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이 많이 있겠지만 여행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이다. 그 여행이라는 것도 누구와 함께 하는 여행이냐가 중요하다. 거기다가 어디 좋은 곳으로 간다면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어느덧 살아온 무게도 제법 무거운 나이가 되었다. 그런 삶 가운데 몇 모임이 있다. 어떤 만남은 40여 년 넘는 것도 있고, 어떤 만남은 1년 남짓 된 모임도 있다. 그런 만남 가운데 감리사 동기 모임이 있다. 감리교회의 감리사 임기는 2년이다. 감리사 임기 동안 지방 행정을 이끌어가는 섬기는 자리이다. 그런 감리사를 함께 역임한 5가정 목사 부부가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우선은 참 좋다. 편하고 부담이 없고 나이가 많으면 형님 같고 형수님 같다. 근 10여 년 만난 지라, 서로를 다 잘 아는 사이라 우스갯소리도 스스럼없이 하는 관계라 참 좋다. 승합차 한 대에 동승을 하고 운전도 교대로 하면서 제법 먼 길이지만 다녀왔다.

행선지는 삼척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그곳이 고향인 목사님이 안내해주셨다. 맛집을 찾아 식사도 하였다. 바로 동해 바다라 너무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짧은 시간이지만 몇 군데를 돌아보았다. 그중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죽서루(竹西樓)이다. 처음에는 어떤 곳인지를 몰라 안내를 해주시는 목사님의 말씀을 그냥 흘러버렸다. 그러다가 죽서루에 도착하고 루(樓)에 올라가서야 ‘앗, 이런 곳이야’ 하고 자세하게 관찰하고 보았다. 루(樓)는 우리말로 정자이다. 죽서루는 강가에 세워진 정자인 샘이다. 입구에 준비된 안내 책자에 허목(許穆)(1595-1682)의 죽서루기(竹西樓記)를 보고서야 관심이 더 솔깃해졌다. 죽서루 곳곳에 걸려있는 오래되어 빗이 바란 한문으로 된 시(詩)판, 편액들. 허목의 죽서루기(竹西樓記) 현판을 보자 그의 단양산수기(丹陽山水記)가 떠올랐다. 죽서루는 고려 시대부터 내려온 관동팔경 중 제1경이다. 나는 고향이 단양이다. 단양팔경이 있는데, 미수 허목은 단양팔경을 다녀가고 단양산수기(丹陽山水記)를 남기기도 하였다.

허목의 죽서루기(竹西樓記) 일부이다. “관동지방에는 이름난 곳이 많다. 그중에 경치가 뛰어난 곳이 여덟 곳인데,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와 해산정, 수성(속초)의 영랑호, 양양의 낙산사, 명주(강릉)의 경포대, 척주(삼척)의 죽서루, 평해의 월송포이다. -중략- 죽서루의 경치는 동해와의 사이에 높은 산봉우리와 깎아지른 벼랑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두타산과 태백산이 우뚝 솟아 험준한데, 이내가 짙게 깔려 산봉우리가 아스라이 보인다. 큰 내가 동으로 흐르면서 꾸불꾸불 오십천(五十川)이 된다. 그 사이에는 울창한 숲도 있고 사람 사는 마을도 있다. 누각 아래에는 층층 바위의 벼랑이 천 길이나 되고 맑은 못과 긴 여울이 그 밑을 휘감아 돈다. 석양이면 푸른 물결이 반짝이며 바위 벼랑에 부딪혀 부서진다. 이곳의 빼어난 경치는 큰 바다의 볼거리와는 매우 다르다. 유람하는 자들도 이런 경치를 좋아해서 제일가는 명승지라 한 것이 아니겠는가.”(허목의 문집인 『기언』 제13권 중편에 실렸다.)
옛 선비들의 문집을 보면 그들은 유명한 명승지를 다녀가면 시(詩) 몇 수를 얻었다고 하거나 기(記)를 남겨 후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의 흔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오늘 우리들은 사진과 동영상을 남긴다. 그래서 여행은 남는 것이 사진밖에 없다고 많은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이런 여행의 묘미를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조선 시대의 감상법은 그림을 감상하면서 간접 여행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정조(1752~1800) 왕이다. 정조는 정무에 바빠 명승지를 갈 수 없기에 당시 김홍도(金弘道)(1745~1806년) 라는 화가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고 감상하는 것으로 위로를 받았다. 김홍도의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에 나오는 죽서루(竹西樓)도 그중 하나이다. 김홍도의 단양 사인암(舍人巖)그림도 그런 류의 그림이다. 정조 왕이 직접 눈으로 보고 감상하지 못한 죽서루에 올라 앉아, 굽이쳐가는 맑고 푸른 오십천(五十川) 강을 내려다보면서 이곳이 안축,송강 정철, 율곡 이이, 가정 이곡, 미수 허목 등의 선비들이 다녀간 곳이라고 하니 한층 더 애정이 간다.

그리고 역사는 흘러도, 사람은 죽어 갔어도 남는 것은 ‘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번뜩 죽서루를 다녀온 후 글을 하나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름 석 자 그리고 흔적이 될 만한 것 중 하나인 ‘글’이 아닐까? 율곡(栗谷) 이이(李珥)(1537~1584)의 ‘죽서루에서 시를 차운하다’라는 시(詩) 한 수가 죽서루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할 것 같다. “누가 하늘을 도와 이 아름다운 누각을 세웠는가/ 그 지나온 세월 얼마인지 알 수가 없구나/ 들판 저 멀리 산봉우리에는 감푸른 빛 서려 있고 / 모래사장 부근에는 차가운 물 고여있네 / 시인은 본래 남모르는 한이 많다지만 / 깨끗한 이곳에서 어찌 나그네의 근심을 일으켜야만 하리요 / 온갖 인연 모두 떨쳐버리고 긴 낚싯대 들고는 / 푸른 절벽 서쪽 물가에서 졸고 있는 갈매기와 놀아보리”(인터넷 기사 인용)

고병국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글쓰기를 좋아하는 목사입니다. 몇년간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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