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와 헨델이 결혼하여 음악을 낳았다

입력 2010-01-06 12:09 수정 2010-01-06 12:09
주말에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장학퀴즈를 봤다. 문제를 잘 풀지는 못해도 가끔 골든 벨이나 장학퀴즈 등을 보게 된다. 내가 아는 문제가 한번쯤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그날도 잠깐이지만 아들 딸과 같이 퀴즈를 풀었다.

(Q) 음악의 어머니는?

 

아들과 딸은 너무 쉬운 문제라며 ‘헨델’이라고 답했다. 자신들이 맞출 수 있는 문제가 나왔다는 사실로 아이들은 매우 즐겁고 기뻐했다. 기분 좋게 의기양양해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물었다. “음악의 아버지는?” 이번에도 아이들은 “바흐”라며 정답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또 한번 물었다.

(Q) 왜 음악의 어머니는 헨델이고 아버지는 바흐야?

 

아이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초등학생에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기대하고 물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을 하고 싶었다. 무엇이든 왜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을까? 하는 질문하는 태도가 진짜 공부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나를 왜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나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음악의 어머니 = 헨델, 음악의 아버지 = 바흐’ 이것으로 충분하고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더욱 황당한 건 아이들이 헨델을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음악의 어머니니까 당연히 헨델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니 교향곡이니 하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장엄하고 엄격한 아버지 같다는 생각을 하고, 헨델의 음악을 들으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어머니 같다는 느낌을 받지도 않는다. 그런 것에 나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나를 정작 놀라게 했던 것은 아이들의 당당함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자기들은 알 것을 충분히 다 알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 왜 사람들이 그들에게 그런 별명(?)을 붙였는지에 대한 질문 자체가 필요 없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뜻도 모르고 이유도 모르는 ‘음악의 어머니 = 헨델, 음악의 아버지 = 바흐’과 같은 류의 암기를 몇 개 더 해서 시험에 100점을 받으면 엄마가 좋아하고 감격하는 것이다. 그런 암기를 조금 틀리면 90점, 80점을 받아 엄마는 실망한다. 예전에 이런 대표적인 암기가 ‘토마토 = 채소’다. 토마토는 과일일 거 같은데 시험문제에 토마토가 나오면 채소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일과 채소의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가 과일처럼 느끼는 토마토는 어떤 기준으로 채소라고 분류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좋은 교육인 거 같은데 그런 질문과 생각은 점수화하기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학교 시험은 ‘음악의 어머니 = 헨델, 음악의 아버지 = 바흐’과 같은 류의 암기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건 초등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일을 하면 단답형의 답만 생각하는 것보다 왜 그런지 어떤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방법으로 실행할 수는 없는지 더 다양하고 풍부한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은 습관처럼 몸에 익히는 거다. 요즘처럼 정보가 많고 좋은 지식들이 널려있는 세상에서는 그것들을 무작위로 외우고 도입하는 것보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더욱이 변화가 많고 급속도로 다양해지는 우리의 생활을 보면 ‘왜 그렇지?’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으면 잘못된 결론에 빠질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금년에는 부동산이 대폭락한다’는 예측을 한다. 이런 예측을 들으며 ‘금년 부동산 = 대폭락’과 같은 결과만 외우면 바보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그 근거는 무엇이고 그 사람의 논리가 과연 옳을까?에 대한 판단은 내가 해야 한다. 만약에 그 주장과 근거에 내가 확실하게 동의한다면 그 주장은 옳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주장의 판단과 근거에 내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거나 내가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 주장에 대해서는 ‘판단유보’를 하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하지만, 결론만 외우는 것은 바보다. 세상에는 전혀 다른 결론의 올바른 충고들이 많다. 예를 들어, ‘돌 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속담이 있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마케팅을 하는 사람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70%가 완성되면 일단 먼저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돌 다리를 두들겨 보고 건너려고 한다면 이미 시장에 후발 주자가 되어 선점의 효과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장점에 집중하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약점을 보완하라고 한다. 이것은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다. 예전에 내가 처음 결혼했을 때 어떤 선배가 나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처갓집과 화장실은 멀어야 한다.” 자신의 일을 매우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지만, 보수적이며 사회성도 그렇게 높지 않은 선배였다. 그때도 나는 그런 말을 내 생활에 적용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 선배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희 집에 화장실은 방안에 있는데요.”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충고를 잘 받아들이고 배워야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결론만 외우고 따라 하는 것은 잘 배우는 것이 아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것을 나의 상황에 적용시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더 잘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남과 다른 생각, 다른 사람들의 주위를 집중시킬 수 있는 멋진 아이디어도 만들 수 있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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