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과 실질은 수시로 기싸움을 한다. 명분은 순리와 이치를 앞세우고 실질은 현실을 중시한다. 베풂은 명분이고, 누구에게 어떻게 베풀지는 실질이다. 베풂이 상대에게 되레 해가 된다면 명분은 맞지만 실질은 어긋난 것이다. 베풂이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은 수시로 명분과 실질을 저울질한다. 지혜란 다른 게 아니다. 그 둘의 균형을 잡는 게 바로 지혜다.

송나라 군사가 강을 두고 초나라 군사와 마주했다. 송나라 양공(宋襄)이 강 한쪽에 먼저 진을 쳤다. 막강한 초나라 군대는 송나라 진을 부수고자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송의 군대가 턱없이 약하다고 판단한 장군 목이가 양공에게 간했다.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양공은 듣지 않았다. “그건 의로운 싸움이 아니다. 정정당당히 싸워야 참된 패자가 될 수 있다.”
어느 새 초나라 군사는 강을 건너와 진용을 가다듬고 있었다. 목이가 다시 한번 간절히 진언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진용을 미처 가다듬기 전에 치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양공은 재차 무시했다.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싸움의 결과는 이미 짐작했을 거다. 원래 열세였던 송나라 군사는 참패하고, 양공 자신도 허벅지에 입은 부상이 악화되어 이듬해 죽고 말았다. 남송 말에서 원나라 초에 걸쳐 활약한 증선지가 편찬한 《십팔사략》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송양의 어짊’을 뜻하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은 어리석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거나 과한 인정을 베풀다 되레 해를 입는 것을 비유한다. 누구는 조선 500년을 ‘명분의 시대’라고 꼬집는다. 명분만을 좇다 실질을 잃어 나라가 허약해졌다는 것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나름 일리 있는 지적이다. 실질이 빠진 명분은 탁상공론이 대부분이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물을 붓기 전에 밑부터 막는 게 순서다. 가르침이 빠진 맹목적인 사랑은 자식·부모 모두에게 화가 된다. 자식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게 참사랑이다. 자식의 수고를 부모가 다 떠안으면 그 자식은 허약체질이 된다. 간함이 없는 신하는 충신을 가장한 간신일 뿐이다. 대개의 명분은 겉에 달콤한 초콜릿을 입힌다. 한데 그게 몸에 해로운 경우가 많다.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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