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자코메티에게 죽음은 실제였다. 그의 친구이자 이웃인 포토칭의 시신을 본 후 죽음은 그를 지속적으로 사로잡는 ‘공포’가 되었다. 그 후 포토칭의 시신이 그를 항상 둘러싸고 있다는 환영에 시달렸다. 그는 자주 이전과는 다른 꿈을 꾸었다. 머리 하나가 홀로 공중에서 유영하더니 멈추었다. 자코메티는 그 머리에 시선을 고정하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매번 이 꿈을 꿀 때마다 식은 땀이 그의 등줄기를 따라 흘러 내렸다. 그가 목격한 것은 인간의 머리가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물건과 같았다. 이 꿈은 자신의 예술을 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영역을 탐험하는 자코메티의 몸부림이다.

그는 이전에 가본 적인 없는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내디뎠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터부의 공간으로 삶과 죽음이 구별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런 구별이 무의미하다. 자코메티는 193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비극을 경험한 후,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았다. 자신이 보고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은 실제가 아니었다. 그가 아침에 화장실에서 본 수건은 중력을 무시한 채 침묵 속에서 홀로 떠있다. 자코메티가 1947년에 완성한 <코>, <막대 위 머리> 그리고 <손>은 그가 경험한 죽음과 허무에 대한 표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란 인류 최악의 비극은 자코메티의 손을 통해 인생의 허무와 참혹함을 제작하였다.

죽음

자코메티는 ‘코’에 관련된 다양한 예술적인 표현을 조르주 바타유가 1929년에 창간한 <도퀴망>(Documents)에서 읽었다. 랄프 폰 퀘닉스베르그 (Ralphg von Koenigsberg)는 이 잡지에 “머리들과 해골들: 원시민족들에서 발견되는 조상들의 해골들과 전리품들”이라는 글과 함께 충격적인 사진과 삽화들을 실었다. 포토칭의 죽음으로 악몽에 시달리던 자코메티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죽음의 의미를 실감한다. 오세아니아 원주민들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힘은 죽은 이의 유골, 특히 해골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해골은 물건이면서 동시에 원초적인 힘을 지닌 생명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경계다. 해골들 안에 깃든 생명력 때문에, 그들을 꾸미고 색칠하였다. 자코메티는 1923년 한 겨울을 해골을 소묘하고 그리는데 보냈다. 그러나 그 당시 자신이 습작한 해골이 지닌 심오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해골 / 1923 / 유화 / 30x24cm
개인소장, 파리

그 후 24년이 지난 1947년, 자코메티는 해골과 관련된 조각 작품을 시작하였다. 원주민들은 죽음과 시신을 두려워했다. 시신이 상징하는 ‘무존재’가 해골을 통해 ‘존재’로 둔갑한다. 자코메티는 이제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양편을 관통하면서 초월하는 무경계에서 자신의 예술을 구상하고 구축하였다. 한쪽으로 미뤄놓았던 ‘죽음’이란 시계추가, 시간이 되어 그의 눈 앞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자코메티는 1947년 그의 작품거래를 주관했던 피에르 마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코’를 그린 두 장의 스케치를 보냈다. 하나는 홀로 공중에 있는 소묘고 다른 하나는 철재로 된 새장위에 달린 비계와 이어진 줄에 매달린 소묘다. 누구를 묘사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죽었다. 그가 살인죄를 저질렀는지 혹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는지 모호하다.

