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수, 일본 속담에 ‘다이아몬드는 복어알이다’라는 말이 있어. 복어알은 극미량을 먹으면 황홀한 환각에 빠지거든. 그 환각에 홀려 조금 더 먹다간 중독돼 죽게 되는 거야. 다이아몬드도 마찬가지야. 그 홀림에 눌리는 사람은 다 죽게 되어있어... 자네도 알다시피 그 다이아몬드의 존재를 아는 사람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없어.

자마미로 다이아몬드를 운반한 오마치 제 11선박단장과 부하장교들도 오키나와 본도로 귀환하는 길에 모두 침몰했잖아... 알고 보면 이치카와 중대장은 그 다이아몬드의 수집과정부터 너무 잘 알고 있었어... 나의 임무 가운데는 이치카와를 감시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지. 이치카와는 최고의 ‘요주의 인물’이었거든. 그가 훌륭한 군인이었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천황을 위해 죽이지 않을 수 없었어. 천황폐하만이 그 다이아몬드를 가질 수 있으니까...”

“나카타, 결국 그 다이아몬드를 아는 사람 중 살아남은 사람은 나밖에 없군... 그래서 나를 죽이러 왔나?”

“자네를?... 내가 자네를 왜 죽여?... 이젠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졌지... 미군이 자네를 곧 죽일 테니까.”

“미군이 나를 왜 죽여?”

“이봐 서이수, C-10은 동남아 5개국에서 강제로 탈취한 보석이야. 자카르타에서 네덜란드인들로부터 탈취한 것들도 있지. 그곳엔 다이아몬드 이외에도 역사적 유물과 진귀품들이 많아. 그건 작은 국가 하나를 독립시킬 수 있을 만큼 값나가는 것들이야... 일본이 강탈한 이 보석을 미국이 빼앗아 가면 전후엔 강탈당한 국가에 되돌려줘야 할 수밖에 없지.

일본으로선 이미 요코하마 쇼킹은행으로부터 보증까지 받아놨기 때문에 나중에 이 보석이 일본 소유임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어.... 나는 이 보석을 강탈한 게 아니라고 주장할 테니까.... 이제 이게 강탈한 보물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자네밖에 없어. 자네만 없어지면 미국은 이 다이아몬드를 돌려주지 않아도 돼! 그런데 미국이 바보가 아닌 이상 자네를 살려 두겠어?”

“그래? 알았어, 그렇다면 미군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너부터 죽여야겠다!”

이수는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나카타의 관자놀이에 대고 짓이겼다. 그러자 미군 보초병 2명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와 이수의 양쪽 옆구리에 자동소총을 들이대고 권총을 빨리 내려놓으라고 윽박질렀다. 고함소리가 크게 들리자 스템 대위가 놀란 표정으로 달려와 이수에게 총을 당장 내려놓으라고 단호하게 소리쳤다.

“서이수 봤지? 내가 너를 죽이지 않아도 이 미국 놈들이 널 죽일 거야... 게다가 내가 오다케산에 일본군 특수요원 3명을 잠복시켜놨어. 내가 죽어도 걔들이 너를 찾아내 틀림없이 죽일 거야”

나카타의 일본말을 못 알아듣는 스템 대위는 이수를 냉랭하게 아래위로 쳐다보더니 권총을 압수한 뒤 일단 숙소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이수는 나카타의 교활하고 능란한 간교에 처참하게 능욕을 당해 정신이 갈팡질팡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가위에 눌린 듯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의자에 멍하게 앉아있는데 서상덕이 헐떡이며 뛰어왔다.

“형님, 나카타 하사가 투항해왔답니다... 얘기 들었어예?”

“응... 지금 만나고 오는 길이야...”

“형님, 그놈을 만나고도 살려뒀단 말입니까?”

“지금, 미군이 그놈을 보호하고 있어.”

“그래예? 걱정 마이소... 오늘 밤 내가 그놈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릴 테니까예... 저기 수용소 관리인한테 오늘 밤 미군이 그 새끼를 어디에 가둬두는지 알아놓라고 얘기하겠심더.”

서상덕이 돌아간 뒤 이수는 간이침대에 누워 나카타가 설치해놓은 덫에 갖가지 변수를 대입해보며 문제를 풀어나갔다. 나카타는 이미 마루후크의 규모가 얼마인지, 자마미 어느 지점에 보관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도쿄 정보국 제1부에 송달했을 것이다. 이제 보석이 미군의 손에 넘어가더라도 종전이 되면 일본 정보국이 그 자료를 제시해 환품을 요청하거나, 아니면 보석을 제공하는 대가로 천황을 보호해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이수가 살아있는 한 이 보석은 탈취한 거란 게 증명되기 때문에 나카타는 이수를 살려둘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미군에 투항해왔다. 이제 서이수만 죽이면 다이아몬드를 미국에 뺏기더라도 그동안 극비로 추진해온 ‘마루후크작전’은 완전히 성공을 거둔 셈이 되는 거니까.

