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섬(嘉比島) 모래밭에 올라서자 싱그러운 바닷바람 한 뭉치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이수는 이 바람을 사과 한입 베어 물듯 입안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사과처럼 아삭아삭 씹히진 않았지만, 가히섬의 바람은 과일처럼 신선했다.

자마미섬에서 특공정 은닉호를 뚫을 때 심하게 배가 고프면 맑은 공기를 한입 가득 입에 넣고 이렇게 한참동안 씹었다. 그냥 숨을 들이키는 것보다 이게 훨씬 뇌와 몸에 산소를 많이 공급했다. 덕분에 굶어 죽지 않고 아직 살아남아 이 가히섬의 모래구릉에서 피어오르는 흰 구름을 쳐다보고 있다.

[가히섬 모래사장에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다...사진=이파]

가히섬의 모래구릉의 흰빛은 언제나 눈에 선연히 들어온다. 더욱이 오늘처럼 하늘이 맑을수록 이 모래비탈은 짙은 바다빛깔과 대비되어 신비하게 빛난다. 그래서 옛날부터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곳을 신선들이 노니는 곳으로 상상했다. 이 섬은 거의 모래로 덮여있어 은폐물을 설치할 수도 없고 동굴이 없어 숨을 곳도 없기 때문에 그동안 일본군도 미군도 주둔하지 않았다.

이수와 우타는 스템 소령의 배려로 UDT대원들이 쓰던 잠수장비들을 제공받아 이 지역의 산호초 조사에 나섰다. 이 조사는 미군이 인가한 ‘오키나와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이다.

이수는 면적이 0.13㎢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섬에 타고 온 보트를 끌어 올렸다. 오후 3시의 약간 기울어진 햇살은 가히섬 앞에 펼쳐진 바다에 감청색 물감을 타서 휘저었고, 그 파란 색채 위로 세찬 바람이 방향 없이 설쳐댔다.

귓바퀴를 파고드는 바람 소리 때문에 이수는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한 채 마냥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상했다. 이수는 지난 몇 달간 오키나와의 바람 소리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이 가히섬의 바람은 자마미섬의 바람보다도 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제 맘대로 온몸을 할퀴었다.

그럼에도 한낮에 받았던 태양열을 그대로 복사해 모래사장은 발바닥이 따가울 정도로 후끈했다. 우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찰랑찰랑 걸어가더니, 옷을 입은 채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바람과 파도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긴 이렇게 할퀴는 바람 속에서 태어나 바람 속에서 살았으니.

“이수씨!, 뭐해요. 빨리 들어와 봐요. 물이 차지 않아요!”

그녀는 옷이 완전히 젖어 버렸는데도 수영 자세를 취하더니 다시 밀려오는 파도 속에 파묻혔다. 한참 만에 고개를 내민 그녀는 모래사장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와 양팔을 하늘로 향해 쭈욱 뻗었다.

“아이, 시원해!”

우타는 푹 젖어 색깔이 짙어진 윗도리의 단추를 차근차근 풀어헤치더니 활짝 벗어 손으로 대충 둘둘 말아 한 뭉치로 만들더니 바다 속으로 던져버렸다. 이수는 그녀가 던진 윗도리를 건지려고 겹으로 밀려오는 파도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우타의 윗도리는 이수의 손끝에 닫기 전에 밀려오는 물결을 따라 떠내려갔다. 이수는 물 위에 해초처럼 흔들리며 가라앉는 우타의 윗도리를 건지기 위해 뛰어드느라 흠뻑 젖고 말았다.

이수는 우타의 옷을 겨우 건져 밖으로 나와 모래 위에 미역 말리듯 정성스럽게 펼쳐 놨다. 가히섬의 모래사장은 모래 사이에 산호석이 섞여 있어 옷이 잘 마를 것 같았다. 한참 뒤 우타는 모래사장으로 다시 걸어 나오더니 젖은 아랫도리도 거추장스럽다는 듯 자근자근 벗어 내려 이수가 널어놓은 ‘해초’ 옆에 둘둘 말아 내던졌다.

우타는 오후의 눈 부신 햇살에 자신의 몸매를 완전히 드러냈다. 측면에서 비추는 강한 광선 탓인지, 반사하는 모래사장의 조명 탓인지, 짙푸른 바다 빛깔의 배경 탓인지, 우타의 허리 곡선은 어느 때보다 더 탄력적이었고, 몸의 선은 걸을 때마다 신축적인 곡선으로 움직였다.

