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힘

입력 2007-10-01 12:49 수정 2007-10-01 12:49
공자왈 맹자왈 글 공부만 하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가족의 생계는 신경 쓰지 않고 높은 이상을 갖고 진리를 깨닫기 위한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의 부인은 마음 고생을 하며 생계를 위해 일했지만, 선비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선비의 친구가 멀리서 선비를 찾아왔다. 부인은 선비와 친구를 위해 술상을 준비한다. 친구가 가고 선비는 집에 쌀도 떨어졌는데 부인이 어떻게 술상을 마련했을까 궁금해졌다. 부인이 머리에 수건을 두른 것이 선비의 눈에 들어왔다. 부인에게 다가가 부인의 머리를 두른 수건을 벗기며 선비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인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돈을 마련하여 술상을 차렸던 것이다. 선비는 큰 깨달음을 얻고 그날 이후로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했다. 글 공부를 중단하지는 않았지만, 선비는 글 공부보다 가족의 생계를 먼저 챙기기 시작했다.

 

 

투자의 정석을 지키는 실력 있는 펀드 매니저들에게 돈을 맡겨서 결과적으로 큰 돈을 번  <한국의 펀드 부자들>이란 책을 읽었다. 이 책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전설의 고향 같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전형적인 이 이야기가 생각났다. 좋은 기업에 장기 투자하여 높은 수익을 올리는 펀드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펀드와는 전혀 상관없는 선비의 이야기가 생각난 것이다. 이렇게 전혀 상관없는 두 이야기가 동시에 생각난 것은 펀드와 선비의 부인이 알고 있는 시간의 힘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의 힘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는 그것에 맞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바로바로 빨리빨리 원하는 것을 갖고 싶어한다.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 더 큰 수익을 만들어 내고, 일을 되게 만들고, 설익은 것을 숙성시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그들은 외면한다.

 

 

앞에서 본 선비의 이야기를 한번 생각해보자. 선비의 부인은 가족의 생계를 외면한 채 글공부만 하는 선비의 행동에 아마 울화통이 터졌을 거다. 그 부인은 선비에게 “당신의 글 공부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당장 저녁에 먹을 쌀이 없다고요!”라며 고함을 지르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100번을 말해도 그건 선비에게 단지 지나가는 바람소리에 불과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명한 그녀는 자신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건 선비에게는 잔소리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녀는 선비 자신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내가 글 공부보다 더 먼저 할 일이 있구나’하는 사실을 직접 깨닫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래서 선비의 부인은 즉각적인 대응을 하기보다는 시간의 힘을 이용하며 선비에게 결정적인 깨달음을 줬던 거다.

 

“집에 쌀이 떨어졌어요.”

“당신도 쌀을 사기 위해 일을 해야 해요.”

“우리처럼 하루에 2끼를 먹는 집은 드물다고요.”

선비의 부인이 이렇게 선비에게 쏘아대기만 했다면 아마 선비는 부인의 말에 대한 내성이 생겨서 오히려 부인의 말과는 달리 선비는 “인간이 하루 3끼 끼니만을 채우기 위해 살면 개, 돼지와 뭐가 다른가?”하는 식의 말만 되풀이 했을 거다. 중요한 건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선비의 부인은 알고 있었다.

 

 

앞 이야기의 선비와 그 부인과 같은 경우를 우리가 가지는 많은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족의 생계를 외면한 채 자신의 글 공부만 하는 선비의 모습에 내가 무엇인가 설득시켜야 할 사람을 넣고, 자신을 선비의 부인 입장에 넣어보자. 그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선비의 부인처럼 시간의 힘을 생각해야 한다. 즉각적으로 빨리빨리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상대를 변화시킬 것을 준비하며 시간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 거다.

 

예를 들어, 놀기만 하는 아들과 아들을 공부시키고 싶은 엄마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아들에게 공부시키기 위해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서 선비의 부인이 선비에게 시간을 갖고 대한 것처럼 엄마는 시간의 힘을 생각해야 한다. 가령, 엄마가 아들에게 즉각적으로 “공부 좀 해 임마!”라고 소리쳤다면 그것은 오히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들에게 엄마의 잔소리 저항력만 키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솔직히 “공부 좀 해!” 이런 잔소리를 들으면 공부를 하려고 하던 사람도 공부를 하지 않게 된다. 자신이 공부하지 않는 아들이라고 생각해보라. 공부하려고 책을 폈는데 엄마가 “공부 좀 해!”라고 소리쳤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폈던 책을 탁 덮고 공부를 하지 않을 거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상황에 따라 다를 거다. 방법도 가지가지고 누구에게 효과가 있었던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 원칙은 상대가 깨닫고 느껴야 한다는 거다. 엄마의 잔소리가 아니라, 아들이 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신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 느껴야 한다. 그런 다음이라면 엄마는 아들에게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이 다르고 실천하기는 더 어려운 문제지만 기본적인 사실은 분명하다. 시간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나 자신의 관계도 선비와 부인의 관계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을 때가 있다. 무엇인가 나에게 행동의 변화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때도 시간의 힘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하루 아침에 무엇인가를 얻겠다는 생각보다는 나에게도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 시간의 힘을 활용하는 것은 시간을 끌며 뒤로 미루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무엇이 쌓이면 에너지가 응집하여 어느 순간 폭발적인 힘을 낼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복리의 원리처럼 말이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259명 36%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455명 64%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