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포 사랑

                          고두현


 

당신 너무 보고 싶어

만리포 가다가

 

서해대교 위

홍시 속살 같은

저 노을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바알갛게 젖 물리고

옷 벗는 것

보았습니다.

 

서해대교 위에서 홍시 속살 같은 노을을 만났다. 부드러운 노을이 산등성이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익어가는 풍경. 늦게 떠난 여행길을 행복하게 색칠해준 첫 번째 화폭이었다.

‘만리포 사랑’ 노래비가 서 있는 해변에 닿았더니 ‘똑딱선 기적 소리’는 들리지 않고 저녁 백사장에 파도 소리만 잘브락거렸다.

밤바다를 바라보며 오래 생각했다. 여기까지 나를 밀고 온 그리움과 결핍, 겨울 바다보다 더 쓸쓸한 외로움, 모래밭에 남아있는 연인들의 발자국, 어린 날 파래를 뜯으러 혼자 갔던 기억….

밤바다에 서면 언제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럴 땐 눈앞에 펼쳐진 수평의 바다를 잡아당기듯 마음의 보자기를 평평하게 펼쳐 본다. 그러면 점차 평온해진다. 밤바다가 주는 제일 큰 선물은 바로 이 순간이다.

그렇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밤을 지내고 나면, 아침 해가 마알갛게 다림질하며 바다 위로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새벽까지 뒤척이던 물결도 싱그러운 안개를 피워 올리며 다림질을 돕는다.

한나절을 보내고 나서 길을 되짚어 개심사로 향한다. 호수를 끼고 한가로운 목장을 지나 오솔길을 돌면 고즈넉한 숲 속에 닿는다.

‘세심동(洗心洞)’이라는 표지석을 발견하자 마음이 겸허해진다. 개심사(開心寺)의 ‘개’자가 ‘고칠 개(改)’가 아니라 ‘열 개(開)’라는 것도 알게 된다. 마음을 연다는 건 고친다는 것까지 아우르는 선경이다.
마음을 씻고 5분 남짓 산길을 오르는 동안 발걸음이 느려진다. 해탈문을 지날 때쯤엔 안과 밖을 구분하는 ‘마음의 문’조차 없어진다.

명부전을 끼고 경허 선사가 거처하던 곳을 지나 언덕배기를 오르면 발그레한 미인송 사이로 산신각이 보인다. 그 아래 절집 전경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내포 땅이 아늑하게 다가온다. 조금만 더 까치발로 서면 만리포 물소리까지 들릴 듯하다.

내려오는 길에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10여 년째 세심동에서 커피며 라면이며 말린 산나물을 팔고 있는 분이다. 얼마나 맑고 어리게(?) 보이는지 얼굴만 보면 동자승 같다.

그분은 ‘궂은일 안 하고 늘 이렇게 노니까’ 젊어 보인다며 환하게 웃는다. 청량한 웃음소리에 산 아래 호수가 따라 웃고, 만리포도 덩달아 웃고, 여기까지 따라왔던 세속도시의 먼지들도 함께 웃으며 몸을 헹군다.

이틀 동안 이만한 그림을 화폭에 담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풍경화가 어디 또 있을까.

할아버지 덕분에 ‘개심사에서’라는 시까지 한 편 더 건졌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개심사에서

                                      고두현


 

개심사 입구 세심동에

어린 할아버지 한 분.

지난 팔월에 팔순잔치 혔제

여그서 한 십년

취나물이며 은행 말린 거며

커피 사발면 같은 거,

대처에 나간 적 읎어

할멈은 일흔 다섯, 살림하지

건강 비결?

평생 놀았지 센 일 안했어

한량이여

 

아 취나물 안 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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