식물도 정자를 가졌다’는 걸 입증해주었다. 이수가 속해있던 도쿄대 식물학교실에 1888년 히라세 사쿠로코라는 식물도화가가 근무하게 되었다.

그는 식물을 세밀하게 잘 그리기로 유명했는데, 이 일을 하다가 차츰 식물학연구에 관심을 기울였고, 이 나무와 친해져서 은행을 연구하기 시작해, 은행나무도 정자를 생산한다는 걸 알아냈다.

그는 은행 수나무의 꽃가루가 여러 개의 꼬리를 가진 정충이 되어 헤엄쳐서 암나무 배우체에 수정되는 걸 발견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식물도 성행위를 한다는 걸 처음으로 입증한 것이다. 이수는 우타에게 도쿄대학 식물원에 있는 그 은행나무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그래요? 근데, 이수씨, 은행나무는 어떻게 몇백 살이 되어도 그렇게 사랑을 할 수가 있죠?”

“음.....그건 식물이 사람보다 우수한 유전성과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요?...우리도 그렇게 오래오래 사랑했으면 좋겠다....”

우타는 오늘은 간호복을 입지 않고 오키나와 전통 옷인 ‘파초포(芭蕉布 바쇼후)’를 입고 와 이곳의 식물들과 잘 어울렸다. 두 사람은 마챠산으로 올라가지 않고 낮은 풀밭을 지나 이노해안으로 가서 천매암 바위 인근에 사는 식물들을 살폈다. 천매암 바위 뒤로 걸어가니 층층이 쌓인 검은 암석 아래쪽에 긴 입자루를 가진 ‘끈끈이주걱’이 번져 있었다. 보통 이 풀은 잎이 털처럼 솟아오르고 그 털끝에 점액이 분비된다.

곤충들이 이 점액에 접근하다가 들어붙어 빠져나오지 못한다. “드로세라 로툰디폴리아...!” 이렇게 읊조리니 꼭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주문을 외는 듯했다. 이게 끈끈이주걱의 학명. 자마미의 끈끈이주걱은 모전이 더 홍색을 띤 채 검은 암석 위에 뿔뿔이 흩어져 신기한 형상을 연출했다.

이노해안에선 털머위도 발견했다. 인적 드문 여기에 털머위가 꽃대를 올리고 있다니. 우타는 이 털머위를 보더니 자마미에선 이걸 ‘치팟파’라고 부른다고 했다. 칫파파!, 칫파파!, 칫파파!...여기선 털머위의 이름도 4분의 3박자의 춤이 되는구나.

선인초(仙人草)도 발견했다. 미나리아재비과인 이 풀은 열매에서 흰털이 나오는데 이게 신선의 수염을 닮았다고 해서 선인초라고 부른다. 흰 꽃잎이 독성을 지녀서 먹다간 지독한 배탈에 시달리게 된다.

이수는 오랜만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뿌듯함이 잘 가라앉지 않았다. 너무 뿌듯해 불안할 지경이었다.

해안가에서 오키나와 천남성(天南星 텐난쇼)도 만났다. 이름이 얼마나 멋진가? 하늘남쪽의 별.....하지만 이 ‘별’은 위험하다. 뿌리가 사약으로 쓰이니까. 천남성은 인삼이파리를 연상케 하는데 중간에 꽃대가 솟아올라 끝이 꼬부라진 원통형 꽃을 피운다. 이수와 우타는 잠시 이노해안으로  밀려오는 얇은 파도에 함께 발을 담갔다.

두 사람은 모래사장과 숲 사이에서 엉겅퀴를 발견했다. 엉겅퀴는 한반도에 많이 사는데 일본에선 대마도 이남에선 발견되지 않는 식물. 그런데 이 엉겅퀴가 자마미에서 이렇게 싱싱하게 자라나다니.

우타에게 엉겅퀴를 가리키며 자마미에선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물어봤다. 그녀는 엉겅퀴꽃에 코를 대고 한참 냄새를 맡더니 “이런 꽃은 태어나서 처음 봐요...”라고 했다.

“이 꽃은 한반도에서 많이 자라는 건데 어떻게 이 먼 자마미까지 왔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우타는 “그야, 이수씨를 따라 온 거죠”라고 맞장구쳤다.

엉겅퀴는 많은 꽃잎이 총총히 붙어서 한 개의 꽃송이로 피는 합판화인데 향기가 진하고 오묘하다. 이 꽃의 뿌리는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어 한약재로 많이 활용된다.

