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

입력 2011-03-21 22:10 수정 2011-03-21 22:10
서점에 갔다. 오늘이 정주영 회장님께서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는 날이라는 뉴스를 보고 정주영 회장께서 쓰신 자서전을 아들에게 사주고 싶어졌다. 금년 2월 달에 현대경제연구원과 전략실행력에 관한 이러닝 과정을 만들었다. 교육과정을 만들 때, 아무래도 그룹 직원들이 보는 과정이라 정주영 회장의 일화나 경영철학에 대한 내용을 많이 넣었었다. 정주영 회장의 이야기나 일화를 많이 보면서 나는 나름대로 정주영 회장의 성공비결을 생각해봤다.

 

정주영 회장의 성공비결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강하게 추진하고 또는 창의적인 발상으로 어려운 문제를 새로운 기회의 계기로 삼고. 정주영 회장의 이야기는 참 많았고, 배울 점도 많았다. 그런데, 교육과정을 만들면서 나는 정주영 회장의 이야기 중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꾀를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정주영 회장이 시골에서 처음 도시로 와서 취직한 곳은 쌀가게였다. 20대 초반의 정주영은 쌀가게에서 꾀를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고 했다. 특히, 새벽부터 일어나서 쌀가게의 앞길까지 청소하고 물도 뿌리며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는 거다. 아마 그런 그의 모습은 쌀가게 주인에게나 또는 쌀가게를 찾아오는 손님에게나 눈에 띄었을 거다. 20 초반의 젊은이가 가령,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규칙적으로 자신이 일하는 가게의 앞길을 청소한다면 아마 누구도 그를 싫어하지 않았을 거다.

 

자서전을 보면 정회장이 일하던 쌀가게의 주인아들은 게으른 난봉꾼으로 만주로 노름을 하러 다녔다. 그래서 쌀가게 주인은 아들보다 정주영을 더 신임했다. 후에 쌀가게 주인은 아들의 노름 때문에 쌀가게를 정리하게 되었고 그것을 정주영이 인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2년쯤 후에 청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이 식량을 배급제로 바꾸며 정주영이 운영하던 쌀가게는 문을 닫게 된다. 어찌 보면 정주영 회장은 운이 좋았던 사람이 아니라, 운이 무지하게 나빴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쁜 운을 그는 항상 새로운 기회로 만들었다. 

 

쌀가게를 정리하고 정주영은 아는 사람들과 자동차 수리공장을 차린다. 그때 돈을 만들기 위해 정미소를 운영하던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는데,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렸다. 자동차 수리공장은 시작하자마자 불이 난다. 공장 시설과 수리 들어온 자동차까지 모두 불타버린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정주영은 다시 사채업자에게 가서 이대로 끝나면 돈을 갚을 수 없으니 다시 한번만 돈을 빌려주면 꼭 돈을 벌어서 갚겠다고 또 돈을 빌린다. 담보 없이 어떻게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릴 수 있을까? 아마 그 사채업자는 정미소를 운영하며 정주영의 쌀가게에 자주 왔을 거다. 그러면서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꾀를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정주영을 눈여겨봤을 거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저 녀석은 무엇을 해도 성공할만한 녀석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을 거다.

 

 

정주영 회장에 관한 자료나 이야기를 읽어보며, 가장 먼저 나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그가 항상 새벽에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했다는 거였다. 창의력도 필요하고 리더십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것도 자신의 일을 열심히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들이다. 열정이 있어야 긍정적인 생각도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기는 거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나의 생활을 계속 돌이켜봤다. 그러면서 아침에 일찍만 일어나면 왠지 모든 일이 잘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까지 지키지는 못하고 있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계속한다. 사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 정주영 회장이 아침에 일찍 일어났던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정주영 회장은 자신은 본인의 아버지처럼 살기 싫어서 가출을 했다고 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는 그의 DNA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어린 시절 집에서 4번이나 가출을 했다. 가출을 해서 어디선가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찾아와 그를 다시 집으로 대리고 갔기 때문에, 그가 진짜 가출에 성공한 것은 19살 때의 4번째 가출이었다. 그 때에는 이미 집에서 정해준 여자와 결혼도 했었을 때였다. 정회장이 어렸을 적에 그렇게 고향을 떠나서 도시에서 살고 싶었던 이유는 농사일이 힘들고 가난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정회장의 자서전을 보면 아마 그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서 논밭으로 나가서 일을 했던 거 같다. 나는 자료를 읽으면서 이런 상상을 했다. 자고 있는 어린 정주영을 아버지는 억지로 깨워서 논밭으로 대리고 나간다. 자고 싶고 놀고 싶었겠지만, 아버지가 무서워서 어린 정주영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몸에 베었다. 그리고 그렇게 평생을 살았던 거다. 정주영은 항상 힘들게 일만 시켰던 아버지를 싫어했을 거다. 힘들게 사는 것이 싫어서 고향을 떠났을 거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이미 새벽부터 일어나 무엇인가 열심히 하는 것이 몸에 베어있었던 정주영은 무슨 일이든 죽기살기로 했던 거였다. 자신이 싫어했던 아버지가 물려준, 새벽에 일찍 일어나 열심히 일하는 DNA를 유산으로 받은 그는 그것을 기반으로 성공하고 부자가 되었던 것이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보며 아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나를 고민한다. “내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가?” 의심스럽다. 하지만, 녀석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항상 고민이 된다.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을 사주는 것이 다는 아닐 텐데 말이다.

 

정주영 회장에 관한 자료들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 하나를 덧붙이면, 사람들은 정회장처럼 크게 성공하고 부자가 된 사람들은 운이 참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면 그는 그렇게 운이 좋았던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운이 나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나쁜 운을 항상 새로운 기회로 만들었다. 위기의 상황을 항상 행운의 기회로 전환시켰다. 정주영 회장을 보면 행운은 항상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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