아직 햇살이 강해 눈 뜨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처럼 춤추듯 움직이는 선명한 몸의 선은 얇게 밀려오는 파도의 곡선과 부딪치면서 서로 아름다움을 경쟁하느라 물방울을 튀겨 올렸다. 우타의 몸에 달라붙은 물방울들은 미끄러져 내리기를 안타까워하며 천천히 우타의 허리를 타고 내리면서 무지갯빛으로 반짝였다.

다시 물속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양쪽 엉덩이 위엔 두 개의 뚜렷한 보조개가 파였고, 양 날개 뼈 사이의 등줄기는 엉덩이까지 세로로 깊게 그늘졌다. 한 차례의 파도가 밀려 나가자 이수는 그녀의 몸에서 반짝이는 ‘빛’을 느껴보기 위해 힘껏 달려가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의 몸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던 ‘빛’은 ‘촉감’이었다. 이수는 우타의 매끈한 ‘촉감’을 다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또 썼다.

드디어 지쳐버린 얇은 파도가 젖은 모래 위에 드러누운 두 사람의 등판을 살금살금 씻겨주었다. 섬과 섬 사이, 하늘과 하늘 사이, 햇살과 햇살 사이, 이런 데서만 불던 한 뭉치의 바람이 시간과 시간 사이로 파고들어와 이수의 눈두덩을 두드렸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갔음을 깨달은 이수는 후다닥 일어나 세워둔 보트로 달려가 잠수복과 산소통을 들고 왔다. 먼저 우타에게 잠수복을 건네주었다. 해가 기울면 바다 속이 어두워져 산호초의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울 거라는 걱정에 조급하게 잠수복을 입으려고 용을 썼지만 처음 입어보는 잠수복이라 착용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런데 뒤늦게 잠수복을 입기 시작한 우타는 재빠른 동작으로 잠수복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타는 지난해 10월 10일 오키나와 나하에 미군 함재기가 대공습을 해온 날 귀갑묘 안에서 처음 만나, 오늘 산호 조사에 나설 ‘바다꽃 정원’을 자랑했었다. “거기엔 엄청나게 넓은 ‘바다꽃 정원’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저는 그 낙원에서 헤엄치며 놀았죠”라고 어깨를 으쓱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우타는 산호를 ‘바다꽃’이라고 불렀다. 그 정원은 바로 이 가히섬과 아게나시쿠섬 사이에 있다.

그렇게 이수에게 자랑스럽게 구경시켜주겠다던 바다꽃 정원에 함께 들어가려 하자 그녀의 표정은 아까와 달리 점점 어두워졌다. 미군의 소해 작전으로 산호초가 무참히 파괴되었을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말없이 산소통을 메더니 천천히 바닷속으로 미끄러지며 이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바닷속에 들어간 우타는 인어처럼 매끄럽게 헤엄치며 이수의 눈에서 멀어져 갔다. 그녀를 따라가려고 발버둥칠 수록 물갈퀴가 엉켜 속력을 낼 수 없었다. 이수가 따라오지 못하는 걸 알아차린 우타는 되돌아와 이수를 한 바퀴 돌더니 천천히 오라고 손짓했다.

미군의 소해 작전으로 물고기들이 다 도망간 줄 알았는데 ‘스쿠’라는 노랑색 물고기 한 무리가 두 사람 주위를 한 차례 맴돌더니 ‘바다꽃 정원’ 쪽으로 앞서갔다. 갑자기 깊어지는 바다로 들어가 조금 더 가자 앞서가던 우타가 몸을 돌리더니 “저기가 바다꽃 정원!”이라고 손짓했다.

아아아, 그렇지만 그곳은 더 이상 ‘정원’이 아니었다. 미군 소해정들이 산호를 청소해버리는 바람에 바닷속은 평평한 쓰레기장으로 변해있었다. 그 쓰레기장 중간 중간에 아직은 살아있는 산호 몇몇이 모래에 뒤덮여 숨을 헐떡였다.

이수는 일단 가까이 가서 앞쪽에 있는 산호에 덮인 모래와 돌을 손으로 걷어냈다. 산호들은 모래 속에서 죽지 않고 겨우 버티고 있었다. 아우성을 질러댔다.

산호의 종류는 미도리이시가 가장 많고, 도게, 에다코몬, 쇼가, 구시하다 등이 흩어져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괴상 형태의 고부하마산호가 기뢰에 의해 여러 개로 동강난 채 흩어져있었다.