코 / 1947 / 청동, 쇠줄, 끈, 철재 / 81 × 71.4 × 39.4 cm / 뉴욕 구겐하임 박물관

측면에서 본 이 작품은 권총 모습니다. 입은 방아쇠, 코는 총열, 목은 탄창이 탑재된 개머리다. 이 작품은 자코메티의 심리속에 숨어있는 공격성과 폭력성이며, 20세기 나치스와 제2차 세계대전이 보여준 호전성과 잔인성이다. 이것은 또한 그런 폭력에 대한 정당한 심판이다. 그는 마치 단두대에 목이 걸린 사람과 같다. 철로 만든 새장의 중앙에 쇠막대가 있다. 정 중앙에 쇠로 만든 갈고리가 단단하게 부착되어있다. 갈고리에 매달린 끈은 이 사람의 머리에 박힌 반월형 쇠와 연결되어, 머리를 공중에 매달았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형벌을 받고 있다. 자코메티는 이 작품의 코에 붉은 줄무늬 색을 칠해 폭력성을 표시하였다.

<코>는 자코메티의 자학성이 드러난 이전 작품들인 <남과 여> (1929)와 <눈을 향한 지점>(1932)과 유사하다. 코는 남성의 성기 혹은 긴 창을 암시한다. 이 코는 자신이 있어야 할 한계를 넘어 다른 존재의 공간에 침입한다. 구조물 밖으로 튀어나온 코는 이 작품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세할 욕망을 부추긴다.
끈에 매달려있는 조각상은 자코메티 마음 상태다. 그는 나치스가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취리히로 피난하여 방관자였다는 사실에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1946년 2월 나치스 전범자들이 독일 남부도시 뉘른베르크에서 재판을 받고 1946년 10월 1일 그들 중 19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12명은 교수형, 3명은 종신형, 다른 4명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교수형은 15일 후에 집행되었다. 자코메티가 이 기간 동안 무시무시한 꿈을 꾸기 시작하였고, 이제 막 문을 닫으려는 살롱 스핑크스에서 창녀와 잠자리를 해 성병이 걸렸다. 그는 나치스 전범들이 처형된 후, 자신의 경험을 <미궁>에 <꿈, 스핑크스, 그리고 T의 죽음>이란 글을 실고, 이 작품을 만들었다.

피노키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 (Carlo Collodi)의 ‘피노키오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소목장인 제페토는 장작을 깎아서 작은 인형을 만들어 피노키오란 이름을 붙인다. 피노키오는 장난기와 모험심이 많아 다양한 사고를 친다. 그러나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그의 코가 늘어난다. 다른 사람의 공간을 예의 없이 쳐들어가 해를 끼친다. 자코메티는 이 신기한 동화를 어려서부터 들었다. 특히 1946년 5월 미국 만화영화 회사인 디즈니가 피노키오 만화영화를 만들어 파리에서 상영하였다.

피노키오는 항상 위험에 처하지만, 신비한 자들이 등장하여 피노키오의 착한 마음씨를 알아보고 결정적인 순간에 구해준다. 피노키오가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고 다른 존재들을 사랑할 때, 진짜 사람이 된다. 자코메티는 자신을 피노키오와 같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는 이기적인 행동을 일삼고 주위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었지만,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한 싹이 트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코메티는 스스로를 거짓말쟁이라고 느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자신을 예술로 인도한 스승이자, 동시에 자신이 타도해야할 대상으로 여겼다. 그는 아버지와 같은 유명한 예술가가 되고 싶은 동시에, 그를 뛰어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특히 1932년 그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판타지를 한 잡지에 기고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실제 죽어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코>는 동시에 자코메티의 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자코메티가 이사벨과 잠시 동거했지만, 그의 불능증 때문에 이사벨이 곧 그를 떠났다. 그러나 이제 자코메티는 완전한 남성이다. 그는 젊은 아네트를 만나 성기능이 돌아와 자신감을 가졌다. 자코메티는 파리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아네트와 정상적인 남녀관계를 시작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성불능을 무마하기 위해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떠벌릴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명의 대장인 앙리 탕귀가 자신의 동상을 만들어준 자코메티를 존경했다. 자코메트는 피노키오처럼 지난날 몸과 마음이 가는대로 좌충우돌 행동하였지만, 1946년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고 싶은 간절함을 피노키오의 <코>를 통해 표현하였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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