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

입력 2004-06-18 12:24 수정 2004-06-18 12:24







이 그림(석판화)은 상대성이라는 에셔(M. C. Escher)의 작품이다. 이 그림 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위치의 사람들과 방향성을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이 내려오는 길은 다른 사람의 벽이 되고 있다. 누구를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위아래와 앞뒤가 달라진다. 그러면서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어느 길로 가더라도 모든 계단이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면 생각나는 단편 드라마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여자 1과 여자 2 그리고 남자 2가 어떤 레스토랑에서 만나서 같이 식사를 하고 있다. 그날은 여자 1의 남편인 남자 1이 죽은 후 1년이 되는 날이다. 여자 2의 남편인 남자 2는 남자 1과 둘도 없는 친구였다. 드라마의 내용은 어느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테이블에서 여자 1과 여자 2가 서로 다른 회상을 하면서 전개된다. 두 여자는 같은 사건을 같이 겪었으면서도 서로 다른 기억을 하고 있다.



여자 1이 생각하는 여자 2는 형편없는 여자다. 가난한 집 딸에, 배운 것도 적고, 능력도 없는 그런 여자다. 그런 별볼일 없는 여자 2와 능력 있는 의사인 남자 2가 결혼한 것은 전적으로 자기 때문이라고 여자 1은 생각한다. 자신이 남자 1과 결혼하니까, 자기를 좋아했던 남자 2는 홧김에 여자 2와 결혼했다는 거다. 그 증거로 남자 2가 자신의 결혼을 매우 좋지 않게 생각했으며, 자신의 결혼식장에서도 술에 취해 결혼을 무효로 해야 한다고 떠들었던 장면을 기억한다.

여자 2가 생각하는 여자 1은 허영심 많은 부잣집 딸에, 자기 남편이 사고로 죽으니까 남의 남편을 넘보는 그런 파렴치한 여자다. 여자 2가 생각하는 여자 1은 정말 뻔뻔하다. 어떻게 자기 남편이 죽었다고 남편의 친구를 꼬시려고 한단 말인가?



이 드라마의 객관적인 진실은 남자 2가 회상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사실, 남자 1과 남자 2는 동성연애자였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만, 남자 1은 사회에 타협하며 살려고 했고 부잣집 딸인 여자 1과 결혼했던 거다. 남자 2는 남자 1과 헤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그들의 결혼을 말렸다. 남자 2가 결혼식장에서 추태를 부렸던 것은 여자 1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남자 1 때문이었던 거다. 그리고, 남자 2 역시 홧김에 여자 2와 결혼했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등장인물들이 같은 사건을 겪고도 서로 다른 기억을 하는 것을 보곤 한다.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나고 같이 데이트를 하지만, 남자가 기억하는 것과 여자가 기억하는 것이 다르다. 그것은 꼭 영화 속에서 만의 일은 아니다.

우리의 기억은 객관적인 사실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을 자신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기억하는 거다. 그리고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버리고 싶은 것은 버린다.



우리의 삶도 어떤 면에서는 이 그림 같다. 이 하나의 그림 속에는 등장하는 사람들의 수만큼의 세계가 존재한다. 누구의 위치에서 보느냐에 따라 위아래가 결정되고 앞뒤가 결정되고 있다. 마치, 우리가 모두 자신만의 세계를 생각하며 살듯이 말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만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객관이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주관적인 생각들의 다수결 정도가 객관인 거 같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세상을 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세상을 봐야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누구도 혼자만의 힘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민감하게 자신과 비교한다. 그러면서 현대인들은 주관적인 것보다는 상대적인 것에 더욱 더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너무나 상대적이 되었다. 남의 실패에 은근히 즐거워하며, 남의 성공에 보이지 않는 슬픔에 빠진다. 마치 제로섬 게임(zero sum game)을 하듯 다른 사람의 슬픔이 나에게 기쁨이 되고 있다.

나 역시 너무나 자주 상대적인 슬픔에 빠진다. 나는 하루도 굶어본 적이 없고, 부모님처럼 돈을 못 내서 학교에서 쫓겨난 적도 없다. 하지만,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명품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한없는 슬픔이 몰려온다. 나이를 하나 둘씩 더 먹으면서 그런 상대적인 절망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남들은 자기 인생을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는 나이만 먹으면서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이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은 같다



상대성이라는 에셔 작품의 윗부분을 다시 자세히 보자.










이 그림 속의 두 사람은 같은 계단으로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올라가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내려가고 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매우 재미있고 유쾌한 생각의 자극을 받았다. 두 사람이 같은 계단으로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데, 한 사람은 올라가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 그림을 보면 삶의 불확실성이 인생의 재미와 괴로움을 동시에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림은 분명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같은 방향이고 같은 계단을 사용한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당신이 지금 올라가는 길이 내려가는 길일 수도 있고, 지금 내려가는 길이 올라가는 길일 수도 있다. 당신이 어두운 터널에 빠져서 그 터널을 빠져 나오려고 열심히 걷다가 저 멀리 불빛을 발견했다고 생각해보자. 그 불빛은 밖으로 나가는 터널의 입구일 수도 있고, 당신을 향해 달려오는 기관차일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은 내려가는 길일까? 올라가는 길일까?




창의력 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 PSI 컨설팅, 이언그룹(eongroup), 클릭컨설팅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창의성과 관련된 글을 쓰며,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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