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을 저주로 만들 때

입력 2013-02-19 11:44 수정 2013-02-19 11:49
언젠가 지하철에서 욕본적이 있습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지하철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데, 승차한 입구와 하차할 입구가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열차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서 왔습니다. 승차하자 마자 반대편 입구로 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습니다. 제 앞에 있던 사람이 거칠게 막았습니다. 지나가자고 하니까, 왜 끼어드냐고 짜증스럽게 말합니다. 그런데 왜 짜증내냐고 했더니, 얼굴이 벌개지면서 "이런 건방진 놈"하면서 화를 냅니다.

자 이 상황에서 제게 화를 낸 사람의 나이는 얼마쯤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니요? 저보다 연배가 10년쯤은 많은 사람같지요. "감히 젊은 놈이 나이 든 사람에게 어디서 훈계야" 이런 분위기니까요. 그런데, 그 사람은 30대 중반정도 돼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는 당황스러워, "그만둡시다"라고 말았는데, 내리고 나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0대 중반인 사람이 저를 그렇게 어린 사람 취급했다는 이야기는 제가 최소한 30대초반 내지 20대 후반으로 보였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리 좋아할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만 젊어보이는게 아니라, 그 사람 역시 똑같이 젊어 보였을수도 있느니까요. 즉, 그사람도 40대였는데, 30대처럼 보인것이고, 저도 40대인데 30대처럼 보인것일수 있습니다. 제가 20년 젊게 보인게 아니란 겁니다. 아쉽지만, 전자보다는 후자의 해석이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요즘은 나이를 외모보다 10년쯤 더 잡아야 대충 그 사람의 실제 나이와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50대와 60대가 그렇습니다. 60대인 분 중에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고령인구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이를 "노령화"라고 하지만, 잘못된 명칭입니다. 노령화라는 단어에는 "약해진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중년화가 더 적절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60대가 40대처럼 펄펄 날 수 있는 시대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노령화가 틀린 표현도 아닙니다. 60대에게 몸은 40-50대같지만, 제도는 70-80대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국민연금이 "다단계"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국민연금 성격이 젊은세대가 기금을 마련하고, 노년세대가 쓰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는데, 이는 전적으로 젊은이가 노인보다 수가 많다는 것을 전제로 한 제도입니다. 그 수가 비슷해지거나 역전되면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인구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해결이 어려워보입니다. 하지만,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한데 있습니다. 60대를 노인이 아닌 중년 취급하면 됩니다.

말은 쉽지만 실행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변화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중요한 심리적 특성이 일관성의 유지입니다. 일관성의 유지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행동을 예측할 수 있어야 사회적 상호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일관성을 잃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배척당하는 등 가혹한 대접을 받습니다.

일관성유지의 심리를 이용한 설득전략도 있습니다. 발걸치기(foot in the door)라고 해서, 처음에는 사소한 행동을 요구해서 들어주면(예: 시운전, 리본 달기 등), 나중에 본격적인 요구(예: 구매, 기부)를 할 경우 응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널리 알려진 페싱어의 인지부조화 현상이 바로 일관성 유지의 심리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관성 유지 성향은 개인차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조직과 사회차원에서도 나타납니다. 조직이나 사회차원에서는 오히려 더 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바깥에서 보기엔 바꾸는게 간단해 보여도, 막상 그 안에서는 바꾸는게 쉽지 않은 까닭입니다. 미국 사회에서 총기규제강화를 쉽게 하지 못하는 것도 사회차원에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인구 고령화는 국가의 심각한 위기입니다. 그 잘 나가던 일본이 휘청하는 이유도 고령화에 있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일본은 세계 최고의 자리에나 올라가보고 휘청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저 중턱에서 정상만 잠깐 보고 휘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사람들이 한국사람보다 모자라 저렇게 휘청이겠습니까? 변화해야 할 때 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갈등은 위기의 전조에 불과합니다.

다행인 점은 인구의 고령화가 노인화는 아니란데 있습니다. 60대는 일할 능력도 있고 의욕도 있습니다. 이들이 일할 수 있게만 해주면 됩니다.

사람들의 나이들어서도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축복을 저주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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