이른 아침 스템 대위가 이수를 또다시 불렀다. 스템 대위는 오키나와 지도를 펴놓고 나카타에게 C-10의 지점을 표시하라고 강요했지만 “이놈이 자네가 오지 않으면 절대 지점을 표시하지 않겠다고 끈질기게 우기고 있어”라면서 눈에 노기를 띤 채 이를 갈았다. 스템은 상부로부터 C-10을 빨리 찾아내라는 압력을 심하게 받고 있어 보였다. 서상덕도 밤새 나카타를 해치진 못했는지 나카타의 안색은 어제 저녁보다 더 반질거렸다.

“미스터 서, 이 녀석이 말을 듣지 않으니... 자네가 먼저 C-10을 표시해주지 않겠나? 그러면 모든 게 쉽게 해결되잖아”

어처구니없게 나카타를 설득하던 불꽃이 이수에게로 튀겼다. 그렇다고 이수가 이 설득에 넘어가면 나카타의 위협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게 된다. 때문에 이수도 나카타가 먼저 표시를 하지 않으면 표시하지 않겠다고 우길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나카타가 제안했다. C-10은 이 자마미섬에 있으니 세 사람이 함께 현장을 찾아가 확인하자고 했다. 순간 이수는 속으로 ‘나카타, 너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며 나카타의 제안에 흔쾌히 동조했다.

나카타는 함께 현장을 찾아가는 도중에 틀림없이 숨겨놓은 무기로 이수를 공격할 것이다. 그때 나카타보다 먼저 총을 뽑아 공격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오늘 나카타를 없애지 않으면 스템 대위도 살아남기 어려울 거라는 걸 스템은 아직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다이아몬드’에 눈이 뒤집혀 나카타의 위험성을 간과했다.

서이수까지 지점 표시하기를 강하게 거부하자 스템은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지 이수를 바라보며 쓴 미소를 짓더니 “좋아, 그럼 전투병 2명을 데리고 함께 가지”라고 제안했다. 전투병을 데리고 가겠다고 하니까 나카타는 잠시 망설였으나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스템 대위는 자마미의 지리를 잘 아는 세이버팀의 잭 어시지 상병과 로렌스 베닛 상병을 호출했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어시지와 베닛이 오자 스템 대위가 두 사람에게 “오늘은 일본군 패잔병들이 숨어있는 곳을 수색하러 가니까 교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주의를 주었다.

아침 10시, 스템, 이수, 나카타, 어시지, 베닛 다섯 사람은 C-10을 찾아 나섰다. 나카타는 무장을 하지 않았고, 스템과 이수는 권총으로 무장했다. 그럼에도 이수는 어시지와 베닛에게 거듭 당부했다.

“어시지, 베닛... 오늘은 숨어있는 패잔병보다 나카타 저놈을 더 경계해야 해... 무척 교활한 놈이니까, 경계를 늦추면 우리가 당해. 내 추측으론 저놈이 어느 지점에 몰래 무기를 숨겨놨을 거야”

“우리도 저놈이 자마미에서 얼마나 악랄한 짓을 했는지 그동안 수없이 봐왔잖아... 저런 놈이랑 왜 함께 가지?”

“그러게 말이야. 아직 스템 대위는 저놈이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부대를 나서자 나카타는 수용소 안의 일본군들이 이죽거리며 쳐다보는 걸 의식해서인지 아주 거만한 자세로 뒷사람들을 안내하듯 앞장서서 발소리를 크게 내며 걸어갔다. 이수는 나카타의 움직임에 눈을 떼지 않았다. 마을 옆 미군이 새로 조성한 개울을 건널 때 발이 물에 빠졌음에도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고 나카타만 주시했다.

자마미 마을 앞 도랑을 건너자 나카타가 뒤쳐지며 이수에게 다가왔다. 그는 이수의 의식을 흩으러 놓으려고 여러 가지 기억들을 더듬으며 혼자서 주절주절 늘어놨다.

“서이수, 너 오시타 중위 알지?... 내가 지금까지 너를 살려둔 건 오시타 중위 때문이야. 오시타는 나와 중학교 동기인데 그가 가잔비라 언덕에서 너한테 은혜를 입었다며, 너는 군인이 아니라 식물학자니까, 죽이지 말라고 누누이 부탁했어...

오시타 같은 황군은 절대 너처럼 배신하지 않아... 오시타가 저 건너 아카섬 제2 해상정진대에 근무했다는 거 모르지? 자마미에도 한번 찾아 왔었어... 서이수, 천황폐하도 식물학자이신데, 제국대학 다닌 놈이 이렇게 배신해서 미군의 앞잡이가 되다니... 너야말로 이 세상에 살려둘 가치가 전혀 없는 바카야로네...”

