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의 대가

입력 2008-09-04 17:24 수정 2008-09-04 17:24
“여러분의 일은 생각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적어도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이유가 여러분이 회사를 위해 ‘생각’을 하기 때문에 월급을 받고 있는 겁니다. 회사를 위해 머리를 쓰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일하지 않고 월급을 받는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입니다.”

 

 

지난 주, 한 회사에 강의를 갔다. 강의 주제는 ‘전략적 사고’에 관한 것이었는데, 회사의 직원들을 몇 개의 방에 나누고, 몇 명의 컨설턴트들이 동시에 같은 내용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컨설팅 회사에서 만든 표준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활용하여 강의를 진행했는데, 그 프레젠테이션 파일의 내용 중 한 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         복잡한 환경,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

많은 사람들은 생각을 회피하고, 돌연한 결론을 내림.

-         판단이 어렵고, 판단에는 위험부담이 따름.

위험을 회피하고 판단을 회피하는 것은 생각의 도덕적 해이임.

-         그 결과로 새로운 가치 창출이 없고, 생산성이 낮아짐.

인건비 비용만 증가하여, 기업의 존재기반이 붕괴됨.

 

내용 중에 나의 눈에 들어온 단어는 ‘돌연한 결론’과 ‘도덕적 해이’였다. 생각을 회피하며 돌연한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는 것과 그런 행동은 도덕적 해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회사 일을 생각 없이 하는 것을 능력에 관한 문제라고 보기보다, 그 사람의 도덕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왠지 과격한 표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이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부분을 수정하지 않고 그냥 사용했다.

 

 

돌연한 결론

복잡하고 생각하기 싫은 문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돌연한 결론을 내린다. 다른 말로 하면 대충 찍는 거다. 나도 다르지 않은 거 같다. 복잡하고 골치 아픈 문제가 있으면 대충 찍는다. 그리고 합리적인 이유를 붙인다. “어차피 그게 그거야, 복불복이야.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잖아”

 

복잡성이 증가하고 변화가 많은 사회에 살면서 우리는 생각을 회피하고 돌연한 결론을 내리곤 한다. 내가 돌연한 결론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사람은 초등학교 5학년 우리 아들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우리 아들은 공부를 못해서 엄마에게 자주 혼난다. 우리 아들은 시험을 보면 많은 문제를 틀린다. 그 녀석이 엄마한테 혼나는 이유는 문제를 많이 틀려서라기 보다, 문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생각하기가 귀찮아서 갑작스레 돌연한 결론을 내려 답을 정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른이나 애들이나 비슷비슷한 거 같다.

 

 

생각의 도덕적 해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관련하여 고민하고 열심히 생각하지 않는 것을 도덕적인 해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월급을 받으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도덕적인 해이가 있는 것이다. 생각의 도덕적 해이라는 말은 월급을 받는 대가로 일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가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일이란 무엇인가? 내가 돈을 받고 제공하는 것이 일인데, 나는 돈을 받는 대가로 무엇을 제공해야 하나? 사람들이 월급을 받으면서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한 가지가 아니다. 월급의 대가로 사람들은 복잡한 여러 가지를 제공한다. 물건을 옮기기도 하고, 웃으며 인사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가 할 일을 지시하기도 하고.

 

생각의 도덕적 해이라는 표현은 내가 돈을 받는 대가로 지불하는 것 중에 빠지지 않고, 빠지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생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전에는 내가 제공하는 것에서 생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별로 크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더 복잡해지고 더 다양해지며 변화가 빠른 요즘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돈을 받고 제공하는 것에서 생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그래서, 월급을 받으면서 회사 일에 대해 생각 없이 일하는 것은 능력의 문제라기 보다 도덕의 문제라고까지 지적하는 것이다.

 

 

돌연한 결론과 도덕적 해이, 한편으로 보면 삭막하면서도 한편으로 보면 재미있는 이 말을 우리 아들과 딸에게 해줘야겠다. 그냥 “돌연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도덕적인 해이에 속해”라고 단순하게 말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그것도 도덕적 해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이 말을 삭막하지 않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고민해봐야겠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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