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입력 2004-06-25 10:18 수정 2004-06-25 10:18







이 그림(목판화 4개를 겹쳐 찍은 작품)은 에셔(M. C. Escher)의 껍질이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사과 껍질을 무심코 그냥 던져 놓은 것 같은데, 한 여인의 모습을 매우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 속의 여인은 에셔의 부인이다. 특별히 에셔의 부인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에셔 부부의 사진을 보면 그림 속의 여인을 누구나 에셔 부인이라고 생각할 거다. 느낌이 너무 비슷하다.





한 그림에 남자와 여자가 같이 등장하면 둘은 매우 사랑하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한 그림에 남자나 여자가 혼자서 등장하면 왠지 모르는 외로움이 느껴진다. 더욱이 자신의 감정상태에 따라서는 자신이 그리워하고 사랑하며 만나고 싶지만 쉽게 만나지 못하고 있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에 그리운 사람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그 사람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자리를 만드는 거다. 그래서 사랑이 떠나버린 사람의 마음 속에는 빈 자리가 남는다. 빈 자리는 사람을 허전하게 만든다. 비어있는 자리를 볼 때마다 우리는 외로움과 그리움에 빠지며 자리의 주인에게 달려만 가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현실이 술 취함과 긴 잠으로 이어지게 한다.



여자를 그리워하는 남자는 자기 마음 속에 아직도 여자의 빈 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만약 남자가 그리워하는 것과는 다르게 여자가 남자를 잊었다면, 여자 마음 속의 남자 자리는 이미 다른 것으로 채워진 거다. 그래서 외로움과 그리움의 늪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만들어진 그 빈자리에 무엇이라도 채워야 한다. 꼭 다른 남자와 다른 여자로 빈 자리를 채우지는 않더라도, 사람들은 무엇으로라도 빈 자리를 채운다. 가령, 실연당한 사람이 무섭게 일에 몰두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자리를 채운다는 것은 경쟁으로 볼 수 있다. 경쟁이란 자리를 빼앗는 거다. 그런 면에서 경쟁이란 대체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미숙이가 나를 만나지 않고 봉팔이를 만난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봉팔이에게 대체 당한 거다. 또는 미숙이가 나를 만나지 않는 이유가 아직은 없지만, 더 멋진 남자를 만나고 싶어서라고 생각해보자. 이 경우 역시 나는 보이지 않는 남자에 대체 당한 거다. 나는 봉팔이와 모르는 남자와 경쟁한 거다.



대체 당할 때에는 사람한테만 대체 당하는 건 아니다. 가령, 미숙이는 봉팔이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봉팔이는 내가 없는 다이아반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미숙이가 봉팔이와 만나고 나를 만나지 않는다. 그럼, 나는 다이아반지에 대체 당한 거다. 또는 미숙이가 나를 사랑하지만, 나와의 결혼 생활보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해보자. 그럼, 나는 미국 유학에 대체 당한 거다. 이 경우 나는 다이아몬드와 미국 유학과 경쟁한 거다.





남녀의 문제는 해석에 따라 비즈니스에 바로 적용된다. 경쟁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보면 비즈니스의 새로운 경쟁을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경쟁을 대체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경쟁력을 키운다는 건 대체 당하지 않는 거다.

예를 들어, 어떤 악덕 고용주가 종업원을 함부로 대하고, 어떤 나쁜 편의점 주인이 아르바이트생을 착취한다고 해보자. 왜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건 종업원들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이 쉽게 대체 당하기 때문이다.

만약, 종업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이 항의하면 악덕 고용주나 나쁜 편의점 주인은 아마도 이렇게 이야기 할거다.



쉽게 대체 당한다는 건 그만큼 경쟁력이 없는 거다.



예전에는 힘이 센 사람이 경쟁력이 있었다. 하지만, 기계가 그들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경쟁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계에 대체 당한 거다. 또, 열심히 일하고 성실한 사람이 인정 받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기계에 대체 당하고 말았다.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24시간 돌아가는 기계를 이길 수는 없다. 최근까지는 지식이 많고 잘 외우는 사람이 인정 받았다. 하지만, 기계가 똑똑해지고 컴퓨터가 많아지면서 잘 외우는 사람 역시 대체 당하고 있다. 경쟁력이 있다는 건 쉽게 대체 당하지 않는 거다.



명품이 비싼 이유는 경쟁력이 있어서다. 다시 말하면 대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값어치 나가는 명품은 태어날 때부터 대체 당하지 않게 태어난다. 가령, 세계적으로 딱 10대만 한정으로 만든 최고급 자동차는 고급 자동차의 기본 가치에 희귀성이 붙어서 더 높은 가격이 붙을 거다. 마치 대체할 수 없는 골동품들이 그렇게 비싼 것처럼 말이다.





남녀간의 문제로 고민하고 외로움에 빠지는 친구들을 보면, 남녀간의 사랑도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리고 대체 당하지 말고 먼저 대체하라고 충고한다. 마치 비즈니스에서처럼 말이다.



그런데, 묘하게 비즈니스와 사랑은 같은 면이 많으면서도 아주 결정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 대체 당하지 말고, 이미 빈 자리는 빨리 다른 무엇으로라도 채우라고 충고하지만, 친구들은 이렇게 말한다. 채워지지 않는 빈 자리를 갖고 사는 것도 자기 인생의 재미라고 말이다. 굳이 이기는 게임을 할 필요가 있겠냐며 말이다.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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