산호가 사라지면 산호와 함께 살던 물고기도 사라진다. 하지만 언제 왔는지 오쿠시바라고 불리기도 하는 오스 한 마리가 이수 앞에서 어슬렁댔다. 지름이 20㎝ 정도인 이 물고기는 산호가 번식할 수 있게 하는 중매쟁이. 이 물고기의 피부는 파랑, 분홍, 연두, 노랑 무늬가 예술적인 조화를 이룬다.

오스 한 마리가 나타나자 아카루와 메스 몇 마리도 뒤따라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 흔하다던 이메비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수는 산호의 친구인 이런 물고기들이 몰려드는 걸 보자 산호를 다시 살려내야 하겠다는 의욕이 살아났다.

하지만 우타는 ‘쓰레기더미 정원’을 보더니 안타까워 몸서리를 치며 산호를 뒤덮고 있는 모래와 돌 더미를 한참이나 정신없이 걷어냈다. 산호를 덮은 모래를 털고 또 털다 지쳐버린 우타는 허탈함에 못 이겨 온몸을 마구 흔들더니 밖으로 나가자고 손짓했다.

우타가 먼저 가히섬 모래사장으로 올라가자 이수도 뒤따라 물 밖으로 나가 지친 몸을 젖은 모래 위에 눕혔다. 우타는 잠수복을 벗자마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먹이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바다꽃 정원이 이렇게 파괴된 건 미군이 지난 3월 25일과 26일 ‘모터 마인스위퍼’라는 디젤 모터 소해정을 동원해 자마미 앞바다를 청소해버려서다. 당시 소해전단의 모토는 ‘노 스위프, 노 인베이전(소해 없이 침공 없다)’이었다. 미군은 산호가 파괴되는 것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미군으로선 이런 소해 작전을 펴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3월 24일 오후 6시 25분 자마미섬 옆 도카시키섬 인근에서 미군 제 54임무부대의 구축함 핼리건(DD-584)이 일본군의 기뢰에 의해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난 데 따른 것이다.

이 사고로 구축함 핼리건의 승무원 325명 가운데 함장 그레이스 소령을 비롯 장교 19명과 153명의 해군이 전사하고, 39명이 부상을 당하자 미군은 ‘노 스위프 노 인베이전 전략’을 과감히 실행했다.

이 전략 때문에 엉뚱하게 우타의 ‘바다꽃 정원’이 이렇게 희생당한 것이다. 이번 전쟁에서 우타는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어린이들을 나가사키로 이송하는 여객선 쓰시마마루호를 미군 잠수함이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바람에 이 배에 승선했던 어머니와 어린 동생이 깊은 바닷속에 빠져 죽었다. 미군 잠수함은 자기들이 침몰시킨 배에 780명의 어린이와 700명의 부모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단 1명도 구출하지 않았다. 우타의 아버지도 티니안섬에서 미군의 총에 맞아 전사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온 마음으로 정을 쏟은 것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한 ‘바다꽃 정원’마저 이처럼 쓰레기더미가 된 걸 보자 그녀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이수도 처참하게 희생된 바다꽃 정원을 보자 ‘미국’에 대한 신뢰감이 무너져 내렸다. 미국이란 나라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을 깊게 인식했다. 앞으로 미군은 그들이 점령한 이 오키나와의 바다와 들판을 자기 국익에 맞게 모조리 변조할 것이라는 우려가 앞섰다.

이수는 C-10을 우연히 발견해 미국에 엄청난 기밀재화(다이아몬드)를 제공하는 기회를 가진 덕분에 지금 이렇게 미군의 호의를 받고 있지만 이런 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었다. 미군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 3명을 모두 잃은 우타로선 미군의 이런 행위가 용서하기 힘들 수밖에.

하지만 우타는 가족 가운데 혼자 살아남았음에도 간호사로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돌보며 꿋꿋하게 이 전쟁을 버텨냈다. 이수는 지금 그녀에게 위로해줄 말을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우타 옆에 가서 앉아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수씨, 이제 제겐 이수씨 밖에 없어요!”

이수는 눈물과 소금물로 범벅된 우타의 얼굴에 자신의 볼을 문질렀다. 그는 우타를 감싸 안고 “미도리이시 산호는 이식(移植)하면 살 수 있으니까, 같이 힘을 다해 한번 살려보자”라며 달랬다.

다음날부터 두 사람은 가히섬과 이게나시쿠섬 사이의 바다 속에서 산호가 덮어쓴 모래를 깨끗이 걷어내고, 미도리이시 스기노키 에다코몬 등 수십 종의 산호들을 이식해 ‘바다꽃 정원’을 다시 조성했다. 계절적으로 수온이 높아 이식한 미도리이시들은 빠른 속도로 생기를 되찾았다.

이파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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