우타는 다시 한번 엉겅퀴의 냄새를 맡더니 “이 꽃의 향기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네요”라고 했다.

우타의 얘기는 이수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정말 그렇다. 따져보면 세상에 꽃은 많고, 향기도 꽃의 종류만큼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어떠한 꽃도 똑같은 냄새를 가지고 있진 않다. 참 이상한 건 꽃냄새를 코로는 쉽게 구분할 수 있었지만, ‘언어’로는 그 냄새의 차이를 표현하기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이 엉겅퀴꽃을 보자. 꽃의 형태 기능 색깔 등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꽃의 ‘냄새’만큼은 객관적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오묘한 향기?, 진한 향기?, 떫은 향기?, 쿰쿰한 향기? 그 어떤 단어로도 엉겅퀴꽃 향기를 제대로 규정할 수가 없다.

이수와 우타는 해안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고 판단하고 걸음을 빨리해서 오늘의 목적지이자 이 섬에서 제일 높은 산인 우후다키(高岳 해발190m)산기슭으로 올라갔다.

이수는 일본군이 특공정 은닉호에 활용될 목재를 조사할 때 이곳의 야부닛케이는 나중을 식물연구를 위해서 ‘목재용’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덕분에 이곳엔 ‘야부닛케이’라고 불리는 추나무 군락이 그대로 남았다. 아래쪽엔 야마아사, 모쿠마오, 비로 등도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이수는 ‘광합성’과 함께 ‘식물은 사회적 생물이다’라는 테마로 ‘식물의 사회성’도 연구하고 있는데, 이곳의 식물 군락은 이들 연구에 적합하기 때문에 이곳을 찾아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수는 나카타 중위가 간쟈산에서 사살되기 전날 이수에게 자신의 부하 3명을 이곳 우후다키(오다케)산에 잠복시켜 놨다고 엄포를 친 게 마음에 조금 걸렸지만, 이미 일본군 패잔병들은 모두 소탕됐다는 얘기를 들어서 안심하고 이 산을 조사하러 온 것이다.
우후다키에서 조사를 끝내고 두 사람은 다시 마챠산의 평평한 풀밭으로 내려왔다. 여기서 이노해안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맞으며 우타가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었다. 오늘따라 우타는 도시락에 우친과 아와모리도 한 병 챙겨왔다.

안주로 가져온 우친의 찌릿하고 씁쓸한 맛에 현혹되어 두 사람은 술 한 병을 급히 다 비웠다. 우친의 마력적이고 매운 기운은 언제나 모든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이수는 오늘 우타가 간호복이 아닌 ‘파초포’를 입고 왔다는 걸 다시 인지했다. 파초포는 파초의 줄기에서 채취한 섬유질을 짜서 만든 직물로 한반도의 모시와 비슷하다. 우타는 파초포를 자랑이라도 하듯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들며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파초포가 그녀의 싱싱한 몸매를 간질이며 살랑거렸다.

이때 이수는 아무도 모르게 계속 새끼주머니 속에 간직해왔던, C-10의 동굴에서 식물의 씨앗을 가져올 때 코카 잎에 묻어 들어온 그 ‘다이아몬드 반지’를 손가락으로 어렵게 꺼냈다. 이수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바람을 즐기는 우타를 소리쳐 불렀다. 그는 말없이 우타에게 그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했다.

우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상한 물건을 갑자기 선물로 받자, 잠시 불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행히 이게 어디서 나온 물건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는 반지를 자신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웠다. 반지는 귀신처럼 우타의 손가락에 꼭 맞았다. 우타는 반지 낀 왼손을 높이 치켜들어 태양 빛에 다이아몬드가 반사해 분사하는 광선을 이리저리 올려다보았다.

반지를 쳐다보며 서 있는 우타의 모습은 지난해 그녀와 처음 만난 날 가잔비라의 깜깜한 언덕에 올라 서있던 그녀의 모습과 대비되었다. 그땐 불타는 도시가 내뿜는 얼룩말 등판 같은 조명 때문에 우타가 초현실적인 연극무대에 등장한 어두운 표정의 배우처럼 보였는데, 오늘은 이 푸른 언덕에서 맑고 아름다운 빛을 내뿜는 밝은 표정의 배우가 되었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내뿜는 무지개빛 편광을 쳐다보며 그녀는 서서히 몸매를 조금씩 움직이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키나와의 민속춤인 조오도리였다. 그녀는 “이 조오도리의 이름은 치유야(浜千鳥)예요”라고 하더니, 오키나와 민요를 콧노래로 부르며 더 유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이수는 몸으로 예술을 표현하는 우타의 타고난 재능에 넋을 잃었다.