“나카타, 너도 지금 투항해서 미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잖아”

“그래도 너처럼 배신하진 않을 거야”

“며칠 더 있어 봐 이제 너의 천황이 너를 배신할 거니까”

나카타가 배신을 하지 않겠다는 건 오늘 일본군으로서 어떤 행동을 하겠다는 뜻이 숨겨져 있음에 틀림없었다. 히타키지 해안을 돌아 올라가면 아주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도 나카타는 비탈진 간자산 옆구리로 기어 올라갔다. 이수는 비탈길에 들어서면서부터 돌발 상황에 대비해 제일 뒤쪽에서 따라갔다. 나카타, 스템, 어시지, 베닛, 이수 이렇게 종대로 산기슭을 올라갔다.

간자산으로 올라가다 보면 자마미 마을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중턱이 하나 나타나는데 그곳에 이르자 나카타가 좀 쉬어가자며 풀 섶 위에 먼저 덥석 앉았다.

피곤한 기색이 없는데도 나카타가 먼저 자리에 앉는 점이 수상했다. 이수는 긴장한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나카타의 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어 스템 대위가 나카타 옆에 가서 엉덩이를 붙이자 어시지도 총을 벗어놓으며 풀밭에 앉았다.

이때 나카타의 오른손 끝이 풀 섶을 더듬는 게 보이자 이수는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뒤로 세차게 넘어졌다. 어느새 나카타가 자기 엉덩이 아래 풀잎 더미에 숨겨둔 권총을 꺼내 이수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이수는 무조건 모래언덕 아래쪽으로 굴렀다. 귀를 찡하게 울리는 3발의 권총 소리가 들렸다. 이어 자동소총의 굉음이 산기슭을 훑어 내려왔다. 모래기슭을 10m 정도를 굴러온 이수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자동소총 소리도 멈추었고, 쫓아 내려온 베닛 상병이 누워있는 이수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어? 어?.. 총을 맞지 않았네?”

“베닛, 나카타는?”

“사살됐어!”

이수는 베닛 상병이 내미는 손을 잡기 위해 왼쪽 팔을 내미려는데, 팔이 들려지지 않았다. 팔꿈치에서 지독하게 쓰라린 통증이 왔다. 왼팔에 총을 맞은 듯했다. 이수의 왼팔이 꺾이는 걸 본 베닛은 짧게 소리쳤다.

“움직이지마! 팔이 부러졌어!”

베닛은 이수의 윗옷을 벗겨 팔을 더듬어보더니, 별안간 이수의 왼팔을 양손으로 힘껏 잡더니 세차게 쑤셔 박았다. 팔이 부러진 게 아니라 팔꿉이 빠진 거였다.

“근데 미스터 서, 어떻게 그렇게 빠른 속도로 넘어질 수가 있지?”

“어?... 그거? 유도를 배우면 그렇게 돼. 유도는 ‘낙법’이라고 넘어지는 것부터 먼저 배워 달리 말하면 총 쏘는 법보다 총알 피하는 법을 먼저 배우는 셈이지.”

아직 위쪽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이수는 오른손에 권총을 빼 들고 긴장을 풀지 않고 베닛을 따라 둔덕 위로 올라갔다.
이수의 눈앞에 나타난 형국은 처참했다. 나카타는 아까 그 자리에서 자빠진 채 복부와 가슴에 여러 발의 총탄을 맞아 부서진 벌집처럼 헤쳐졌고, 옆구리에서 검붉은 피가 새어 나와 주변 풀잎을 적셨다. 이수에게 나카타의 시신은 너부러진 복어처럼 보였다. 뱃속이 독성으로 가득찬 악마.....튀긴 핏방울은 ‘복어알’ 같았다.

[이렇게 반짝이는 복어알도 있을까?]

어시지 상병은 혹시 잠복해있던 일본군이 나타날까 봐 아직도 자동소총을 단단히 잡고 계속 사방을 살피며 경계를 하고 있고, 스템 대위는 나카타의 시체에서 등을 돌린 채 앉아 턱을 쥐어짜며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이놈이 나에게도 총을 겨눴어... 어시지 상병이 아니면 나는 죽었을 거야”

“대위님, 일본군에 그렇게 속았으면서도 또 일본군을 믿으려고 했어요? 어제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나카타 저놈은 결코 사람이 아닙니다.”

스템 대위는 치명적인 오산에 뉘우치며 한참 동안 공허하게 자신의 턱을 좀 더 쥐어짜다가, 이수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애걸하는 눈빛으로 이수에게 팔을 쭉 뻗었다.

“미스터 서, 이제 모든 게 자네 뜻대로 되었으니까, 우리를 C-10으로 안내해줄 수 있겠지?”

“그럼요! 지금 가시죠.”

 

이파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이파(李波)...소설가. 한국경제신문 중소기업연구소장, 일본 가나가와중소기업재단 선임연구원, 도키와대 교수 등을 지냈다.
현재 콘텐츠개발업체 (주)기업&미디어 대표.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지난 15년간 도쿄 도서관들을 뒤지고, 오키나와를 계속 찾아가 현장에서 취재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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