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딸 (왜 살고 있지?)-1-

입력 2011-05-25 12:00 수정 2011-05-22 13:02
<아버지 제가 어린애는 아니지 않습니까! 제 일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좀 가만히 내버려 두시라고요>



아버지는 “야, 이놈 봐라. 변했구나.”

하고 아주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딸 다영은 상해의 회사에서 유능한 직원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스트레스에 엄청 시달리고 있었다.

 

실적과 회사의 형편 사이에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또 문득문득 급습해 오는 외로움, 고독에 몸부림쳤다.  
<내가 왜 이럴까?>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할 만큼 변해 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외동딸 다영에게 어려서부터 「공부 잘 하는 모범생」이 되라는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아버지의 입 버릇은 딸에게는 강박관념으로 자리잡아 갔지만 둘 다 모른 채 세월이 흘러갔다.

다영은 잘 커주었다.

외고를 나와 명문대 무역학과를 졸업, 대기업에 취직했다.


중국어, 영어, 무역의 특기로 인해 상해지사로 발령이 났다.

아버지는 “결혼부터 하고 나가라”고 강요 했지만 다영은 <기회> 라며 서둘러 나오고 말았다.


그런 뒤 1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로 <잘 있다. 건강하다.>는 전화 통화만 있었다.

혼자 있는 딸을 생각하면 항상 불안했던 아버지가 드디어 상해로 왔다.

반가운 해후의 시간은 잠시였다.

아버지는 다영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간파했다.

다영의 얼굴이 수척했고 어딘지 모르게 근심이 있어 보였다.

다영은 <야근이 많고 바빠서 그렇다> 며 <어디 아픈데도 없고 돈도 잘 벌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했다.

결국 아버지는 딸로부터<어린애 아니라>는 타박을 맞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되겠다. 한국으로 데려가야지.” 하면서 귀국했지만 <알아서 하겠다>는 딸을 소 끌고 가듯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6개월이나 1년쯤에 한번씩 나오는 딸은 더 이상 나아지거나 나빠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그러려니 하면서도 결혼얘기 만큼은 성화를 부려댔다.

<아버지가 돈 많은 재벌이었으면 전 벌써 시집가고도 남았을 겁니다. 결혼은 혼자 합니까? 그렇다고 아무하고나 살아요?>

이런 얘기가 목구멍까지 올라 왔지만 참았다.

연봉 5천 만원이 넘는 상해생활은 어쩌면 돈의 노예일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탈출은 엄두도,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 신체검사 하러 가서 2가지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하나는 우울증, 또 하나는 자궁근종.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오히려 더 나빠져 갔다.

식사를 거르기도 하면서 불규칙한 생활이 거듭됐다.

결국 2차례나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회사에서도 다영의 일을 알게 됐다. 회사는「어떻게 해서 건강한 생활을 하게 하느냐」 가 고민거리로 떠 올랐다.

지사장은 교회에 강제로 데리고 나갔다.

날마다 직원과 어울리도록 배려도 했다.

획기적 이진 않았지만 조금은 나아지는 듯 했다.

저녁 야근은 물론이고 일상 업무도 줄여줬다.


지사장은 자신의 책임이 크다고 느꼈다.

지나치게 실적에 매달려 온데 대한 자괴감도 있었다.

퇴근 후 회식자리도 만들었다.

2차로 노래방도 갔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아주 서서히 변화를 일으켰다.

나도, 너도, 다같이 좋은 일상으로의 변모는 그렇게 진행 돼 갔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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