춤추며 부르는 우타의 노래는 평소 음성과는 전혀 다르게 높은음이 가늘게 이어졌다. 산신(三線)의 반주가 없어도 그 노래는 정말 사람의 가슴을 조이게 한 뒤 감성을 휘어 파는 그 무엇이었다. 고음에서 저음으로 내려갈 때 파초실을 타고 미끄러지듯 탄력 있게 내려가는 그 선율은 듣는 사람의 영혼을 초월적 피안으로 이끌어주었다.

이수 혼자서만 우타의 춤과 노래에 심취한 게 아니었다. 언제 왔는지 ‘파랑새’ 두 마리가 솟은 나뭇가지 위에 조용히 앉아 우타의 노래와 춤에 숨을 죽였다.

파랑새는 본디 보루네오 같은 동남아지역에서 겨울을 나고 한반도의 남부지역과 일본의 큐슈 등에서 여름을 나는 철새인데 전쟁 때문에 이곳 자마미에서 여름을 보내는 중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이 파랑새를 ‘달러버드(Dollarbird)’라고 부르는데, 특히 미군들은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오듯 ‘달러버드는 돈을 물고 온다’며 무척 좋아했다.

 [파랑새(Dollarbird)의 날개 안에는 1달러동전의 무늬가 새겨져있다고 한다]

우타는 춤 한 곡을 끝내자 이수의 팔을 잡아 일으키더니 이번엔 이수에게 춤추며 노래하라고 재촉했다. 우타를 나하의 귀갑묘에서 처음 만난 날도 이렇게 노래를 하라고 재촉했었는데....사실 이수는 오키나와에 오기 전까지 도대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그런 짓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직 나뭇가지에 앉아 두 사람을 내려다보는 두 마리의 파랑새를 보자, 고향에서 어머니가 바느질할 때 부르던 ‘파랑새 노래’가 떠올라 후닥닥 일어서 갈라진 음성으로 목청 돋우면서 다리를 갈지자로 마구 흔들어댔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

이수가 노래를 끝내려는 순간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놀란 파랑새 두 마리가 하늘로 치솟았다. 총알은 이수의 오른쪽 가슴을 뚫고 들어왔다. 이수가 풀썩 쓰러지자, 우타는 소리를 지를 겨를도 없이 이수를 부축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또 한발의 총성이 두 사람의 귓전을 때렸다. 이번 총알은 우타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우타는 드러누운 이수의 몸 위에 풀썩 엎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 절박하게 껴안았다. 이수가 우타의 눈 속을 들여다보며 더듬거렸다.

“우타, 우타...우리 죽으면 이 자미미의 숲이 되자...”

“그래요, 이수씨, 사랑해요...”

날아오른 파랑새 두 마리가 쓰러진 두 사람 위를 지나더니 청록색 돈마해안을 건너 아치네라 곶으로 날아갔다.

다음날 스템 소령은 이수와 우타 두 사람이 아무런 연락 없이 출근을 하지 않은 걸 알아차렸다. 그는 부관에게 빨리 우타의 집에 가보라고 명령했다. 우타의 집을 다녀온 부관은 두 사람이 어제 식물채집을 나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스템은 이수가 항상 짜놓은 일정대로 움직인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의 책상 서랍을 열어 어제 어느 곳으로 채집을 하러 갔는지 파악한 뒤 세이버팀 세 사람을 호출했다.

무장한 테일러, 어시지, 베닛은 모터보트를 타고 루카히노사치를 거쳐 돈마해안에 내렸다. 해안 끝자락에서 이수와 우타가 타고 온 보트를 발견했다. 이들은 마챤산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풀밭에서 두 사람의 시신을 찾아냈다. 테일러, 어시지, 베닛은 이수와 우타의 시신을 메고 내려와 보트에 싣고 미군 자마미본부로 돌아왔다.

스템 소령은 서이수 부부를 살해한 건 나카타의 사주를 받은 일본 패잔병들의 소행으로 보고 전투병 2개 소대를 동원, 우후다키산에 숨어있는 일본군 5명을 모두 소탕했다. 그런 다음 스템은 이수와 우타의 시신을 화장해서 처리했다.

스템은 천재 식물학자 한 사람을 잃은 걸 안타까워하며, 한반도가 미군의 관할이 되자, 미군 군사우편으로 이수가 그동안 피땀을 쏟아 기록해놓은 식물 노트와 수기 노트를 그의 어머니에게 발송했다.

 

이파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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