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과 일관성

입력 2010-01-25 13:33 수정 2010-04-05 11:31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았죠?”

얼마 전 강의에 갔다가 쉬는 시간에 한 분에게 불쑥 물었다. 그분들은 일주일 과정의 교육을 받고 계셨는데, 넓은 강의실에 20여명 정도가 듬성듬성 앉아있었다. 나는 3일째에 강의를 했는데, 왠지 이분들은 충분히 자리를 옮겨 앉을 수도 있는데 처음 앉은 자리에 그냥 그대로 있는 것 같았다. 역시 나의 예상대로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았다고 대답했다. 그 강의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첫날 엉겁결에 강의실에 들어와 별 생각 없이 앉은 그 자리에 3일 동안 계속 앉았던 것이다. 그분들은 아마 나머지 이틀도 같은 자리에 앉을 거다. 우연히 처음 앉은 자리가 ‘고정자리’가 되는 것이다.

 

“처음 것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고정관념 같은 거 아닌가요?”

“일관성이 있는 거죠.”

 

고정관념이라는 나의 말에 질문을 받았던 분은 일관성이라는 단어로 응수했고, 재치 있는 그분의 답변에 강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그분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고정관념과 일관성이 매우 비슷한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반적인 느낌으로 고정관념은 안 좋은 거고, 일관성은 좋은 거다. 나쁜 친구인 고정관념과 좋은 친구인 일관성이 매우 비슷하고 서로 친밀하다는 생각을 해보니 재미있었다. 사전에서 고정관념과 일관성을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          고정관념 [명사] 잘 변하지 아니하는, 행동을 주로 결정하는 확고한 의식이나 관념.

-          일관성 [명사] 하나의 방법이나 태도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성질.

 

생각해보면 고정관념과 일관성은 거의 같은 것이다. 그런데, 고정관념은 나쁘기 때문에 없애야 하고, 일관성은 좋은 것이기 때문에 가져야 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고정관념이 억울할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처음 상태를 바꾸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또한, 처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알게 모르게 주입 받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변화에 민감하게 물 흐르듯이 주위에 맞게 자신을 바꾸고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이것은 상충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풍부하게 갖기 위해서는, 일관성과 고정관념에 대해 좀더 의도적으로 몇 가지를 따져봐야 할 거 같다.

 

 

먼저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은 처음에 매우 강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첫인상이 중요하고, 처음 접한 정보가 생각을 결정한다. 시작이 반인 것처럼 처음 출발이 전체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의 생각이 처음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심리학자들의 대표적인 실험이 다음과 같은 거다.

 

다음의 계산 값을 대략적으로 추정해보라.

(질문 1)            8 X 7 X 6 X 5 X 4 X 3 X 2 X 1 = ?

(질문 2)            1 X 2 X 3 X 4 X 5 X 6 X 7 X 8 = ?

 

 

친구들끼리 이 실험을 해보라. 5초의 시간을 주고 몇 명에게는 (질문1)의 값을 추정하게 하고, 몇 명에게는 (질문2)의 값을 추정하게 하는 거다.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질문1)에 대한 사람들의 추정 값은 대략 2,000 정도이고, (질문2)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은 대략 500 정도라고 한다. 사실 두 질문은 같은 것인데, 사람들의 대답이 이렇게 다른 것은 (질문1)에서는 처음 접하는 숫자가 8, 7이고, (질문2)에서는 처음 접하는 숫자가 1, 2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처음에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는 거다. 그래서 처음의 상태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 바로 고정관념에 빠지지 말라는 거다.

 

우리는 자신의 것을 바꾸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더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 또는 더 좋은 방법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인가 바꾸는 것이 필요한데, 그런 변화조차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어떤 안건으로 회의를 한다고 해보자. 어떤 의견에 대해 자신의 어제 주장을 오늘 바꾸고 수정한다면 사람들은 줏대가 없다거나 심지어 변절자라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제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어제보다 더 똑똑해진 사람이다. 어제보다 더 똑똑해졌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업그레이드 한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은 더 좋은 새로운 자신의 의견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어제 안건에 집착하며 그것을 논리적으로 더 포장하고 싶어한다.

 

 

고정관념과 일관성은 순종과 잡종의 느낌도 준다. 순수한 혈통을 가진 순종은 좋은 것이고 잡종은 나쁜 것이다. 일관성을 지키는 것은 순종의 혈통을 유지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보다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을 사람들은 더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강아지는 순종이 좋을지 몰라도 요즘 대부분의 것들에서는 잡종이 더 인기가 있다. 휘발유 자동차나 전기 자동차보다 두 가지의 장점을 섞은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인기다. 창의성을 발휘하는 중요한 요소가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섞는 거다. 한마디로 잡종을 만드는 거다. 그것은 순수 혈통을 죽이는 것이 아닌 우리의 체질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다. 많은 것들이 그렇다. 로봇과 바이오가 결합하고 물리와 생물이 통합하고 인문학과 경영학이 만나는 것은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다. 한국 축구에 외국인 감독이 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고정관념과 일관성은 왠지 이런 생각도 들게 한다. 예를 들어, 첫 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가 있다고 해보자. 이 남자는 처음의 생각을 변하지 않게 계속 유지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생각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처음 만났던 여자를 평생 잊지 못하며 그 여자에 대한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남자는 현실적으로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매우 멋진 남자던지, 아니면 진짜 구질구질 찌질이던지. 그 남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아마 많이 변했을 거 같다. 10년 전쯤에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광고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동전화 서비스 회사 중 후발 회사가 기존의 고객들을 자신들의 회사에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한 이 도발적인 카피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 카피도 왠지 고정되는 것과 일관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비슷한 상황이 생각보다 많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살던 동네, 살던 집에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생각보다 자주 쉽게 집을 옮기는 사람도 있다. 쓰던 물건을 쉽게 바꾸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사 가서 거리상으로 멀어진 교회를 어렵게 다니는 사람이 있고, 가까운 교회로 바로 옮기는 사람이 있다.

 

 

몇 가지 상황에서 쉽게 옮기는 것과 옮기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이고 내가 원하는 것이냐는 판단으로 선택되어야 한다. 버려야 할 고정관념과 지켜야 할 일관성을 구별하여 생각한다면, 일단 모든 상황에 고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은 바꿀 수 있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바꾸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줄 수 있다면 전략적으로 일관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고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일관성은 전략적인 선택이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효과적일 거 같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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