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광장의 결투

입력 2011-05-18 12:00 수정 2011-05-18 12:00
<사랑의 광장, 허그의 광장, 키스의 광장이 어딘지 알아?>


“동방명주?”
“정대광장 근처?”


<아니>


"그럼 인민광장?"

<오! 정답!>

“야, 오늘 날씨도 좋은데 그 광장에 놀러가자!”


<오우 케이>


의기 투합한 한국 학생 3명, 지하철을 탔다.

 

박군은 인민광장에서 키스하는 중국 대학생, 껴안고 있는 젊은이들을 여러 차례 봐 왔으므로 사랑,허그,키스란 표현들을 쓴 것이다.

 

그곳은 상해의 중심으로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 상해인민의 심장이라거나 자부심 그 자체라 할 만한 곳이기도 하다.

광장엔 인파로 들 끓었다.

셋은 스며들 듯 그들 속으로 흡수 됐다.


“야,야, 저기 봐, 아니 저기도, 우와 많다 많아.”

여기 저기서 껴안거나 키스중인 젊은이들을 본 셋은 한국말로 떠들어댄다.

“난리 났군, 난리 났어”

“야, 이거, 오늘 저녁 여기서 인민광장동이 애 태어나는 것 아냐?”

<야, 이놈들, 신경꺼라>

 

희희덕 거리며 한바퀴 도는데 심상치 않은 장면이 목격된다.

말다툼 하던 젊은이 한 쌍, 심각하다.

목소리가 점점 높아 진다.

남학생이 여학생 손목을 잡아 끈다.

 

힘이 달리는 듯, 여학생 질질 끌려간다.

구석으로 끌고 간 남학생, 손찌검이라도 할 태세다.

못 본채 그냥 가자는 친구들을 두고 박군이 그들에게 다가간다.

박군은 공부는 게을러 중국문자에는 약해도 말은 마치 중국사람, 상해사람처럼 잘 하는 편이다.

<어이, 그 손 놓고 신사적으로 말로 하지>

말다툼의 대상이 바뀌고 싸움으로 번졌다.

박군과 중국학생 3명.
1:3의 대결이 된 것은 박군의 친구들이 거들고 나서지 않은 때문이다.


<절대로 너희들은 나서지 마라. 혼자서도 자신 있다. 여기는 중국 땅이니 혹시 잘 못 되면, 패싸움으로 비칠 것이고 너희들 까지 피해 입는다.>


박군은 원래 싸움꾼이었다.

아버지가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이어서 아들을 태권소년으로 키웠고 아버지의 길을 따르게 하고 싶었지만 중,고등학교시절 싸움질만 하고 다녀 부자의 연을 끊을 뻔 한 적도 있었다.


싸움은 순식간에 아주 싱겁게 끝났다.

박군이 중국 학생들을 간단히 제압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공안(경찰관)이 나타나 싸움했던 그들 4명을 공안국(경찰서)으로 연행해 갔다.

 

박군은 1:3의 싸움이고 먼저 주먹질을 한 쪽도 중국 학생이었으므로 정당방위 차원임을 내세웠다.

그러나 여기는 중국 땅.

공산당이라는 힘이 작용하는 세상이었다.

입장이 묘하게 꼬여 가는데 앞에 싱긋이 웃으며 서있는 여학생이 눈에 들어온다.

끌려가던 바로 그 여학생이다.

자세히 본다.

미인은 아니다.

얼굴이 작고 오목조목한데 콧날이 오뚝하다.

귀엽다.

“철커덕”

<어어 이게 뭐야.>

박군 손에 수갑이 채워진다.

싸운 중국학생의 아버지 중에 공안이 있어서 일단 잡아 넣고 본 것이다.

 

“한눈 팔지 말고 공부나 잘해”

한눈 팔지 말고의 뜻은 싸우지 말고의 뜻이다.

아버지는 항상 박군을 걱정했다.

“싸움의 뒤끝은 항상 불안하고 아픔이 따르는 법이다.

행복은 아프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명심해라.”

 

 

<아! 아버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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