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합리, 캡그라스 증후군, 감정

입력 2013-03-08 11:17 수정 2013-03-08 11:37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한다면, 그리 틀린 말은 아지만, 그렇다고 정확한 말도 아닙니다. 인간의 행동은 늘 이성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즘 북한의 핵위협을 보면 꼭 그렇습니다.

만일 인간이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면 남한과 북한, 그리고 주변국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특히 수도권에 재산이 많은 사람들 말입니다.
 
일단 배경부터 시작하죠. 남한과 북한은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없습니다. 이는 1950년 3년간의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통해 드러난 사실입니다. 한때 양쪽 모두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둘다 틀렸습니다. 3년이란 전쟁기간이 말해줍니다. 그래도 양측은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맺은게 평화협정이 아니고 정전협정입니다.

그리고 50년이 지났습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하고 핵실험도 했습니다. 남한과 그 주변국은 북한 제재하겠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정전협정 파기하겠다고 합니다. 액면으로는 1953년 전쟁상황으로 돌아가겠다는 겁니다. 당장 총과 대포를 쏜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지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겁니다.

그래도 수도권일대에 전쟁의 공포는 전혀 감지할 수 없습니다. 코스피지수는 2,000선을 지키고 있습니다. 피난준비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경기북부에 땅 사놓은 사람들이 팔려고 아우성친다는 말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고속도로까지 뚫어 놓았습니다. 요즘 무기가 발달해 부산까지 피난가도 소용없다는 체념때문이 아닙니다. 아니면, 북한의 존재감 자체를 무시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가난하니까 무기도 별볼일 없을 것이다.

과연 그런가? 조선일보가 보도한 "북이 서울에 수퍼EMP탄 터뜨리면"이란 기사(링크)를 보면, 한국인들은 지금 바짝 공포에 떨고 있어야 합니다. 북한이 보유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기를 EMP탄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이를 동해 상공 40-60km에서 터뜨리면, 한반지 전역의 전자장비탑재 무기가 무력화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무기는 대부분 전자장비를 탑재하고 있지요. 무기뿐인가요, 주요 전기 통신 교통 등 모든 기간시설이 전자장비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즉, 북이 직접 남한을 공격하지 않고도, 남한의 국방과 경제를 상당부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자, 여기까지 보면 한국인들에게 이성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당장 문 바깥에서 강도가 총들고 위협하는데, 집안에서는 만사태평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이성적이지는 않지만,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가장 발달한 능력이 의도파악입니다. 인간은 몸집에 비해 상당히 커다란 두뇌를 갖게 된 것 역시 복잡한 사회를 이루고 살며 여러 사람의 의도를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머리 크다는 건 매력이지, 놀림감이 아니랍니다. 외모같고 장난치는 방송인들 반성하세요.)

실질적인 무력을 갖고 있는 북한의 협박에 대해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한국인들의 행동은 바로 의도파악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전쟁위협은 정말로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 좀 따돌리지 말고, 이제 좀 끼워줄래, 응? 다만, 내 자존심만 구기지 말아줘"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위협이 현실적이지 않은데, 그 위협에 과도하게 반응할 때의 비용 상당합니다. 즉, 지금 한국인이 무사태평인 이유는 그 비용을 감내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선택을 하도록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저것 이성적으로 따진 결과는 아닙니다. 느낌에 있습니다. 북한의 위협에 대해 일반적으로 드는 느낌 말입니다. 그 느낌은 공포가 아닙니다. 짜증정도가 맞습니다.

인간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핵심요소가 감정입니다. 우리는 어떤 감정이 드냐에 따라 그 사건의 진실성을 판단하고, 대응합니다. 위협이 있을 때, 그에 대해 공포감이 드는가, 아닌가에 따라 그 위협의 강도 혹은 진정성을 판단합니다. 의식적으로 따지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은 인간의 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모든 요소를 고려하는 복합적인 작용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이런 역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캡그라스 증후군입니다. 캡그라스 증후군 환자는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을 모두 사기꾼으로 여깁니다. 어머니를 보고, 어떤 사기꾼이 정교하게 위장했다고 여깁니다. 어머니에게, 내 어머니를 어떻게 했냐고 따지고, 심지어 공격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프로이드와 그 후예들은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망이 억눌렸다 폭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틀린 설명입니다. 캡그라스 증후군 환자들은 강아지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을 보이거든요. 가짜 개가 진짜 행세를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프로이드식 설명대로라면, 강아지에 대한 성적 욕망이 분출됐다고 할 수 있겠죠. (캡그라스 증후군을 잘 설명한 TED강연)

캡그라스 증후군의 원인은 뇌에 있습니다. 뇌의 신경 연결망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인식하는 방추이랑(Fusiform gyrus)이라는 뇌의 부분이 있습니다. 정상적이면 이 부분이 편도체(환경을 감지해 적절한 감정을 느끼도록 함)와 연결돼 있습니다. 얼굴을 인식하고, 이 정보가 편도체로 연결돼, 그 얼굴에 걸맞는 감정을 느낍니다. 그런데, 캡그라스 증후군 환자는 이 연결이 끊어져 있습니다. 즉, 얼굴은 정상적으로 인식하지만, 그 얼굴에 걸맞는 감정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요. 이런 상태에서 어머니를 보았을 때, 어머지의 얼굴인데, 어머니에게서 느껴야할 감정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누군가(사기꾼 혹은 외계인)가 어머니의 탈을 쓰고 어머니인 척한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인간에게 감정이 진실성을 판단하는데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진실성이 있기에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면, 감정의 잔상을 감정의 전부로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다시 북한문제로 와서, 북한의 위협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 남한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신경질환(편도체 손상)에 걸린 것일까요? 물론 그럴 가능성이 0.00000000000000001%도 없다고는 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한 사람들의 뇌가 정상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북한이 현실적으로 타격을 가할 만한 무기를 갖고 있고, 그 무기를 사용할 상황을 만들겠다는 위협에 반응하지 않는 것은 그 의도가 공격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 판단의 근거는 공포반응의 부재입니다. 정말로 실질적인 위협이라면, 공포감이 들어야 하는데, 짜증만 납니다. 그러니까, "저것은 실질적인 위협이 아니다"라고 여기는 것이지요. 실제로 북한의 EMP탄 기사를 쓴 그 기자도 뭐 그리 심한 공포감에 쌓여 기사를 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론: 우리는 지금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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