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할 수 없는 인생

입력 2007-10-22 12:42 수정 2007-10-22 12:43
소설가와 판사 중 누가 더 훌륭한 사람일까?

나는 아주 바보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소설가가 더 훌륭한 사람일까? 아니면 판사가 더 훌륭한 사람일까? 소설가와 판사를 비교해보자. 소설가와 판사의 연봉을 생각해보면, 소설가는 가난한 사람들도 많지만 유명한 소설가들 중에는 꽤 많은 인세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판사는 유능한 판사나 무능한 판사 모두 일반 공무원과 같이 일정한 월급을 받는데 월급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한다. 사회적인 존경을 보면 판사는 꽤 높은 존경을 받는다. 소설가 역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사람은 존경뿐 아니라 많은 팬들에게 개인적인 인기를 얻는다. 객관적으로 보면 판사는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소설가는 자격증이 필요 없기 때문에 판사가 더 훌륭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소의 자격이 아닌, 최고의 판사와 최고의 소설가 중 누가 더 훌륭한가를 따져보면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거 같다.

 

 

판사와 소설가를 생각하다가 예전에 내가 박사과정 학생일 때의 일이 생각났다. 저녁 시간에 우리 연구실 사람들은 지도 교수님과 같이 어느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다른 연구실의 교수님께서 같은 식당에 오셨다가 우연히 우리와 마주쳤다. 당시 그 교수님은 늦은 나이에 결혼한지 얼마 안되셨던 분이어서 학생들은 인사로 결혼 축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늦은 나이에 어렵게 겨우 결혼했다고 농담 삼아 말씀하시면서 그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박사 학위를 받는 것과 결혼하는 것을 비교하면은 어떤 것이 더 힘들 거 같아요? 결혼이 더 힘들어요. 미리미리 결혼에 대해 준비해요. 결혼, 어려운 거야”

 

이미 박사 학위도 받았고, 결혼도 했던 교수님의 말씀이라 아직 박사 학위도 못 받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있었던 학생들은 모두 어쩔 수 없이 수긍하며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때, 학생들과 같이 계시던 우리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건 아니지. 박사 학위를 받는 사람들보다 결혼에 성공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걸 보면 박사보다는 결혼이 더 쉬운 거야.”

 

논리적이신 우리 지도 교수님의 한마디에 결혼이 더 힘들다고 말씀하시던 교수님은 “논리에서 밀리면 논쟁을 중단하고 같이 술자리를 여는 것이 전략이죠.” 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셨던 기억이 있다.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결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꼭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걸 비교하기 시작한 것부터가 결론 없는 출발을 한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유치한 면이 있다. 직업을 비교하고, 자신의 일과 다른 사람의 일을 비교하고, 내가 가진 것과 친구가 가진 것을 비교한다.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 눈치 보며 살아간다.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고,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졌다면 즐거워하다가도 자신보다 더 잘났다는 사람들이나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는 우울해하고 기분 나빠한다.

 

 

우리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유치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그 유치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비교하며 눈치 보며 산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아주 유치한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다.

 

말을 겨우 배운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음면 아주 어린 아이들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라고 물으면 아빠라도 대답하고,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으면 엄마라고 대답한다. 그러니까, 아빠를 먼저 물으면 아빠를 답하고, 엄마를 먼저 물으면 엄마를 답하는 거다.

 

그런, 아이들도 4살이 넘어가면서 눈치가 생기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7살쯤 되는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그건 비교할 수 없는 거에요” 라고 말하거나, 제법 눈치가 있고 말을 잘하는 아이들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에 “엄마, 아빠는 제가 좋아요? 아니면 제 동생이 더 좋아요?” 라고 벌써 상황을 반전시키는 질문을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들은 정말 어린 아이들만 못한 유치함을 갖고 있다.

 

 

우리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며 살아간다. 직업을 비교하고 수입을 비교하고 명예를 비교하며 어쩌면 서로서로 눈치 보며 살아간다. 객관적이라는 이름으로 비교하지만, 사실 비교할 수 없는 것을 객관적인 잣대로 본다는 것부터가 어리석은 짓이다. 가령, 이런 질문에 답해보자.

 

-         빨간색이 무거울까? 파란색이 무거울까?

-         3하고 7 중에 어떤 숫자의 길이가 더 기나?

-         한국과 미국 중 어떤 나라가 더 잘생겼나?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며 다른 사람들 눈치 보며 살지 말자.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평가하며 살아야 한다.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인 평가로 살자. 사실, 객관적인 평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객관이란 주관의 평균에 불과하다. 그 평균도 잘 계산된 평균이 아닌 아주 엉성한 평균에 불과하다. 때로는 평균이 아닌 인기 있는 누군가의 주관이 객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객관을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이 좋다. 객관적인 눈을 따르기보다는 나의 주관적인 평가를 따라 사는 것이 더 현명한 삶이다. (그것이 나에게 더 많은 것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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