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며 절대적인 행복

입력 2009-01-30 15:46 수정 2009-01-30 15:46
“우리 딸, 자 900원 가져!”

저녁에 집에 들어가며 주머니 속에 있던 동전을 모두 털어 아빠를 반기는 딸에게 줬다. 유니세프에 보낼 저금통 채우기를 하는 우리 딸은 입이 벌여지며 좋아 죽는다. ‘와, 아빠 최고’를 외치며 우리 딸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이었다. 역시 어린 아이들은 표정이 풍부하다. 싱글벙글, 온몸으로 기뻐한다. 뒤에 있던 아들을 보며 나는 지갑에서 10,000원짜리 지폐를 꺼냈다.

 

“우리 아들, 이건 할아버지가 주신 돈이야”

나는 아들에게 1만 원짜리 지폐를 줬다. 아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같이 저녁 식사를 했던 할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책 한 권 사라고 주신 돈을 건 냈다. 순간 우리 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표현이 풍부하고 직선적인 딸은 나를 보며 따졌다.

 

“왜 나는 900원이고, 오빠는 10,000원이나 주는데?”

“어. 저 돈은 아빠가 주는 게 아니고, 할아버지가 오빠한테 예전에 사주기로 한 책을 못 사주셨다고 주신 돈이야.”

나는 흥분한 우리 딸을 진정시키며 말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우리 딸은 그런 게 어디에 있냐며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딸은 울며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돈은 예전에 미리 주기로 하신 책을 대신 돈으로 주신 거라고, 그 돈으로 오빠는 필요한 책을 살거라 말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딸은 자기 오빠에게 대들며 돈을 빼앗으려고 했다. 집안은 아수라장이 됐다.

 

 

나는 사태를 진정시키고자 딸에게 오빠의 돈과 자신의 돈을 연결시켜서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오빠의 돈은 오빠의 돈이고, 너의 돈은 너의 돈이다. 하지만, 나의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만약, 네가 1,000원을 받고 오빠가 0원을 받는 거와 네가 3,000원을 받고 오빠가 5,000원을 받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너는 어떻게 할래?”

우리 딸은 바로 대답했다.

 

“난 그냥 1,000원 받을래!”

“1,000원 보다는 3,000원이 더 좋잖아. 3,000원 받아야지.”

“싫어 그럼 오빠가 5,000원 받는다며. 나는 오빠가 0원 받는 게 더 좋아.”

“네가 받는 돈을 생각해봐. 왜 1,000원을 받아, 3,000원 받아야지.”

“싫다니까. 난 1,000원만 받아도, 오빠가 0원 받는 게 더 좋아!”

 

 

그날 저녁 울며불며 슬퍼하던 우리 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리의 행복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는 상대적인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많이 가졌다가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많다는 것에 행복을 느끼며 우리는 산다. 내가 즐겁다가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즐겁다는 것에 행복을 느끼며 우리는 산다. 그것이 참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경제위기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최근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서만이 아니다. 지금이 상대적으로 그렇게 어렵다면, 몇 년 전에는 상황이 좋았어야 한다. 하지만, 몇 년 전에도 사람들은 항상 ‘먹고 살기 힘들다’고 했다. 지금이 아주 상황이 좋은 때라고 느끼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는 거 같다. 아마, 항상 상대적으로 ‘아주 잘 나가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살기 때문인 거 같다.

 

나는 가끔 옛날에 살았던 생각을 떠올려본다. 어렸을 적에 살았던 집과 동네 그리고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지금 그때보다 매우 잘 살고 있다. 이것은 나의 노력보다는 사회적인 발전에 따른 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 신에게 감사할 일이고 내가 행복을 느껴야 할 일이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상대적인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의 사람은 절대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상대적인 행복보다는 절대적인 행복이 나의 진정한 즐거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인간은 유치한 면이 많아서 항상 상대적인 행복을 본능적으로 느끼곤 한다. 성공하고 부자가 된 친구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과 비교하며 상대적인 불행을 느낀다. ‘그는 똑똑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으면 ‘그럼 성공하지 못한 나는 뭐지?’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우울해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좋아한다. 낙후된 동네를 사진으로 찍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글로 담는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따뜻한 인간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인간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감동이 아닌 ‘그렇게 어려운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들에 비하면 행복한 거야’ 라는 자기 위안을 찾는 경우도 많다. 상대적인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할 때도 많다. 그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인 거다.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행복보다는 절대적인 행복이 좀 더 성숙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거꾸로, 좀 더 성숙해진다면 행복을 좀 더 쉽게 느낄 수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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